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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와 과학의 공존: 2천년 역사 속 갈등과 협력의 여정 ​신의 대리인,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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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리인,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을 기리며...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1일 선종했다. 가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위 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과학과의 화해와 협력의 자세를 기리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과학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복잡하고 다층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과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환경 보호, 기후 변화 대응 등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증거에 귀 기울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선종을 계기로 2천 년에 걸친 가톨릭교회와 과학의 공존, 갈등, 그리고 협력의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1일 선종했다. ©Getty Images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1일 선종했다. ©Getty Images

 

과학과 종교 사이의 역사적 긴장

가톨릭교회와 과학 사이의 갈등은 주요 과학적 발견이 당시 교회의 세계관과 충돌했을 때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에 관한 논쟁을 들 수 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설을 지지했다. 성경의 여러 구절이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태양이 이동한다고 해석되었기 때문이다(예: 여호수아 10:12-13).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는 태양 중심설을 펼쳤고, 이는 당시 교회의 공식 입장과 충돌되는 견해였다. 이로 인한 갈릴레오의 유죄 판결(1633년)은 가톨릭교회와 과학 사이 갈등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으며 과학이 종교로 인해 크게 박해당한 첫 번째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지구의 나이에 관한 주장도 과학계와 종교계가 서로 달랐다. 제임스 어셔 대주교 연대기에 따라 전통적인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계산한 지구의 나이는 약 6,000년인 반면, 지질학과 고생물학적 연구 결과는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 년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견 차이는 19세기에 이미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적 있다. 

인간의 기원 역시 과학과 종교 간의 충돌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신이 인간을 직접 창조했다고 강조한다. 반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다 주장한다. 이런 과학적 견해는 교회의 창조론과 충돌하여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역사적 갈등을 겪어 나가며 가톨릭교회는 점차 과학적 발견을 수용하고 신학적 해석을 조정해 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빅뱅 이론과 진화론을 인정하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가 아닌 신학적,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여전히 인간 영혼의 신적 기원과 같은 영역에서는 과학적 물질주의와 선을 긋고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태동한 과학의 씨앗

현대 과학의 기원은 종종 르네상스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씨앗은 중세 가톨릭 수도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12-13세기 수도원은 당시 유럽의 지식 보존소이자 교육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베네딕트회, 도미니크회, 프란치스코회 등의 수도회는 고대 그리스, 로마, 이슬람 세계의 과학 지식을 보존하고 연구했다.

12-13세기 수도원은 당시 유럽의 지식 보존소이자 교육 중심지였다. 바티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Getty Images

12-13세기 수도원은 당시 유럽의 지식 보존소이자 교육 중심지였다. 바티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Getty Images

수도사들은 실제로 농업, 의학, 천문학과 같은 실용적인 과학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수도원의 정원에서는 약용 식물을 재배하고 연구했으며, 이는 현대 약학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수도원 학교에서는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자연 철학으로 발전했다. 

중세 대학의 설립 역시 가톨릭교회의 주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같은 유럽 최초의 대학들은 교회의 후원 아래 설립되었다. 이 대학들에서 오늘날 과학의 기원이 되는 ‘자연 철학’이 중요한 학문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훗날 과학 혁명을 이끌 많은 사상가가 배출되었다.

중세 대학 출신의 저명한 철학가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신의 창조물을 이해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조화시키려 했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 연구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과학적 탐구의 발전을 촉진했다.  

 

갈릴레오부터 르메트르까지: 가톨릭 과학자들의 혁신

안타깝게도 가톨릭과 과학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늘 긴장과 전쟁의 상태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교회 간의 갈등은 가톨릭과 과학 사이 대립을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과학적 진실 대 종교적 독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정치적 맥락, 갈릴레오의 개인적 성향, 당시의 신학적 논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갈릴레오의 체포와 가택 연금은 과학적 탐구의 자유에 대한 교회의 제한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과학과 종교 간 갈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교회 간의 갈등은 가톨릭과 과학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Getty Images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교회 간의 갈등은 가톨릭과 과학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Getty Images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성직자이자 천문학자로, 그의 태양 중심설은 현대 천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신의 창조물을 더 정확히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다만, 코페르니쿠스 역시 자신의 이론이 가져올 논쟁을 우려해 주저하다 사망 직전에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했다.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였던 그레고르 멘델이 수도원 정원에서 완두콩을 활용해 수행한 실험은 유전학의 기초가 되었다. 멘델의 연구는 신앙과 과학적 탐구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다. 그러나 그의 업적 역시 종교적인 권위에 눌려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고, 사망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재발견되었다. 

이 세 가지 사건만 해도 종교와 과학 간의 매우 큰 갈등의 씨앗이지만, 20세기에는 더 굵직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가 빅뱅 이론을 최초로 제안한 것이다.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였던 르메트르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단일 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처음에는 당시 정상 우주론을 지지했던 아인슈타인조차 이 이론을 거부했지만 결국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게 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전쟁으로 인해 큰 혼돈을 겪던 시기였기에 과학과 종교 간의 대립도 이전만큼 격렬하지 않았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빅뱅 이론을 수용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바티칸의 과학 기관과 현대적 협력

오늘날 바티칸은 과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36년 설립된 바티칸 과학 아카데미는 세계 각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과학적 탁월성을 기준으로 회원을 선발한다. 스티븐 호킹과 같은 무신론자 과학자들도 이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오늘날 바티칸은 과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Getty Images

오늘날 바티칸은 과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Getty Images

또한, 바티칸 천문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학 연구 기관 중 하나이다. 1891년 공식 설립된 이 천문대는 현재 이탈리아와 미국 애리조나에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첨단 천문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예수회 소속 천문학자들이 운영하는 이 천문대는 소행성 관측, 항성 분류, 우주론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적 기여하고 있다. 바티칸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과학 문헌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데,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뉴턴의 원본 저작을 포함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 문헌들은 과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가톨릭교회는 의학 연구와 의료 서비스 제공에도 적극적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5,000개 이상의 가톨릭 병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많은 대학 부속 연구 기관들이 첨단 의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분야에서는 뚜렷한 제한을 두고 있다. 교회는 생명의 존엄성을 이유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지만, 성체 줄기세포와 제대혈 줄기세포 연구는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보고 지지하는 실정이다. 

 

현대 과학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미래 전망

현대 가톨릭교회는 과학과 종교를 상호 보완적인 영역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 갈릴레오에 대한 교회의 판결을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며, 1996년에는 진화론이 "단순한 가설 이상"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신앙과 이성은 동일한 진리의 두 날개"라는 유명한 표현을 남겼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신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과학이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답할 수 없으며, 이는 종교와 철학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과학적 발견을 통해 자연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길이라고 보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Getty Images

베네딕토 16세 교황 ©Getty Images

그 중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학에 대해 특히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2015년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서 기후 변화의 과학적 합의를 인정하고, 환경 보호를 위한 글로벌 행동을 촉구했다. 또한 그는 빅뱅 이론과 진화론이 신의 창조 행위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과학과 모든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현재 과학 기술의 발전을 환영하면서도, 인간 존엄성과 윤리적 고려를 중요시한다. 물론  생명윤리 분야에서는 여전히 과학계와 견해 차이가 있다. 교회는 배아 연구, 특정 유형의 생식 기술(체외수정 등), 낙태, 안락사 등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이는 현대 의학 및 생명과학 연구와 마찰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기술에 대해서도 교회는 윤리적 프레임워크를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과 가톨릭의 관계는 단순한 대립이나 완전한 조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갈등과 긴장의 순간도 많았지만, 가톨릭 교회가 지난 2천 년 동안 과학 발전에 중요한 후원자이자 기여자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도 이 두 영역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인류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종교는 '왜'라는 질문에 답하며, 함께 인간 경험의 전체 스펙트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길 기대한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04-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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