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물고기라면 지느러미로 헤엄을 친다. 그런데 다리로 걸어 다니며, 새와 같은 날개를 가진 특이한 물고기도 있다. 바로 바다로빈(sea robin‧성대)이다. 바다로빈은 6개의 다리로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헤엄칠 땐 날개처럼 보이는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펼친다. 9월 27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연구에는 바다로빈 다리의 숨겨진 기능을 밝힌 논문 2편이 나란히 실렸다. 인간의 혀처럼 바다를 음미하는 기능도 갖췄다는 내용이다.
다리에 혀의 미뢰 같은 미각 수용체 있어
니콜라스 벨로노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은 실험실에서 바다로빈을 키우며 다리의 독특한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을 관찰했다. 수족관 속에서 바다로빈은 헤엄과 걷기를 반복하다가, 먹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모래 속을 파헤쳐 먹이를 찾아냈다. 냄새를 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종류의 바다로빈이 묻힌 먹이를 찾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프리오노투스 카롤리누스(Prionotus carolinus)라는 종은 살아있는 먹이를 찾을 뿐 아니라, 홍합 추출물이 들어있는 캡슐을 묻어두어도 이를 쉽게 찾아냈다. 심지어 개별 아미노산까지 파악했다. 반면, 프리오노투스 시툴루스(Prionotus scitulus)라는 종은 다리를 단지 헤엄치는 데와 걷는 데에만 활용했다.
벨로노 교수는 “처음에는 일부 종이 기능적으로 떨어져 발생하는 차이인 줄 알았다”며 “연구를 거듭하다 보니 묻힌 먹이를 파내는 촉각과 화학 신호에 민감한 종과 감각 능력은 부족하고, 다리를 주로 이동이나 탐색에 사용하는 종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래를 파헤쳐 먹이를 찾는 종의 다리는 삽 같은 모양을 가졌으며, 인간 혀에 있는 미뢰와 유사한 구조의 돌기가 발달했다. 반면, 땅을 파지 않는 종의 다리는 막대 모양이며, 돌기가 없었다.
벨로노 교수는 “우리 연구진은 땅을 파는 종이 몇몇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서식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며 “이는 다리로 땅을 파서 사냥을 하는 특성이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것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척추동물 사지 만드는 유전자가 바다성대 다리 형성에 관여
이어 데이비브 킹즐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팀이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13종 바다로빈의 유전자를 비교해 다리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척추동물의 팔‧다리 발달에 기여하는 유전자인 ‘TBX3A’의 전사 인자가 바다로빈의 다리 형성에 관여했다. 연구진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바다로빈에서 이 유전자를 제거하자, 다리 돌기와 음식을 맛보는 능력이 일부 사라졌다.
연구진은 바다로빈의 다리가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도록 진화하게 된 이유를 찾는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약 600만 년 전 인간은 직립 보행 능력을 진화시켜, 영장류 조상과 구별됐다. 이족보행은 인류의 중요한 특징이지만 그 변화가 언제‧어떻게‧왜 발생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바다로빈처럼 바닥 생활에 적응한 동물이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킹즐리 교수는 “바다로빈을 ‘기이한’ 물고기로 평가하지만, 이 기이한 특성을 만든 것은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온 유전자”라며 “바다로빈의 행동을 분석하고, 분자적 특성을 규명하고, 진화 가설을 세우는 종합적 연구가 이뤄진 덕분에 진화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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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10-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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