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팀이 주목하는 ‘뚱뚱한’ 은하단 – El Gordo
우주에는 '뚱뚱한 사람(El Gordo; 스페인어로 뚱뚱한 사람)'이라는 별칭이 붙은 은하단이 있다. 이 은하단은 우리 우주가 62억 년이 되었을 시기, 즉 '우주의 십대'에 놓인 은하단으로 수백 개의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의 우주시기에서 이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은하단은 유례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별칭이 붙었다. 2022년 7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첫 관측 대상들 중 하나로 'SMACS 0723'이라는 은하단이 큰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2023년 하반기에 제임스 웹 ‘PEARLS’ 연구팀은 다시금 El Gordo 은하단에 주목하고 있다. El Gordo 은하단의 제임스 웹의 적외선 영상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아주 멀기도, 또 먼지에 가려져 아주 어두워 찾기 어렵던 '우주 진주'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진주를 찾는 사람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PEARLS 국제연구팀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대형 프로젝트 중 하나인 PEALRS(Prime Extragalactic Areas for Reionization and Lensing Science, PI: Rogier Windhorst) 연구팀은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110시간 동안 깊은 관측 데이터를 수행하여 은하 진화, 활동성 은하핵, 우주의 재이온화 시기 등을 밝혀내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 PEARLS 프로젝트에는 서울대학교 임명신 교수, 몬타나 주립대의 김한성 박사, 천문연구원의 현민희 박사 등 한국 연구진을 비롯해 약 70여 명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이 국제 연구팀은 북황대(North Ecliptic Pole 혹은 천구의 북극점)의 두 하늘 영역, 7개의 중력렌즈 은하단, 두 개의 고 적색이동 은하단, VV191 등의 천구 영역에서 기존에 발견되지 않았던 퀘이사, 고 적색이동 은하, 초신성, 성단 등을 탐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다양한 비밀을 품고 있는 귀중한 천체, 즉 ‘우주 진주’를 찾고 있는 것이다.
PEARLS 팀의 은하단 파트 공동 연구 수장인 애리조나 대학의 Brenda Frye 교수는 이번 연구를 두고 "El Gordo"은하단의 중력렌즈 효과 덕분에 은하단 뒤에 놓인 멀고 희미한 은하의 밝기를 더 밝게, 또 크게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Frye 교수는 이러한 중력렌즈 효과를 두고 '먼 우주를 볼 수 있는 독특한 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심우주를 들여다보는 우주 돋보기, 은하단의 중력렌즈 효과
중력렌즈 효과는 이미 100년 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에 의해 예측된 바 있으며 실제로 우주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시공간이 중력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천체가 바로 중력렌즈이다. 중력이 클수록, 즉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의 질량이 클수록 그 천체를 통과하는 빛은 더 많이 왜곡된다. 이러한 빛의 왜곡이 중요한 이유는 원래대로라면 볼 수 없던 '아주 멀고 희미한 대상'의 빛을 ‘중력렌즈 효과’로부터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크기가 크고 무거운 천체인 은하단을 심우주를 들여다보는 '돋보기'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붉은 우주 낚시 바늘
El Gordo의 제임스 웹 적외선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은하단 오른쪽 상단의 밝은 중력렌즈 호(Gravitational Arc)이다(그림4 B). 마치 낚시 바늘과도 같은 생김새에 Frye 교수의 학생 중 한 명이 'El Anzuelo(낚시 바늘)' 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 호에 놓인 은하의 빛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106억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우주 낚시 바늘의 붉은색은 은하의 먼지에 따른 적색화 현상과 먼 거리로 인한 적색이동 효과 때문에 나타난다. 렌즈 왜곡 효과를 보정하고 나면 중력렌즈를 통과하기 전, 원래 은하의 특성을 연구할 수 있는데, 연구팀은 은하가 원반 모양이며 직경이 우리 은하의 4분의 1 수준인 26000광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은하 중심에서 이미 새로운 별 형성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담금질(quenching)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밝혀냈다.
붉고 얇은 우주 바늘
El Gordo 영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은하단 중심 왼쪽의 길고 가는 선이다(그림4 A). 'La Flaca (얇은 것)'로 알려진 이 은하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거의 110억 년이 걸린 또 다른 은하단 밖 배경 은하이다. 연구팀은 La Flaca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렌즈 은하에서 별을 뜻하는 케추아어 용어인 'Quyllur'라는 별명이 붙은 적색거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적색거성은 지구에서 10억 광년 이상 떨어진 곳에서 관측된 최초의 단일 적색거성이다. 이렇게 적색편이가 높고 붉은 별은 제임스 웹만이 지닌 강력한 감도, 해상도, 그리고 적외선 영역에 특화된 특성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또 다른 과학적 산물’인 것이다.
121억 년 전의 아기 은하단
Fyre 교수 연구팀은 이뿐만 아니라 이 은하단 내에서 약 121억 년 전에 형성된 아기(원시) 은하단으로 보이는 5개의 다중 렌즈 은하들을 발견했으며, 이 아기 은하단의 구성원일 수도 있는 추가 12개 은하들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Frye 교수는 “아직 더 많은 구성원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추가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빅뱅 이후 10억 년이 조금 넘는 시점에 우리 눈앞에서 새로운 은하단이 형성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아인슈타인의 보물 상자를 열고 있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인류의 차세대 우주 망원경인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을 통해 미지의 우주 진주를 찾아나가고 있는 PEARLS 프로젝트의 핵심 연구자 중 하나인 애리조나 주립대의 Rogier Windhorst 교수는 이번 El Gordo 은하단 연구 성과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El Gordo의 PEARLS 이미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렌즈 효과로부터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어떻게 아인슈타인의 보물 상자를 열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 한국천문연구원 현민희 박사후연구원
- 저작권자 2023-12-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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