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하고 그 특성이 알려진 천체 중 지구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토성의 위성 ‘타이탄’이다. 타이탄은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에 이어 태양계서 두 번째로 큰 위성이며 행성인 수성보다도 크다. 짙은 대기를 가지고 있으며 바람이 불고 비도 온다. 화산활동과 지각운동도 일어나며 유기화합물이 확인되기도 했다.
특히 질소와 메탄, 아르곤으로 이뤄진 대기는 약 38억 년 전의 원시지구 대기와 유사하다. 그 중 대부분이 질소인데, 태양계에서 질소 대기를 가진 천체는 지구와 타이탄뿐이며 현재 지구에서도 질소가 대기 구성 성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타이탄에 이와 같은 질소 대기가 형성된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타이탄의 환경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연구가 진행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온도 낮아 자체적인 질소 기체 생성 불가능
태양과 먼 타이탄은 물이 모두 얼어붙어 있는 대신 메탄이 강과 바다 등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증발해 대기 중에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리기도 한다. 이는 메탄의 어는점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태양과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메탄도 충분히 얼어 붙을 수 있다. 그럼에도 메탄이 액체와 기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짙은 질소 대기 덕분이다.
두꺼운 대기는 온실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받게 되는 열에 비해 더 높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질소가 없었다면 메탄도 고체 상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며, 타이탄이 이토록 관심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얼어 붙어있는 차갑고 흔한 천체가 되기 대문이다.
이 질소 대기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가설은 크게 두 가지가 존재했다. 첫 번째는 타이탄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에 질소가 포함돼 있다는 ‘재료물질설’이다. 재료물질설이 맞는다면 질소가 포함될 수 있는 동일한 온도와 압력 조건에서 다른 기체들도 풍부하게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토성 탐사선인 카시니호의 타이탄 대기 관측 결과 예상되는 기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재료물질설은 맞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두 번째는 ‘형성시탄생설’이다. 태양계 형성 직후의 원시 대기엔 암모니아(NH3)가 풍부했는데, 이것이 높은 열에 의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질소가스(N2)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구에 질소가 발생한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카시니호의 탐사 결과 부정되는 증거들이 발견됐다. 타이탄의 중력을 측정해 분석한 결과 암모니아를 분해할 만큼의 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이 밝혀졌기 때문.
결국 큰 가능성 두 가지 모두 타이탄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에 질소대기 형성의 비밀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1.5기압이나 되는 짙은 질소가 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짙은 질소대기, 거대운석의 잦은 충돌로 발생
도쿄대 연구팀은 최근 간단한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이끌어냈다. 이는 재료물질설 보다는 형성시탄생설에 더 가깝다.
연구팀은 원시 대기에 풍부한 암모니아가 풍부했기 때문에 질소 기체는 그로부터 온 것이라 추측했지만, 타이탄엔 열이 부족했다. 연구팀은 그 열이 타이탄 내부가 아닌 외부로부터 온 것이라 생각했다. 태양과 멀리 떨어진 그 곳에 열을 전달해 줄 만한 계기는 바로 운석 충돌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엔 소행성대가, 해왕성 바깥쪽의 카이퍼 벨트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들은 얼음덩어리와 운석 및 소행성들이 고리형태로 분포돼 있는 것으로, 우주를 떠돌던 것들이 태양의 중력에 잡혀 공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궤도상에 행성과 같은 특별히 큰 천체가 없어 넓은 벨트 형태로 분포해 있을 수 있다.
태양계 형성 초기인 약 40억 년 전엔 이와 같이 행성 및 위성이 되지 못하고 떠돌던 크고 작은 운석이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타이탄엔 직경 50km정도의 거대 운석들이 수천 회나 충돌했을 것이라 관련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지구의 공룡을 멸종시킨 것으로 보이는 운석은 그 직경이 약 10~15km정도임을 생각하면 매우 거대한 것들이다.
다수의 거대 운석들은 주변의 행성에 빠른 속도로 충돌했으며 그 순간 매우 높은 열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열은 암모니아에서 질소가스를 발생시킬 정도가 되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질소 대기 형성의 원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50km규모의 거대운석이 충돌할 경우 표면에선 약 2천도에 달하는 열이 발생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고에너지 레이저 총을 이용해 금속파편을 얼음과 암모니아를 혼합한 곳에 초속 11km로 충돌시켰다. 금속은 운석을, 얼음·암모니아 혼합물질은 타이탄의 지표를 재현한 것. 실험 결과, 충돌로 발생한 고온으로 인해 암모니아에서 질소기체가 분해돼 나왔다. 이로써 베일에 싸여있던 타이탄 질소 대기의 유력한 형성 원인이 밝혀진 것이다.
천체의 대기 및 환경 연구에 새로운 시각 제공
이번 연구는 비단 타이탄의 분석에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계 초기, 운석 충돌이 잦았던 현상은 타이탄 외에도 여러 행성 및 위성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잦은 거대운석 충돌과 그로 인해 일어난 화학반응들이 천체들의 특성이 결정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구도 마찬가지다. 지금 운석 충돌이 일어난다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최악의 재난이 되겠지만 그런 과거의 현상들이 지금의 지구를 가능케 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혜성 및 운석의 충돌에 대해 생명체를 탄생시킨 계기로 보기도 한다.
이는 태양계 외의 항성계서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형성과정을 거쳤을 여러 항성계의 천체들에서도 이와 같은 과정이 있었을 거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외계 천체를 발견했을 때, 그 특성과 환경 연구에 커다란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조재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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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5-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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