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루프(feedback loop)’ 어떤 현상의 결과가 원인을 다시 강화하여 변화가 가속되는 순환과정을 뜻한다. 이는 기후 시스템 내에서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메커니즘의 일부로 작용하는데, 하나의 루프가 또 다른 루프를 유발하고 이들이 상호 증폭을 일으키면서 돌이킬 수 없는 복합 위기로 이어진다.
과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의 진정한 위험은 바로 피드백 루프에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극지방 빙하의 급속한 융해는 전 지구적 기후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이로 인해 수십 년 안에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기후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기후 위기의 문제는 ‘기후변화가 진행 중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고 파괴적으로 가속되고 있는가’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빙하’가 있다.
UN, 2025 세계 물의 날 주제로 '빙하 보존' 선정
올해 초, 남극에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빙붕 붕괴가 관측되어 기후 위기에 다시 한번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위성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전 세계 빙하의 75% 이상이 융해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2024년 초 발표된 세계기상기구(WMO)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전 세계 빙하의 평균 두께가 약 30m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해수면 상승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자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기후변화를 강화하는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유엔이 1992년부터 지정한 3월 22일 ‘세계 물의 날’ 올해의 주제는 '빙하 보존(Glacier Preservation)'이 선정됐다.
주제 선정에 앞서 2024년 12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Water 회의에서는 빙하가 수자원 위기의 핵심 경계선이라는 인식이 다수의 동의를 얻었다. 빙하 보존이 단순한 생태적 가치 보존을 넘어 인류의 생존 전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3월 21일 발표된 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에는 2025는 산과 빙하를 '물의 탑'으로 지칭하며, 이들이 수십억 인구의 식수, 위생, 식량 및 에너지 안보, 환경 보전에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빠르게 녹아 수자원 순환이 예측 불가능해지고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로 인해 홍수, 가뭄, 산사태, 해수면 상승 등이 심화되어 인류와 자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이고, 빙하 및 산악 지역의 보존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빙하는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지구 인구의 식수원이다.
빙하는 수천 년의 기후 정보를 품은 ‘지구의 아카이브’이자, 수십억 인구의 식수원으로 기능하는 복합적 존재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약 17억 명의 인구가 빙하에 의해 형성된 수계(流系)의 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수자원의 장기적 감소는 곧 물 분쟁, 식량 위기, 생물 다양성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전 세계 담수의 약 70%가 빙하와 만년설에 저장되어 있어 수십억 인구의 생존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히말라야, 안데스, 알프스 등 주요 산악지대의 빙하는 건기(乾期)에 하천 수량을 유지시켜 농업과 생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의 급속한 후퇴는 해당 지역의 물 안보와 식량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는 UN의 여섯 번째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 6 – 모든 이에게 물과 위생 보장) 달성에도 직접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후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기후변화와 대기 중 검은 탄소(black carbon) 침적, 산업 활동에 의한 에어로졸 축적 등으로 인해 빙하의 질량 손실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UN은 올해를 전환의 시점으로 삼아, 빙하 보존에 대한 과학적 기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전 지구적 대응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촉진할 계획이다.
지구를 지키는 하얀 거인, 빙하를 보존하라
이를 과학에서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한 국제적 논의도 활발하다.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물의 날 2025’ 개막 행사 기조연설에서 페트리 탈라스(Petteri Taalas)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현재의 빙하 손실 추세를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서 일어나야 할 변화가 불과 수십 년 만에 압축돼 벌어지고 있다”며 경고했다.
그는 특히 수문 순환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빙하의 급속한 감소는 단지 해수면 상승의 문제를 넘어, 건조기 수자원 부족, 생태계 파괴, 식량 시스템의 위기로 직결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수자원 관리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세부 논의는 3월 20일(파리 현지 시간) UN-Water가 주최한 글로벌 웨비나는 '물과 빙하: 과학에서 정책으로(Water and Glaciers: From Science to Policy)'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이 행사에는 전 세계 각국의 정책 입안자, 기후 과학자, 수자원 관리 전문가들이 참여해 빙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수자원 정책 간의 연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글로벌 웨비나는 최근 위성 기반 질량 균형 연구 결과와 WMO 및 IPCC 과학 패널의 종합 보고서 발표를 통해 빙하 손실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별 대응 전략과 커뮤니티 주도형 이니셔티브, 글로벌 정책과 국제 협력 구조를 재정비하는 자리였다.
아룬 사르마(Arun Sharma) 인도 수자원부 장관은 자국의 히말라야 빙하 후퇴에 따른 대응 사례를 소개하며, “현장 기반의 커뮤니티 주도 모니터링과 전통 지식 활용이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대응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생명줄인 빙하를 지키기 위해 지역 공동체와 과학기술을 결합한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후안 카를로스 알루랄데 (Juan Carlos Alurralde) 볼리비아 부통령실 사무총장은 국제 기후 협상의 한계를 지적했다. '녹아내리는 약속: 기후 협상이 우리의 빙하를 구하기에 충분한가?'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그는 "현재의 기후 협상으로는 빙하 손실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보다 강력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참석한 전문가들은 지구적 수문 순환의 위기를 다시금 직시하고, 협력과 혁신을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수자원 관리를 이루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웨비나는 UN-Water 공식 채널 및 협력기관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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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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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3-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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