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핵심의제인 기후대응 재원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견해차로 진통을 겪은 끝에 24일(현지시간)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모인 약 200개국 협상단은 이날 새벽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에 합의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공개한 합의문을 보면 개도국을 위해 선진국이 부담하는 공공 재정을 2035년까지 연 3천억달러(약 421조원)로 3배로 늘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모든 당사자가 협력해 공공·민간 재원을 통해 개도국에 대한 재정을 2035년까지 연간 1조3천억달러(약 1천827조원)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선진국 분담금은 지난 21일 공개된 합의문 초안의 2천500억달러(약 351조원)에서 500억달러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 11일 시작된 회의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결국 예정된 폐막일 22일을 넘겼고, 협상단은 비공개회의와 밤샘 협상을 거듭한 끝에 예정 시각 30여시간을 넘겨 이날 새벽 합의에 이르렀다. 기후변화 위협에 직접 노출된 소규모 도서국들과 최빈국(LDC) 그룹은 초안 공개 당시 선진국의 부담이 지나치게 적다며 반발, 진통을 겪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한때 회의 참석을 중단, 파행 우려까지 나오기도 했다.
합의된 선진국 분담금 3천억달러는 2023년 기준 전세계 군사비의 45일치,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원유의 40일치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이 돈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국가들의 공공 및 민간 부문에 걸쳐 매년 현금으로 지원돼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하고 앞으로의 대응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이는 2020년까지 빈곤국에 연 1천억달러의 기후재원을 제공한다는 이전 합의를 대체하는 성격이다. 2009년 설정된 이 목표는 애초 기한을 넘긴 2022년에야 이행됐으며, 2025년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합의안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일부 대표단은 기립박수로 이를 반겼지만, 반발도 여전하다. 인도 협상 대표 찬드니 라이나는 "선진국 당사자들이 그들의 책임을 다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 결과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안을 '시각적 환상'이라 부르며 유감을 표했다. 아프리카 협상그룹을 대표하는 케냐의 알리 모하메드는 "아프리카에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것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시에라리온 기후 장관 지워 압둘라이는 선진국들의 '선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판했고, 나이지리아 특사는 "이건 모욕"이라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했다. 그린피스는 성명에서 "COP29가 3천억달러의 새 공공 기후 재정 목표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그린피스의 기후정치 전문가 트레이시 카터는 "엄청난 실망"이라며 "2035년까지 3천억달러는 너무 적고, 너무 늦다"고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합의된 재정 합의에 충분치 않다는 아쉬움을 표명하면서도, 이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성명에서 "우리가 직면한 큰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재정과 완화 측면에서 모두 더 야심찬 결과를 기대했었다"며 "각국 정부는 이 합의를 기반 삼아 이를 토대로 발전시켜 나가길 호소한다"고 밝혔다. 마셜제도의 기후특사 티나 스테지는 성명에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역사적인 결과물',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어떤 사람들은 미국과 전세계에서 진행 중인 청정에너지 혁명을 부정하거나 지연시키려 할지 몰라도, 아무도 그것을 뒤집을 수 없다"며 미국은 더 건강한 지구를 위한 작업을 계속해서 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합의문이 기후재원 목표 '1조3천억달러'를 언급하긴 했지만, 재원 조달 방법은 명시하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공적자금에만 재원을 의존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민간 재원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보지만, 개도국들은 보조금 형태를 원한다. 대출 형태로 지원이 이뤄질 경우 부채 부담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이번 합의를 통해 다자개발은행 및 민간 부문에서 기후 재원을 조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선진국 그룹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약 20개국이 있다. 1992년 유엔변화협약에서 정해진 것으로,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서방 선진국들은 중국과 사우디도 선진국으로 편입해 기후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합의문은 이들 국가에 자발적인 기여를 '권장한다'고 표현했을 뿐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았다.
탄소배출권 거래 시스템도 이번 합의에서 나온 주요성과 중 하나다. 참가국들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정에 합의했다. 탄소배출권은 국가나 기업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체가 산림 보호, 재생에너지 전환 등을 통해 저감한 온실가스의 양을 배출권으로 바꿔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국제사회는 이미 2015년 파리협정 제6조를 통해 국가 간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10년 가까이 이를 위한 세부 이행 지침을 확정 짓지 못한 상태였다. 탄소 시장 운영을 위한 규정에 합의하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국가 간 탄소배출권 거래 논의에 시동이 걸릴 전망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다. 새 규정이 탄소 거래의 오용을 막지 못하고, 대규모 오염원에 탄소배출을 계속할 구실을 제공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원주민 기후변화 네트워크(IEN)의 타마라 길버트슨은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 기온 상승폭 1.5도 제한' 목표를 거론하며 "본질적으로 그들이 한 일은 '1.5도' 의무를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린피스의 안 램브레히츠도 허점 많은 '기후 사기'라 부르며 반발했다.
힘들게 합의에 이르렀지만, 문제는 합의가 이행되느냐이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해 57기가톤(t)까지 치솟는 등 기후변화의 위험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을 비롯해 각국 정치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변화를 불신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당선 시 미국은 세계 기후협력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는 이미 기후변화 대응 반대론자로 유명한 인물을 차기 미 에너지 장관으로 지명해 기후변화 대응에 어려움을 예고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합의안을 두고 "법적 구속력은 없고 주로 외교적 압력에 의해 운영되는 합의"라며 취약성을 설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선진국들은 인플레이션, 예산 제약, 포퓰리즘 증가 등 많은 재정적, 정치적 제약에 시달리고 있다"며 특히 트럼프 당선인의 당선과 그의 파리협정 탈퇴 위협은 COP29 회의 초반부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뇌관에 대한 우려 속에 이제 시선은 제30차 기후변화총회로 쏠린다. 다음 회의는 내년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다.
- 연합뉴스
- 저작권자 2024-11-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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