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자들은 ‘열(heat)’과 씨름을 하고 있다.
기온이나 체온이 올라갈 경우 노인과 같이 취약한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미국 워싱턴대 생리학자인 준 스펙터(June Spector) 교수는 “인체가 열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그 능력을 데이터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예방과 치료법을 개발할 경우 열로 인한 사망과 질병은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100년에는 40억 명 건강을 위협
14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염이 빈번해지면서 사상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0년 사이 열파로 인한 미국 내 사망자 수가 8081명을 기록했으며, 이중 3분의 1이 65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워싱턴대 스펙터 교수 연구팀은 지난 8월 25일 국제 학술지 ‘환경연구(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기온 상승과 관련된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미국에서 여름이 되면 온도와 습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최근 ‘안전하지 않는 날’의 수가 21일에 이르고 있으며, 2050년에는 그 수가 2배로 늘어나고, 2100년이 되면 3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생리학자인 나단 브래들리 모리스(Nathan Bradley Morris) 교수는 현재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열파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육군 환경의학연구소의 생리학자 리사 레온(Lisa Leon) 박사는 기온 상승으로 인한 피해가 도시에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나이가 많고 과체중이거나 심장 질환이 있는 경우 심각한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산업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제 노동기구(ILO)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오는 2100년까지 높은 열(heat)에 노출돼 약 40억 명의 사람들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보고서는 또 같은 기간 세계적으로 생산적인 노동 시간이 2.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남아시아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2조 40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어컨 대신 ‘팬’이 더 효율적, 정책변화 요청
급격한 기온 상승을 대비해 생리학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생리학자들은 인체가 열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통해 높은 기온에도 불구하고 인체 스스로 37°C를 유지해나가는 놀라운 능력을 확인해왔다.
주변 온도 상승으로 인체 내부 온도가 너무 높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이 뇌신경에 전해지면 시상하부에서는 피부에 혈과 확장 신호를 보내 더 많은 혈액을 순환시키고, 땀샘을 작동하는 등의 방법으로 흡수된 열을 잃게 만든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이 너무 강해져 탈수 현상이 일어나고 체온 상승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경련‧피로‧두통‧메스꺼움‧어지러움 등을 특징으로 하는 열 탈진이 일어나고 더위에서 벗어나거나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게 되면 체온이 44°C 이상 상승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혼란과 동요,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상태를 겪은 사람들은 회복 후에도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열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 가운데 약 15%가 신장 질환을 일으키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장기 및 뇌 손상에 이를 수 있다는 논문을 지난 2018년 유럽 컨소시엄이 발표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리학자들은 인체 건강을 해치는 탈수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주변 습도와 온도가 너무 높은 경우 충분한 물을 섭취했다 하더라도 탈수증이 발생하고 있었는데 이는 (열파 속에서) 갈증이 해소됐다 하더라도 탈수증이 계속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발표된 이 연구논문은 열사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열사병에 걸린 마라톤 선수들의 경우 냉수 목욕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있는데, 30분 이내에 체온을 정상 체온으로 낮출 수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다.
에어컨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열에 대한 인체의 대응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것. 호주 생리학자인 울런공 대학의 나이젤 테일러(Nigel Taylor) 은퇴 교수는 “에어컨을 피함으로써 고열에 대한 적응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생리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나이와 건강뿐만 아니라 유전적 요인 등으로 인해 열에 대한 적응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4만 2000명의 원주민 광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약 15%는 고열에 적응할 수 있었지만 25%는 잘 대처하고 있었다. 이런 연구결과는 생리적으로 지구온난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산업현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에어컨 대신 팬을 통해 기온을 냉각시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습도가 70%, 온도가 30˚C인 상황에서 팬이 에어컨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여름 미국에서도 유사한 실험이 있었다. 폭염이 발생한 105개 도시 가운데 80개 도시에서 에어컨의 대안으로 물과 팬을 사용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는데 남서부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생리학자들의 이런 연구 결과가 지구온난화 대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각국 정부의 결단이다. 관계자들은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폭염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 보건당국이 탈수증과 관련된 연구 결과들을 공공정책에 반영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 aacc409@hanmail.net
- 저작권자 2020-11-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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