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운 여름이다. 때 이른 더위는 불가항력이지만, 이럴 때 뭔가 속 시원한 일이 생긴다면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좀 높아지지 않을까. 이를테면 복잡한 말, 비판하는 말을 줄이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점차 더워지는 여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높은 기온이 정치인의 언어 복잡성을 즉각적으로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아이사이언스(iScience)지에 발표됐다. 이 연구는 환경요인이 언어와 정치담론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면서 일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정치담론의 단순화가 상황에 따라 유익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기후변화는 사람의 감정과 인지에 영향 미쳐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와 독일 막스플랑크 인구통계연구소는 불쾌감을 줄 정도의 높은 기온과 정치인의 언어 사이의 인과관계를 공동으로 조사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진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화두로 부상했다. 특히 이상고온과 극심한 기온차, 불쾌감을 주는 온도가 사람의 행복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입증하는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이번 연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정치담론과 정치언어, 정치언어의 구조와 복잡성은 사회과학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연구되었던 주제다. 연구진이 서두에 제시한 것처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헤게모니(패권)가 극명했던 과거에 비해 최근 정치담론과 언어 문법은 비교적 포용적이고 단순하다. 정치의 주체로서 대중이 등장하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수한 의미의 포퓰리즘이 시작된 이후 유권자들에게 전략적으로 호소하기 위해서는 덜 복잡한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적 경쟁자와 거리를 둔다거나 전략적으로 특정한 이념을 전달해야 하는 스피커들의 언어는 정치문법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환경과 정치담론 및 언어는 꽤 오랫동안 무관한 주제였다.
그러나 최근 환경적 요인이 의사결정과 같은 중요한 인지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자, 연구진은 높은 기온과 정치인의 언어 복잡성 수준이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한 연구에서는 대기오염(PM2.5)이 정치인의 언어 복잡성을 감소시킨다고 발표했고, 미국‧인도에서는 기온이 높을 때 판사가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린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정치인의 ‘/말:/’이 길고 복잡하면 우리의 관심도 멀~어져
연구진은 미국,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스페인, 독일 등 8개 국가 28,000명 이상의 정치인의 700만 건 이상의 의회 연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기온 변화에 따른 언어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일일 기온과 날짜, 연설자를 매칭하는 모델링을 활용했다. 온도 구간은 0℃에서 27℃ 사이에 3℃씩 간격을 두었으며, 계수는 12℃~18℃의 편안함 영역으로 설정했으며, 연설에 대한 분석은 Flesch-Kincaid 가독성 지수를 활용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높은 기온은 연설의 복잡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평균 기온이 24℃~27℃ 및 27℃ 이상일 때 정치인의 언어 능력이 가장 크게 감소하여 연설에 쓰인 언어의 복잡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언어량도 감소했다. 18℃~21℃ 사이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지만, 더 높은 기온 구간에 비해서는 미미한 정도였다.
이어서 연구진은 연령과 성별 등 모든 변수에 대해 더 자세히 조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높은 기온에서 나타난 언어 복잡성 감소가 추운 날씨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연령과 기온은 언어 복잡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5세 이상의 정치인들은 편안한 기온(12℃~18℃) 구간을 벗어나면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관찰됐다. 일반인이 따뜻한 날씨라고 여기며 담화가 가장 활성화되는 21℃~24℃ 구간에서도 취약성이 나타나, 연구진은 극한 기온이 정치인의 연설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때는 연령을 계층화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뇌의 크기가 작아진다?
지난해 제프 모건(Jeff Morgan Stibel) 미국 자연사박물관 연구원과 연구팀은 과거 기후변화와 인간 뇌 크기 변화의 연관성을 조사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뇌 행동 및 진화(Brain Behavior and Evolution)’에 발표한 바 있다. 연구진은 지구의 온도, 습도, 강우량 변화와 지난 5만 년간 인간 뇌 크기 변화를 분석한 결과 기후가 더워지면서 뇌의 평균 크기가 현저하게 작아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연구가 지난해의 연구와 연결 지어 진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적 요인이 뇌 활동 및 언어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이 연구가 환경 요인이 언어 복잡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후변화 시대, 정치인의 말의 무게
더불어서 연구진은 연구결과와 관련하여 기후변화와 정치 담화의 상관관계가 전반적인 정치 메커니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예상했다. 특히 최근의 기후변화 현실을 고려할 때 극한 기온이 정치인의 언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줌으로써 정치인의 전반적인 생산성과 정치담론의 질이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높은 기온에서 나타난 정치적 담론의 단순화는 상황에 따라 유익한 방향으로 유도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언어 복잡성이 낮아지면 정치담론을 더 쉽게 이해하고 시민들이 정치적 선택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 수 있다.
토비아스 위드만(Tobias Widmann) 오르후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의 연구결과처럼 기후변화는 국회의원이 입법상의 의사결정, 예산기획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주의 과정에서 정치인의 중요한 역할을 고려할 때 극한 기온은 사회 전체에 심오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정치인들의 말은 매우 엄중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선서 위에 쌓여진 그들의 말은 이미 1차적 언어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시대에 이러한 영향을 관리하고 대응하는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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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6-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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