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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모가 공 모양을 이루는 이유는? 과학기술 넘나들기(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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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에서 서식하는 녹조류의 일종으로서 마리모(Marimo, 학명 Aegagropila linnaei)라는 희귀한 식물이 있다. 녹색의 둥근 공처럼 생긴 독특하고 귀여운 모양으로서, 마치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처럼 마리모를 집에서 곁에 두고 키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관상식물 또는 이른바 ‘반려 식물(Pet plant)’로도 인기가 높은 마리모는 생물 분류학상 녹조식물강 시오크사과에 속한다.

둥근 공 모양의 녹조식물 마리모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마리모의 자연 서식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일본 홋카이도의 아칸호(阿寒湖)라는 민물호수이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이 호수에서는 1897년에 처음 발견되어 ‘둥근 해조’라는 뜻의 마리모(毬藻, まりも)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으며, 소망을 상징하는 선물용으로도 많이 애용되고 있다. 아칸호에는 약 20만 개체의 마리모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형의 마리모는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알려진 식물이다. 영국 런던의 박물관에는 약 250년 전에 채집된 최초의 마리모 표본이 보관되어 있다.

마리모 종의 식물 자체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민물호수에서 서식하지만 대부분 구형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나마 구형의 마리모가 자라던 유럽의 일부 호수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자취를 감추면서, 이제는 아칸호수가 커다란 공 모양의 마리모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다. 마리모는 아주 작은 실 같은 조류들이 몇 년에 거쳐 서로 결합하면서, 실뭉치처럼 보이는 구의 형태를 이룬다. 마리모 중에 큰 것은 지름이 30cm가 넘는 축구공만 한 것도 있다.

마리모가 왜 식물로서는 매우 희귀한 형태인 둥근 공과 같은 모양을 이루는지는 예전부터 커다란 의문이어서,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동물 중에는 공과 같은 형태의 군체를 이루는 종이 더러 있지만, 식물로서는 전혀 유리하지 않은 외형이기 때문이다. 즉 식물의 경우 원활한 광합성을 위해서는 햇빛을 잘 받도록 표면적이 넓은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자식물들은 잎사귀가 얇고 넓은 형태이다.

그러나 마리모 역시 광합성을 하는 녹조식물임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이 최소화되는 구형을 이룬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이 있었는데, 일찍이 영국의 한 식물학자는 조류가 떠다니다 강물에 휩쓸리며 공 모양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는 마리모가 붙어 있는 자갈들이 호수 바닥을 굴러서 동그랗게 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 일본의 한 생물학자는 마리모가 광합성을 하는 동안 위아래로 떠다니고 회전하면서 동그란 모양을 형성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마리모의 성장을 면밀히 관찰하기는 어려운 일이어서,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았다.

마리모의 서식지로 유명한 일본의 아칸호수 풍경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마리모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의 한 전문가는 아칸호수의 바람과 물살 등 환경적 요소와 마리모의 생존 전략 등을 종합하여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둥근 마리모는 아칸호수 중에서도 북쪽의 추루이만이라는 작은 만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이 지명은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언어로 ‘거친 물결’을 뜻한다고 한다.

호수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면서 마리모들이 움직이는데, 물살에 의해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자리에서 회전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리모 군체를 이루는 가느다란 조류들은 광합성을 위해 빛이 비치는 쪽으로 자라면서 뻗어 나아가는데, 이것이 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고르게 햇빛을 받아 성장하면서 구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아칸호수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한 바람의 독특한 패턴과 적절한 풍속, 그리고 회오리 형태의 물살이 마리모를 떠내려가지 않고 한자리에서 회전하게 만들면서, 구형을 이뤄 성장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마리모가 상당한 크기로 성장한 이후에도 광합성에는 불리할 수 있는 구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아칸호수의 얕은 수역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는 천적 관계의 다른 조류가 마리모의 표면에서 자라면서 광합성을 방해하는데, 호숫가에 강풍이 불면 마리모들이 회전하며 서로 부대끼면서 표면에 붙은 다른 조류를 벗겨낸다는 것이다. 구형을 이룬 덕분에 천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칸호수 이외에 둥근 마리모의 서식지로 알려진 곳으로서 아이슬란드의 미바튼(Myvatn) 호수가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세계 최대의 마리모 서식지로서 수천만 개체의 마리모 군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마리모의 수가 크게 줄어서 이제는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그 원인은 산업 폐기물의 영향으로 인한 서식지의 생태계 파괴 때문이다.

파괴되어 가는 미바튼호수의 마리모 군락 단면 그림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즉 호수에 서식하는 곤충의 유충이 호수 바닥의 진흙을 단단하게 유지하여 마리모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물이 오염되어 수초와 곤충의 유충이 죽으면서 진흙이 부드러워졌고, 따라서 마리모들이 그 안에 묻히거나 납작해지는가 하면 다른 조류의 공격에도 취약하게 되어 미바튼 호수의 마리모는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chol.com
저작권자 2021-01-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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