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대략 하루 30-40%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낸다. 규칙적으로 충분한 시간 잠을 자는 것은 몸을 회복시키고, 면역력을 유지하고, 학습효율을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잠을 자는 행동은 시간이나 에너지, 포식자 등에 노출되는 높은 비용이 드는 일인 만큼, 그 기능이 무엇인지는 신경과학분야에 중요하고 흥미롭게 다루는 질문이다.
잠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곤충 등 다양한 종에서 관찰이 된다. 뇌가 없는 해파리류에서는 하루에 ⅓ 가량을 움직임이 둔해지고 반응도 현격히 줄어드는 이른바 ‘잠과 유사한 행동’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 유사 잠을 못 자게 된 경우 그다음 날 감각 자극에 대한 반응이 현격히 둔해지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다. 쥐, 초파리, 벌, 꼬마선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에서 잠이 부족할 때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보고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잠 혹은 잠과 유사한 행동이 오래전부터 진화해 왔음을 암시한다.
다양한 잠
여러 종에서 나타나는 잠은 그 양상도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인간의 경우 밤에 자는 동안 렘수면(혹은 얕은 수면)과 비렘수면(혹은 깊은 수면) 상태를 4-6차례 왔다 갔다 한다. 렘수면 중에는 심박이 높아지고 안구 움직임이 아주 빨라지는데, 뇌파가 마치 깨어있을 때처럼 보이고 근육은 마비되는 상태다. 보통 단기 기억을 장기로 저장한다거나 꿈을 꾸거나 하는 정신적인 프로세스가 이때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비렘수면은 심박수가 낮고 뇌의 체온이 떨어지는 상태인데, 대체로 근육과 신경 등의 회복 등 신체적인 프로세스가 일어나는 때다. 렘수면과 비렘수면을 왔다 갔다 하는 패턴의 잠은 주로 포유류와 조류에서 관찰이 된다.
포유류에서도 고래, 돌고래와 같이 물속에 살면서 호흡을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종들은 뇌의 절반만 잠을 자고 다른 절반은 호흡을 위해 활성을 띠는 형태로 잠을 잔다. 렘수면에 이르면 근육이 마비되어 몸이 바다밑으로 내려가고 숨이 막히게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들이 렘수면의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데, 간혹 거두고래와 같은 종은 하루에 6분 정도씩 렘수면을 한다는 보고가 있다. 또, 물개의 경우 물 안팎을 드나들며 살고, 북방물개와 같은 종은 일 년에 10개월씩을 이주하며 물속에서 지낸다. 이때, 물속에서 지내는 동안은 역시 뇌의 절반만 자는데, 땅 위에서 지낼 때는 렘수면과 비렘수면을 왔다 갔다 하는 수면을 한다. 렘수면의 형태가 종마다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마이크로수면을 하는 턱끈펭귄
그런가 하면, 최근 <사이언스>지에는 4초씩 깜박깜박 졸기를 만 번 하는 방식으로 잠을 자는 펭귄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남극에 서식하는 턱끈펭귄의 이야기인데, 이 펭귄은 자갈로 만든 둥지에 두 개 정도의 알을 낳고 엄마와 아빠가 몇 시간에서 며칠 단위로 번갈아 알을 품는다. 대략 5주쯤 알을 품으면 새끼들이 부화하는데, 이 동안 부모가 경계를 늦추면 도둑갈매기와 같은 천적들이 알을 훔쳐갈 수 있다.
연구진은 14마리의 펭귄에게서 좌우 대뇌반구 각각의 뇌파와 목근육 근처의 근전도, 몸의 자세와 움직임, 다이빙할 때의 압력 등에 대한 정보를 모아 알을 품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나눠 비교했다. 그 결과, 이 펭귄들이 알을 품고 있는 동안은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 잠깐씩 조는 시간이 훨씬 짧아지고 조는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잠깐씩 조는 방식으로 잠을 자는 것을 조류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특히 펭귄에서도 보고된 바가 있지만 이번 보고는 조는 단위가 놀라울 정도로 짧고 대신 하루 만 번이나 졸아서 하루에 누적 수면 시간이 평균 11시간에 달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전에 알려진 황제펭귄의 경우 마이크로수면에 비할 만한 수면을 하긴 하지만 보통은 4분 이상씩 훨씬 길게 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방이 터진 남극 얼음 위에서 새끼가 부화될 때까지 알을 지키기 위해 마이크로수면으로 생존하게 된 펭귄의 이야기. 무궁무진한 진화의 세계는 잠의 형태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 자연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 한소정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23-1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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