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수가 아니라 노동의 질이 더욱 중요하다.'
'인재상과 교육 철학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노동법과 규제가 일자리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AI,빅데이터 등 신기술과 일자리를 둘러싼 논쟁이 '상실 vs 창출'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노동의 질, 임금 문제, 근로 형태, 교육, 노동법 현안 등의 다양한 현실문제로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11월 30일부터 이틀간 포항공대에서 개최된 '2017 다산컨퍼런스'에서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과학기술과 일자리에 대한 범학문적, 범산업적인 논의가 이뤄져 큰 관심을 끌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고 (사)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기술과 노동에 대한 일반적인 현안은 물론 제조, 통신, 에너지, 바이오헬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의 일자리 문제가 거론됐다.

특히 다양한 과학, IT 전문가는 물론 경제학, 철학, 행정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및 연구원이 참여해 기술과 일자리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보여줬으며 일자리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노동법과 규제, 교육의 문제가 함께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다산컨퍼런스 조직위원장인 김승환 포항공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 논쟁이 뜨겁지만 무엇으로 부르든 우리는 AI, 빅데이터, 로봇, IoT가 가져오는 삶의 변화를 이미 경험하고 있다"며 "일자리 상실을 비롯한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 앞으로도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지닌 전문가들의 심도깊은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부 '자본주의와 4차 산업혁명'에서는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4차 산업혁명의 철학적, 역사적 문제들'을 짚었다. 홍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규정에 대해서는 '정치적 유행어'라며 여전히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술에 대한 윤리, 철학적인 논쟁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가짜 문제와 오해에서 비롯된 과장된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거품을 걷어내고 실체에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자본주의 장기파동적 관점에서 본 4차 산업혁명'을 발표한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다양한 경제학자의 경기 사이클 주장과 기술 요인에 대해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상승과 하강의 사이클을 잘 캐치하면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파악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박지영 뉴욕주립 버팔로대 교수는 '신기술, 불균형 그리고 정의'라는 주제를 통해 현 지구촌의 공간적인 불균형 현상을 언급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 농촌과 낙후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쓰여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2부에서는 '과학기술과 일자리: 일자리 상실 vs 일자리 창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정혁 KISDI 연구위원이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을 주제로 기술과 일자리에 대한 일반적인 이슈를, 한상기 테크프런티어대표가 AI와 일자리 변화에 대한 전반적인 논점을 제시했다.
정혁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제조 분야에서 이미 자동화가 상당부분 이뤄졌고 비정규직이 많기 때문에 양적으로 급감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노동의 질이 문제가 된다"며 "일자리의 수보다 노동의 질 문제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사회적 책임과 대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기 대표는 "AI로 인간의 노동이 대체되는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다양한 노동 형태와 변화의 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프리랜서, 긱(Geek) 경제 비중이 더 커지는 한편 앞으로는 발레파킹, 자원봉사 등 노동 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한 영역도 돈을 받는 직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각 산업 분야에서의 변화와 일자리 문제도 다양하게 다뤄졌다. 박미화 포스코 정보기획실장이 제조업에서의 현안을, 박대수 KT 경제경영연구소장은 통신 분야에서의 변화를 언급하며 새로운 인재상을 강조했다.
박미화 실장은 "4차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포스코는이미 AI와 빅데이터가 창출하는 비즈니스 가치를 확인하고 있다"며 "비즈니스와 IT 지식의 결합, 데이터를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협업을 이끌어내는 역량 등을 갖고 있다면 일자리 논쟁에 관계없이 스마트 시대 새로운 인재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수 소장은 "지난 수십년의 과정을 보면 기술에 따른 대량 실업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두번의 경기침체 국면를 제외하면 고용은 대체로 성장했다"고 전제하고 "융합 활성화와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공유경제 모델 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
에너지 분야와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혁신과 일자리 문제로 거론됐다. 안남성 전 에너지기술평가원장은 "현재 풍력, 태양광, 재생에너지 등으로 가장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가 에너지 영역"이라며 "가령 블록체인 기반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통해 개인이 에너지 생산자가 되고 그 중 일부를 한전에 판매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일종의 고용으로 볼 수 있다"고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김희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국내외 바이오헬스 산업의 현황과 이슈를 소개하면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제공하는 서비스로만 보면 일자리 창출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차세대 신성장동력으로서의 위상과 융합연구와 중개연구가 필요한 바이오헬스 분야의 특성을 감안하면 많은 고용의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이어진 3부 '과학기술과 일자리: 새로운 전환을 위한 전략적 과제들'에서는 산업화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교육, 노동 관계법, 행정 규제 및 관료제에 대한 방향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교육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한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특임교수는 "교육의 본질은 한 학생의 변화로 나타난다"며 "대학이 각자 인재상을 수립하고 그에 맞는 핵심역량을 설정해 학생 선발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인재상 중심의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노동관계법의 과제' 발표에서 "지금의 노동법은 제조업 중심의 근로자 보호를 위한 표준화된 체계로 자영업자와 크라우드 워커, 긱 경제 등이 확산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맞지 않는 틀"이라며 "집단적 노사관계법이나 일률적인 노동 보호에서 벗어나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 강화, 다양성 존중, 유연성 확대 등이 이뤄지는 노동 4.0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김주훈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각 법제와 행정의 문제와 혁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포지티브형 규제를 네거티브형으로 바꾸고 공무원들이 소신대로 정책 집행을 하고 실패하더라도 객관적인 소명이 되면 불이익을 주지않는 제도의 정착, 탈관료주의를 통한 정부 혁신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 조인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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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1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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