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천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와 달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먼 당신'과 같은 존재이다. 지난주 태양의 반대편에서 가장 둥글게 빛났던 달은 이번 주에는 새벽하늘에서 작은 쪽배처럼 보인다. 달이 가늘어진다는 것은 해와 방향이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달은 해와 가까워질수록 작아지고 결국은 빛을 잃고 하늘에서 사라지게 된다.
달이 빛나는 이유는 태양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은 결코 해와 같은 방향에서 빛날 수는 없다. 달이 햇빛을 받아 빛나기 위해서는 해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번 일요일에는 해보다 10분 정도 일찍 뜨는 달을 볼 수 있다. 음력 2월에 가장 작아진 달이 뜨는 날이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면 달은 해에서 다시 멀어지면서 새로운 음력 3월이 시작된다.
달이 사라진 저녁의 동쪽 하늘은 봄철의 별들로 가득 차 있다. 북두칠성의 휘어진 손잡이를 따라 지평선 쪽으로 내려오다 마지막에 만나는 백색의 1등성이 처녀자리의 으뜸별인 스피카(보리이삭)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처녀자리의 주인공은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이다. 페르세포네가 보리이삭을 들고 땅으로 올라오면 대지가 봄을 맞게 되고, 서쪽 하늘로 지게 되면 추운 겨울이 온다고 한다. 이번 주에는 봄이 오는 이유를 알려주는 처녀자리를 찾아 별자리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한식과 안타레스
이번 월요일(4월 5일)은 동지(12월 21일)가 지나고 105일째 되는 날로 우리나라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寒食)이다. 한식은 불을 피하고 찬 음식을 먹는 날로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인 청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오기 때문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속담이 생겨나기도 했다.
한식은 한 해 동안 사용하던 불을 끄고 새로운 불을 만드는 고대의 개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대 사람들에게 불만큼 소중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제법 따뜻함이 느껴지는 시절에 일 년 동안 지켜왔던 불을 끄고 새로운 불을 피우는 개화 의식을 치르는 날이 바로 한식이었다고 한다.
한식의 기원으로 우리나라의 옛날 별자리인 28수 중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 전갈자리의 으뜸별 안타레스)이 출현하는 때가 이 무렵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심성은 전갈자리의 으뜸별로 붉은색을 띤 1등성이다. 이 별은 독특한 붉은 색으로 인해 서양에서는 전갈의 심장으로 불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동방을 수호하는 청룡의 심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전갈자리의 안타레스가 떠오르는 시간은 자정 무렵이기 때문에 별과 한식을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는 저녁 무렵에 안타레스가 떠올랐기 때문에 그 무렵에 한식이 시작되었다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이야기 일 수도 하다.
달과 목성, 토성의 만남
이번 주에는 새벽하늘에서 달이 목성과 토성을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달은 4월 6일에 토성 옆에 보이기 시작해서 7일에는 토성과 목성 사이를 지나고, 8일에는 목성의 동쪽(왼쪽)으로 이동한다.
요즘 새벽의 동쪽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바로 목성이다. 현재 목성의 밝기는 -1.7등급으로 1등성과 같은 밝기인 토성보다도 7배 이상 더 밝다. 해 뜨는 시간이 6시 10분경이고 목성과 토성이 뜨는 시간이 4시 정도이기 때문에 5시 정도에 동쪽 하늘을 보면 달과 두 행성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벽은 동쪽 하늘에 보이는 천체들은 해보다 서쪽(오른쪽)에 위치해서 해보다 먼저 떠오른다. 목성과 토성은 공전주기가 각각 12년과 29년 정도로 길기 때문에 달에 비해 거의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구가 목성과 토성 방향으로 공전해 감에 따라 두 행성이 보이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여름부터는 저녁 하늘에서도 목성과 토성을 볼 수 있게 된다. 8월 하순경에는 보름달이 두 행성과 만나게 되고, 가을에는 초승달이 두 행성 옆을 지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봄이 오는 이유를 알려주는 별자리 ‘처녀자리’
북두칠성의 기울어진 국자 손잡이를 따라 지평선 쪽으로 내려가다 두 번째 만나는 1등성이 바로 처녀자리의 으뜸별인 스피카이다. 스피카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대지의 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들고 있는 보리 이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처녀자리에서 스피카를 제외하고 나머지 별들로 처녀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처녀자리를 정확히 찾기 위해서는 처녀자리의 별들이 만드는 작은 모양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처녀의 작은 다이아몬드(Vigin's little diamond)라고 불리는 작은 사각형이 있는데, 이것은 스피카를 정점으로 세 개의 3등성이 만드는 비스듬한 다이아몬드이다. 그리고 여기서 왼쪽 별을 빼고 반대편에 있는 4등성을 넣어 이으면 약간 삐뚤어진 Y자가 된다. 이것이 처녀의 Y(Virgin's Y)로 불리는 모양인데, 처녀의 양 팔과 머리를 차지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처녀의 Y에서 두 개의 별들 더 찾으면 처녀의 컵(Virgin's Cup)이라고 불리는 멋진 칵테일 잔이 그려진다.
처녀가 가장 좋아하는 보석이 다이아몬드이고, 가장 좋아하는 술이 칵테일이라고 생각하면 처녀자리를 찾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맑게 갠 봄날 저녁, 아름다운 별빛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칵테일을 마시는 멋진 처녀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처녀자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볼링 선수가 막 투구를 시작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한다. 이 경우 당연히 으뜸별 스피카가 볼링공이 된다. 볼링을 해본 사람이라면 볼링 선수가 투구할 때 볼링공을 든 손은 뒤로 가고 다른 손은 앞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것이다. 그런데 처녀자리의 주인공은 왼손잡이이다. 볼링공을 든 왼손은 뒤로 가 있고 오른손이 앞으로 나와 있다. 칵테일 잔의 왼쪽 부분이 오른손이고, 오른쪽 부분이 처녀의 머리이다. 자, 그렇다면 나머지 별들 속에서 볼링공을 던지는 처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처녀자리의 으뜸별 스피카와 목동자리의 으뜸별 아크투루스, 그리고 사자자리의 꼬리별 데네볼라는 거의 정확한 삼각형을 이루는데 이들을 가리켜 봄철의 대삼각형이라고 한다. 봄철의 대삼각형은 북두칠성에서 아크투루스를 거쳐 스피카에 이르는 봄철의 대곡선과 함께 봄철에 다른 별자리를 찾는 중요한 길잡이 별로 이용되고 있다.
처녀의 상징으로 불리는 으뜸별 스피카는 세계 여러 곳에서 ‘처녀’나 ‘순결한 것’이란 뜻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봄철에 남쪽 하늘 위에서 백색으로 빛나는 이 별이 무척 순결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별은 태양보다 1만 배다 더 밝고 표면 온도가 2만 도나 되는 초고온의 별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별자리에서는 스피카를 동쪽 하늘을 지키는 청룡의 뿔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처녀자리의 주인공은 저승의 지배자인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저승의 여왕이 된 페르세포네로 알려져 있다. 페르세포네는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딸이었는데 딸을 잃은 데메테르의 슬픔으로 대지가 기운을 잃게 되자, 제우스신이 하데스에게 부탁하여 페르세포네를 일 년의 반은 저승에서 나머지 반은 지상에서 살게 하였다고 한다. 봄에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처녀자리의 모습이 바로 페르세포네가 저승에서 나오는 모습이고, 그로인해 데메테르가 기운을 차리기 때문에 대지에 풀이 돋아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처녀자리가 서쪽 하늘로 사라지는 가을에는 데메테르가 기운을 잃어 낙엽이 지고 풀이 시든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신화에 의하면 처녀자리의 주인공은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Astraea)라고 알려져 있다. 아스트라에아는 신들이 인간을 포기하고 하늘로 떠난 후에도 끝까지 땅 위에 남아 정의를 가르친 여신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더 이상 땅에 머물 수 없게 되자 아스트라에아는 정의를 판단하는 천칭을 들고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인류에게 정의를 베푸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처녀자리 옆에 보이는 천칭자리가 바로 아스트라에아가 가지고 올라간 천칭이다.
- 이태형(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관장)
- byeldul@nate.com
- 저작권자 2021-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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