북서태평양 태풍활동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필리핀 앞바다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연중 해수면 온도가 높아 웜풀(warm pool)이라고 불리는데 전 세계에서 열대저기압 활동이 가장 활발한 해역이다. 북반구에서 열대저기압은 하층에서 반시계방향의 회전을 하고 중상층에는 온난핵을 가지고 하층에서 수렴하여 상층에서 발산하는 이차 순환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구조가 주변의 어떠한 강제력 없이 유지될 때 열대저기압이 “발생”했다고 하며 정량적으로는 지상 10m 높이에서 관측한 풍속이 17.5 m/s 이상이 될 때를 기준으로 한다. 이 풍속이 33 m/s 이상이 되면 “태풍강도”가 되고 이때부터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던 “등급”이 붙기 시작한다.
열대저기압은 발생하는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게 불리는데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 대서양과 동태평양에서는 허리케인,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는 사이클론이라고 한다. 대양에 따라 고유한 해양과 대기의 환경이 다르고 수집된 관측자료의 기간 및 그 산출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열대저기압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지역별로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북서태평양 지역 열대저기압에 대해 집중해 보자.
필리핀 앞바다를 포함하는 북서태평양에서 전 세계 열대저기압의 1/3이 발생한다. 물론 북동무역풍에 의해 서쪽에 쌓인 따뜻한 해수가 계절에 상관없이 대류를 일으키기 좋은 환경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풍이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발생하는 시기가 있으며 그러한 변동성을 좌우하는 것은 적어도 북서태평양 지역에서는 대기의 흐름이다. 관측의 한계로 아직 태풍의 발생 기작이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활발하게 일어나는 작은 규모의 대류를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더 큰 규모에서 대기의 흐름이 서로 수렴하면서 풍부한 수증기와 상승기류를 공급해 주어야 하며 상하층(보통 200hPa과 850hPa 높이를 기준으로 이용)의 바람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북동쪽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자리하면서 남쪽에서 남서풍이 불어오는 여름철과 이른 가을철에 태풍의 발생이 가장 활발하다. 그렇다면 왜 엘니뇨인가?
엘니뇨의 발달과 태풍활동
올해 여름 엘니뇨가 발생하여 겨울철인 지금 최절정기에 이르렀다. 엘니뇨 판단 기준인 ONI(Oceanic Niño Index) 값이 9-11월 평균 섭씨 1.8도로 “강한 강도”의 기준인 1.5를 넘었다. 2020년 여름에 발생한 라니냐가 3년 연속 이어지다 올해 이른 여름철 엘니뇨로 전환되면서 발생 강도와 그 영향에 대해 전 세계의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전 지구 기상현상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발생에서 소멸까지 수개월 이상 길게 지속되고 발생 수개월 전부터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모니터링되는 기후 현상 중 하나이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 지역 동풍이 약해지며 서쪽에 쌓였던 따뜻한 해수가 동쪽으로 이동되어, 기후학적으로 용승이 일어나는 차가운 해역인 동태평양지역 해수면 온도가 평년에 비해 상승하는 현상이다. 라니냐는 보통 그 반대 현상으로 이해되며 두 현상을 엘니뇨-남방진동이라고 부른다. 워커순환이라고 불리는 적도 태평양지역 동서 바람의 변동과 해양의 동서 해수온 변화가 맞물리며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 지역에서 직접적으로 변하는 대규모 순환장 뿐만 아니라 강수에서 방출되는 잠열이 대기의 파동을 바꾸면서 전 지구 기상현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서 서태평양지역의 해면기압은 평년에 비해 올라가고 평년에 비해 높아진 해수면온도에 의해 적도 중앙태평양지역 강수는 증가하게 된다. 이렇게 증가된 강수에서 방출된 잠열에 대한 대기 반응으로 북서쪽 대기하층에 저기압성 순환장이 유도된다. 이를 종합하면 북서태평양 지역[0°–30°N, 100°–180°E]의 북서쪽에서는 고기압성 순환장이, 남동쪽에서는 저기압성 순환장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엘니뇨가 발생하는 해에 태풍의 발생 위치는 저기압성 순환장이 증가하는 남동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발생한 태풍이 따뜻한 해역에서 더 긴 생애를 거치며 강화될 가능성을 높여주는 환경으로 실제로 엘니뇨 발생해에 평년에 비해 강한 강도의 태풍 발생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Wang and Chan 2002, Du et al. 2011, Choi et al. 2019).
최근에는 이러한 엘니뇨의 중심 위치가 동쪽에 위치하는지 중앙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동태평양 엘니뇨(EP-type El Niño)와 중앙태평양 엘니뇨(CP-type El Niño)로 구분지어 살펴보는데 이는 두 엘니뇨 형태의 발생과 쇠퇴 기작이 다르고 그에 따른 대기의 반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엘니뇨 다양성이 태풍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그림1에 잘 제시되어 있다. 동태평양 엘니뇨의 경우 여름철에 강한 강도의 태풍 발생이 증가하고 가을철에는 약한 강도의 태풍 발생이 줄어든다. 또한 동태평양 엘니뇨 시기에 북동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수는 줄어든다. 반면에 중앙태평양 엘니뇨의 경우 계절과 상관없이 태풍의 발생이 증가하고 북동아시아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수도 증가한다. 즉, 엘니뇨 발생해의 경우 엘니뇨 형태를 구분하는 것이 한반도에 미치는 태풍 활동을 예측해 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올해는 강한 강도의 동태평양 엘니뇨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의 수는 평년에 비해 이례적으로 낮았다.
엘니뇨의 쇠퇴와 태풍 활동
앞서 설명한 엘니뇨는 그 형태에 따라 다른 강도와 생애 주기를 보이는데 동태평양 엘니뇨의 경우 중앙태평양 엘니뇨에 비해 그 강도가 강한 특성이 있으며 이듬해 빠르게 쇠퇴하여 라니냐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림2는 강한 엘니뇨가 발달하는 여름철과 이듬해 쇠퇴하는 여름철을 비교한 것으로 해수면온도와 지표 바람의 편차 그리고 태풍의 활동을 보여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태평양 엘니뇨 발달해에는 북서태평양 남동쪽에 저기압성 순환장이 증가하면서 태풍의 발생도 남동쪽에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듬해 여름철에는 엘니뇨가 빠르게 쇠퇴하여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온도가 평년에 비해 낮아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인도양의 해수면온도 상승과 동태평양 해수면온도 하강은 워커순환의 강화를 유도하고 이에 북서태평양 지역 고기압성 순환장을 증가시키는 기작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고기압성 순환장의 증가로 태풍의 발생 역시 북서태평양 동쪽에서 줄어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Du et al. 2011, Zhan et al. 2011).
강한 엘니뇨 이듬해에는 북서태평양 지역 고기압이 강하게 유지되면서 태풍의 발생이 이른 여름철까지 억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엘니뇨의 모습은 매번 다르며 실제로 2015/16 엘니뇨의 경우 매우 강한 강도의 엘니뇨였음에도 동태평양과 중앙태평양 엘니뇨의 특성을 모두 보였으며 이듬해 이른 여름철 태풍의 발생이 억제되지 않았다(Zhan et al. 2017).
이는 대양간의 상호작용 및 북태평양지역 적도-중위도 상호작용의 영향으로 엘니뇨-남방진동의 다양성이 나타나는데 기인한다. 이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전 지구 기상에 미치는 영향 또한 달라지므로 관련된 연구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올해 강하게 발달하는 엘니뇨는 이전 강하게 발달한 엘니뇨에 비해 전반적으로 대기의 반응이 약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대서양의 높은 해수온과 음의 북태평양 수십년 변동성의 영향으로 사료되며 이와 관련한 기작연구와 함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따라서 엘니뇨의 생애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 북서태평양 태풍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기상현상의 계절 예측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사료된다.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최유미 연구원
- 저작권자 2023-12-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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