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시절, 4달간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논문을 뒤졌습니다. 생물학자가 야생에서 동물들 간 짝짓기를 한 연구 수백 개를 전수조사했죠. 조사 결과, 태어나서 암컷과 짝짓기에 한 번이라도 성공한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95%의 동물은 암컷 손목도 잡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죠.”
지난 9월 24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前 국립생태원장)가 대전 도룡동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문화센터에서 100여 명의 대중과 만났다. IBS가 개최한 북토크 행사 ‘과학자의 서재 속으로’에 연사로 나선 최 교수는 그의 저서 <숙론>을 주제로 대중과 이야기를 나눴다.
생태학자, 대중과 만나다
최 교수는 충남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설립 전엔 대접받지 못하던 생태학이라는 분야를 주제로 한 국립연구소가 생긴다는 소식에 기뻤고, 기획 용역에 참여하며 국립생태원 설립에도 기여했기에 기꺼이 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런데 임명식 날 최 교수는 생각지도 못한 임무를 받았다. 매년 3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라는 임무였다.
그렇게 문을 연 국립생태원은 소위 ‘개업 특수’를 받았다. 국내 전례 없는,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훌륭한 시설을 갖춘 생태원 개원 소식에 첫해에만 1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하지만 개업 특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부분 관람객은 30만 평이라는 거대한 부지에 꾸려진 공간을 단 1시간 만에 빨리빨리 관람하고 서천을 떠났다. 서천에 남은 것은 관광객이 남기고 간 매연뿐이었다.
최 교수는 “생태원을 운영하며 살펴본 한국의 관람 문화는 독특했다”며 “콘텐츠의 내용보다는 해당 장소에 다녀왔다는 인증이 중요했기 보였고, 한 번 다녀온 장소는 관람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이에 최 교수는 돌아서면 새로운 곳이 생기는 그런 장소로 국립생태원을 꾸려나갔다. 그렇게 임기 3년 동안 무려 35개의 전시를 끊임없이 기획했다. 늘 새로운 콘텐츠를 제시한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국립생태원이 개원한 이후 2년 반 동안 서천 지역에 250개의 음식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임기를 마무리할 무렵 국립생태원 직원은 500명이 넘어섰다.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었다는 의미다.
동물의 소통은 원래 일방적, 노력해야 소통할 수 있어
최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사회’라고 표현했다. 그는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 국가에서 소통이 문제라는 게 참 의아했지만, 평생 연구해 온 동물행동학에 빗대어 생각해 봤을 때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동물행동학 분야에서 3~40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들의 의사소통이 쌍방향적이라고 생각했다. 수컷 새가 아름답게 노래를 하면, 그에 반응한 암컷이 찾아오고, 짝짓기를 통해 알을 낳는 식이다. 그런데 책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동물들의 소통은 일방적’이라는 내용을 논문을 냈다. 그간 쌍방이고, 상호 협력적이라는 정설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성장하며 혼자 공부했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 갑자기 팀, 위원회 등 함께 일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 동물의 소통이 일방적이라고 해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소통은 삶의 업보다. 최 교수는 개미들의 행동학에서 인간의 소통에 도움이 될 단서를 찾았다.
“개미는 ‘80:20 법칙’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사회에 산다.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 그런데 이 개미 사회에는 노사갈등이 없다. ‘사’가 끼어들 틈이 없이 ‘노’가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일개미는 저마다의 ‘사’를 운영한다. 개미를 관찰하며 얻은 교훈은 우리 사회에는 ‘위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일을 맡기고, 맡긴 이후에는 비록 망가질지라도 개입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다.”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4-10-16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