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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머니들이 자식 자랑하는 데에는 단연코 영어, 수학이 으뜸이다. 옆집 철수 엄마가 ‘우리 철수가 또 수학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지 뭐예요’하고 자랑을 하면, 그 옆에 개똥이 엄마는 화가 나서 그날 저녁 개똥이를 들들 볶으며 수학공부를 시킨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개똥이.
하지만 이런 모습은 단지 그 과목이 활쏘기였을 뿐 옛날에도 요즘과 별로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왕, 그것도 한 나라의 시조인 주몽의 활솜씨를 저리도 치켜세웠을까? 그러고 보니 고구려의 주몽이나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같이 옛날에 한 가닥 했다던 사람들은 거의 다 젊을 때부터 활솜씨가 뛰어났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 당시의 활쏘기는 지금의 영어, 수학과 같이 우등생이 되기 위한 필수과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옛날에 활솜씨가 중요했던 이유는 과도한 교육열 때문도 아니요, 어머니들의 잔소리 때문도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활이 아주 중요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평야가 적고 산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칼을 들고 부딪치며 싸우는 방법보다는, 산 위에서 적을 공격하거나 산 밑에서 위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활이 활용도가 훨씬 높았다. 또한 말을 잘 다루었던 기마민족의 후예인 탓에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활로 공격을 하는 전술도 우리의 주특기 중에 하나였다. 활은 우리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또한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말이었던 동이(東夷)의 ‘夷’자는 큰 대(大)자에 활 궁(弓)자를 겹쳐 쓴 것이다. 즉, ‘사람이 활을 쏘는 모습’ 혹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가진 활솜씨는 단순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외국이 우리를 지칭하는 명칭에 그 뜻이 녹아 있을 정도로 널리 인정받은 뛰어난 것이었다. 비록 그 도구가 양궁으로 바뀌었으나, 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양궁 실력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명궁수는 훌륭한 활이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법. 그 솜씨만큼이나 우리가 만들었던 활 역시 세계 최고수준의 성능과 품질을 자랑하는 명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우리나라 활의 특징은?
활은 그 길이에 따라 장궁(Long bow)과 단궁(Short bow)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활이 단궁에 속하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런 분류가 큰 의미가 없으나, 유럽에서는 122cm(4피트)를 기준으로 장궁과 단궁을 분류했다. 가장 유명한 장궁은 고대 영국인들이 사용했던 ‘잉글리시 롱 보우(English long bow)’이다.
길이가 170~180cm(5피트~6피트)에 달해, 중세 무렵 잉글랜드인들의 평균 신장보다 더 컸다. 활의 위력은 활이 가진 장력에 비례하기 때문에 같은 재료, 같은 기술로 만들어졌다면 장궁이 단궁에 비해 분명히 더 위력적이다. 가장 일반적인 활인 조선시대 각궁은 분명 짧은 단궁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각궁의 최대 사거리는 340~360m로, 최대 사거리가 270m 정도였던 잉글리시 롱 보우에 비해 훨씬 길다. 분명 장궁이 단궁보다 멀리 나가야 정상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비밀은 바로 활의 형태에 있다. 활은 형태에 따라 직궁(直弓)과 만궁(彎弓)으로 나뉜다. 직궁은 탄력이 좋은 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양쪽에 줄을 걸어 약간 휘게 만든 단순한 형태의 활이다. 따라서 줄을 풀게 되면 활은 곧은 직선 모양을 가지게 된다. 이에 반해 만궁은 활줄을 걸지 않았을 경우, 보통 활이 휘는 방향과 반대로 뒤집혀 휘게 된다. 따라서 활의 길이가 짧다 하더라도 활이 가진 장력은 엄청나게 강해진다.
우리나라의 활은 대표적인 만궁이다. 특히 중국이나 터키 계열의 만궁은 활줄을 풀어 놓았을 때 완만한 호를 그리며 뒤집혀 휘어지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활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휘어진 모습을 가진다. 또한 이 때문에 보통 활들이 시위를 당겼을 때 완만한 ‘C’ 모양을 가지는 반면, 우리나라의 활은 ‘ㄷ’ 모양에 가까울 정도로 당겨진다.
활줄을 풀었을 때와 비교하자면 거의 180° 가까이 활이 휘어지는 대단한 유연성과 장력을 가진 활인 셈이다. 덕분에 활의 평균 크기는 다른 활들에 비해 가장 작지만, 사정거리와 성능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활의 작은 크기와 뛰어난 성능은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전투를 가능하게 하는 큰 이점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활이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장력을 가진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복합궁(Composite bow)이기 때문이다. 복합궁은 짐승의 뿔이나 뼈, 탄력 좋은 나무, 동물의 힘줄 등 다양한 재료를 접착제로 단단히 고정시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복합궁이 대나무나 나무만을 재료로 만든 활(단순궁)보다 탄성이 좋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복합궁은 재료가 다양하여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다. 아울러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온도, 습도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복합궁 제작은 각각의 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온도, 습도에 따른 철저한 관리가 뒷받침되어 주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활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리나라의 활은 7재(材)로 만든 우수한 복합궁이다. 여기서 7재(材)란 활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7가지의 재료를 가리키는 말로 물소 뿔, 대나무, 소심줄, 뽕나무, 참나무, 민어 부레풀, 화피를 말한다. 이렇게 동·식물성으로 이루어진 7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제조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활은 ‘살아있는 활’이라고도 했다.
활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대나무다. 단단하고 섬유질이 풍부한 왕대를 길쭉한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한다. 신축성이 좋고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성질 때문에 활에 사용하기에는 대나무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대나무의 양쪽 끝에는 뽕나무를 잘라 붙인다. 활의 양쪽 끝에 위치한 활줄을 거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다. 뽕나무 역시 탄력성이 좋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나무와는 달리 서서히 신축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활의 유연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다음은 물소 뿔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활의 각궁(角弓)이라는 이름도 물소 뿔을 이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물소 뿔은 길쭉한 모양으로 얇게 잘라 민어 부레로 만든 어교(魚膠)를 이용해 활의 전면에 단단히 붙여 준다. 뿔 1개를 사용하여 활 반쪽을 붙일 수 있으므로 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뿔 2개 즉, 물소 1마리분의 뿔이 사용되는 셈이다.
물소 뿔의 특징은 탄력성이 강하면서도 그 강도가 장기간 지속되어 버티어주는 힘이 우수하다는 점이다. 또한 열을 이용하면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 작업이 쉽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활을 쏘는 사람에 맞추어 활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리고 활의 안쪽에는 소심줄을 단단히 붙여준다. 소심줄은 대단히 질기고 탄력이 좋아 활의 신축성과 유연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 말려 다듬어 놓은 소심줄에 어교를 잘 묻혀 고르게 붙여준다. 특히 활의 휘어지는 부분은 좀 더 두껍게 붙여 보강을 해준다.
이렇게 소심줄을 붙인 후에는 한 달 정도를 23~30℃의 방안에서 잘 말려준다. 접착제로 사용된 어교가 습기에 의해 떨어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 후에 활은 장인의 오랜 경험이 필요한 정교한 조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 작업은 해궁(解弓)이라고 하여 활에 활줄을 걸어 구부리고, 활의 균형과 강도를 조절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끝나야만 활은 비로소 생명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 활의 성능은 과연?
활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무기이다. 또한 민족, 문화,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그 종류와 성능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다른 무기들과는 다르게 각종 상황과 변수를 제거하고 사정거리, 정확도, 관통력 등을 통해서 다른 종류의 활과 성능의 절대 비교가 가능하다는 것이 활이라는 무기의 재미있는 점이기도 하다. 역시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활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우리나라 활은 다른 나라의 활에 비해 얼마나 우수한가?’에 대한 논란이 어김없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각 나라 활의 성능을 가지고 등수를 매기는 일은 의미 없는 소모적 논쟁일 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무기라는 것은 용도와 필요성에 따라 매우 특수한 형태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열대우림이 우거진 지방에서는 활을 만들 수 있는 풍부한 재료가 많았겠지만, 우리와 같은 형태의 복합궁은 발전하지 않았다. 그런 장소에서의 전투는 수백 미터 거리 밖에서 적을 공격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까운 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단순한 형태의 활만으로 충분하며, 그 이상은 낭비일 뿐이다. 특히 일본과 같은 활 문화가 잘 발달하지 못한 나라와 우리나라 활을 비교해보고, 우리나라 활이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어떻게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한 소수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활의 뛰어난 성능과 그에 대한 자부심을 한국 특유의 국수성에 기인한 환상이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터키, 몽골, 오스만과 같이 독특하고 훌륭한 활 문화를 꽃피웠던 다른 나라들을 예로 들기도 한다. 그쪽의 활이 우리나라의 활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유산의 우수성을 놓고 따지는 등수놀이가 현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활의 성능 면에서 그토록 무시당하는 ‘잉글리시 롱 보우’를 사용하던 영국은 지금 세계 최고수준의 국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고, 그토록 뛰어난 활과 기마술을 뽐내던 몽골은 현재 GDP 50억 달러 수준의 작은 나라일 뿐이다(2005년 한국 GDP는 7천870억 달러였다.).
옛 선조들의 과학과 기술을 탐구하고 그것을 대상으로 논쟁을 하는 이유는 그것을 이용해 자기 위안을 삼고자 함도 아니요, 다른 나라를 깎아내리기 위함도 아니다. 단지, 과거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함이다. 우리는 뛰어난 성능의 활을 어떻게 만들어내었을까? 그것을 어떻게 보존, 전수했으며 그 과정 속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현재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가 지금 현대의 과학에 던져야 하는 질문과 그리 다르지 않다.
활을 떠난 화살은 경쾌하게 날아가 과녁에 박힌다. 이렇게 시위를 떠난 화살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다음 화살은 앞서 날아간 화살을 통해 보다 올바른 과녁을 겨냥할 수 있기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가 만들어낸 뛰어난 활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앞으로 날려야 할 새로운 화살의 올바른 궤적을 고민해보는 방법인 것이다.
- 꿈꾸는 과학 윤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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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6-12-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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