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의 해파리
노르웨이 연구진은 우연한 발견을 통해 빗해파리(Comb jelly; Mnemiopsis leidyi)가 굶주림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성체에서 유충으로 역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유충이 성체보다 적은 양의 먹이로도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존 전략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발견은 ‘불멸의 해파리’로도 불리우는 홍해파리(Turritopsis dohrnii jellyfish)의 발견과 비슷한 맥락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크리스티안 좀머와 조르지오 바베스트렐로라는 두 젊은 과학자는 홍해파리를 연구하던 중, 홍해파리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죽는 대신 생애주기의 이전 단계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바 있다. 참고로 베르겐 대학교 마이클 사스 센터의 진화신경과학자 파벨 부르크하르트 박사는 이에 대해서 불멸이라는 표현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역진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빗해파리를 대상으로 장기 기아 상태와 물리적 상해를 가한 후 적은 양의 먹이만 공급하는 상태, 총 두 가지 스트레스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물리적 상해를 입은 개체들의 40%(15마리 중 6마리)가 완전한 역진화에 성공했으며, 기아 상태에서는 14%(50마리 중 7마리)가 역진화에 성공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빗해파리의 경우, 하나의 개체가 하나의 유충으로 역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홍해파히가 '군체(편모충류의 무리가 세포분열 후 각각의 세포가 분리되지 않고 원형질의 일부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역진화하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다.
역진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의 노화 연구에 주는 시사점
역진화 연구는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성체에서 유충으로 역진화하는 능력은 이들의 높은 생존력과 적응력을 설명하는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빗해파리의 경우 매우 침습적인 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0년대 흑해의 어장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생존력과 적응력이 뛰어나다.
빗해파리의 이러한 놀라운 생존 능력은 전 세계 해양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는 해파리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역진화 능력이 빗해파리의 개체 수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최근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도 빗해파리의 출현이 증가하는 상황과 관련하여 “이들의 역진화 능력은 어업 피해와 해양 생태계 교란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동해안에서 발생한 어업 피해의 30% 이상이 해파리 관련 건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의 노화 연구에도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노화는 인간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세포 퇴화와 뇌 가소성 감소를 초래한다. 연구진은 빗해파리의 역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신경계의 재배열에 주목하고 있다.
페르디난도 보에로 박사는 이에 대해서 “역진화 패턴의 관찰은 첫 단계일 뿐”이라고 밝히며 “정상적인 발달 패턴을 조절하는 유전적 과정을 확인하고, 발달을 재시작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인간의 낮은 가소성(어떤 유전자형 발현이 특정한 환경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화하는 성질)으로 인해 인간의 완벽한 젊어짐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파리의 역진화 과정에서 발견되는 세포 재생성 메커니즘은 난치성 질환 치료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퇴행성 신경질환이나 심장질환 치료에 있어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이번 발견이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향후 연구 방향
비록 인간의 완전한 역진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는 노화 관련 질환의 치료나 노화 과정의 제어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계에서는 이번 발견을 통해 생명체의 적응 능력과 가소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추후 의학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어떻게 응용될 수 있을지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구진은 앞으로 빗해파리의 역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발현과 신경계 재구성 메커니즘을 더 자세히 연구할 계획이다. 특히 성체에는 없는 촉수가 유충 단계에서 새로 생성되는 과정과 이에 필요한 신경계 발달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해당 연구 바로 가기: 빗해파리의 역발달 및 진화(Reverse development in the ctenophore Mnemiopsis leidyi), Joan Soto-Angel and Pawel Burkhardt 2024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4-11-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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