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유명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을 임무로 하는 사람을 ‘보디가드(bodyguard)’라 부른다. 이들은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안전을 위해 때로는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보디가드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의 세상에서 종종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이 보디가드 미생물은 자신들이 보호하는 식물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저항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농림수산식품부 그리고 농촌진흥청 등 3개 정부기관은 최근 일부 작물이 병원균에 대항하기 위해 토양 내의 미생물을 보디가드처럼 이용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과기정통부와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동으로 지원한 ‘포스트게놈 다부처 유전체사업’과 농촌진흥청이 지원했던 ‘우장춘 프로젝트’ 및 ‘차세대 바이오그린 21사업’을 통해 밝혀졌다.
병원균에 대한 식물 저항력을 도와주는 미생물 존재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식물병리학계는 병원균이 식물에 침입하게 되면 식물체 내 저항성 유전자가 병원균에 대한 각종 저항 물질들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토마토 같은 가짓과 작물을 공격하는 ‘풋마름병원균’을 꼽을 수 있다. 풋마름병원균은 토양에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유해성 세균으로서, 이 질병에 작물이 걸리게 되면 대부분 말라죽게 된다.
풋마름병은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질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류가 다른 작물을 번갈아 재배하는 ‘윤작’ 농사를 짓거나 ‘저항성 품종’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제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작물 품종들 중에는 병에 잘 걸리는 ‘감수성 품종’과 똑같은 조건에서도 병이 잘 안 걸리는 ‘저항성 품종’이 존재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원인을 과거에는 품종 자체의 유전적 요소로만 봤지만, 정부가 지원한 연구과제들을 통해 직물과 함께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들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친환경 농약은 물론 비료 사업에까지 활용 가능
연세대와 동아대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같은 품종임에도 서식지에 따라 병원균에 대한 저항성이 차이가 나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연구진은 그 원인을 작물 주변의 미생물 군집이 다르다는 점에서 찾았다.
연구진은 우선 풋마름병에 대한 저항성이 있는 토마토 품종인 ‘하와이7996’과 병에 잘 걸리는 감수성 품종인 ‘머니메이커’를 재배했다. 이어서 뿌리 근처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와 개체수 등을 조사했고, 이들이 갖고 있는 전체 DNA 서열도 분석했다.
또한 메타유전체 분석을 통해 저항성 품종 주변에 플라보박테리아 계열의 미생물이 특이적으로 번성함을 확인했다. 이들로 인해 풋마름병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진 것으로 추정한 연구진은 분리실험을 통해 해당 균주를 배양한 후 ‘TRM1 미생물’이라 명명했다.
이후 TRM1 미생물을 배양하여 감수성 품종의 토마토와 저항성 품종의 토마토 주변에서 군집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TRM1 미생물이 대량으로 서식하는 곳에서 자란 토마토는 상대적으로 저항성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과기정통부를 포함한 3개 기관의 관계자는 “토마토의 저항성이 품종 자체의 유전적 특징 외에도 주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도움을 통해 강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공동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TRM1 박테리아를 활용한 사업화를 추진했을 시, 가지과 작물의 풋마름병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친환경 농약은 물론 비료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이번 연구의 지원업무를 총괄한 농촌진흥청 연구운영과의 이시명 연구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보디가드 미생물을 발견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작물들에게서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질병들을 조사하기 위해 연구진은 토양 등 여러 재배조건을 다각적으로 물색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다가 동아대 이선우 교수의 제안으로 농업적으로 중요한 가짓과 식물인 고추와 토마토에 큰 농업적 손실을 야기하는 풋마름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후 같은 품종임에도 서식지에 따라 병원균에 대한 저항성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분석하다가 미생물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저항성 품종과 감수성 품종의 주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군집 차이를 분석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
-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장애요소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식물실험은 생명체를 직접 다루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다양한 변수가 많다. 또 처음에 예측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공동 연구진은 실제 환경에서의 반복 실험을 위해 부산 동아대 농장에서 토마토를 대규모로 특정 시기에 재배하여 실험하였는데, 갑작스러운 폭우나 기상 변동 등으로 인해 그 시기의 토마토 재배가 망쳐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몇 개월 혹은 해당 연도의 실험을 진행할 수 없어 추가 실험을 위한 종자확보에만 몇 개월 후를 기약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 이번 성과의 의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달라
이번 성과는 농업바이오 분야의 R&D 지원과 여러 부처에서 추진된 유관 연구 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다. 이번에 발견한 TRM1 미생물의 사업화를 통해 미생물 농약과 비료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아울러 안전한 먹거리 공급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8-10-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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