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지나고 햇빛에 가려졌던 달이 조금씩 동쪽으로 비켜나면서 이번 주에는 예쁜 눈썹 모양의 초승달을 볼 수 있다. 2월의 저녁 하늘에 보이는 초승달은 둥근 부분이 지평선에 거의 수평으로 놓이기 때문에 마치 물을 담고 있는 사발 같다고 해서 젖은 달이라고 부른다. 이번 주가 절기상 봄비가 처음으로 내린다는 우수이기 때문에 젖은 달이 머금은 물이 땅에 뿌려져 봄비가 된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주 별자리 여행의 주인공은 겨울철 별자리와 봄철 별자리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살쾡이자리이다. 살쾡이자리는 88개의 별자리 중 유일하게 고양잇과 동물의 별자리이다. 밤하늘에는 큰개, 작은개, 사냥개(2마리) 별자리에 모두 네 마리의 개가 있지만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다. 살쾡이는 산고양이를 뜻하므로 살쾡이자리를 고양이 별자리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이번 주에는 밤하늘의 유일한 고양잇과 별자리인 살쾡이자리를 찾아 별자리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세차를 이해하면 역사가 쉬워진다
올해는 2021년 신축년 하얀 소띠의 해다. 하늘을 나타내는 10간(干)과 땅을 나타내는 12지(支)를 차례로 배열하여 연도를 세는 것을 세차(歲次)라고 한다. 세차를 이해하면 역사책 속에 나오는 연도를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세차 중 천간(天干)은 모두 10개이기 때문에 1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즉, 연도의 뒤에 나오는 숫자에 따라 천간이 고정된다는 뜻이다. 연도가 4로 끝나는 해가 천간의 첫 번째인 갑으로 시작되는 해이다. 따라서 5로 끝나는 해는 을로 시작되고, 6은 병, 7은 정 등 연도의 끝자리를 알면 세차의 첫 번째 이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이 있던 해는 1884년, 갑오경장이 있던 해는 1894년과 같이 모두 4로 끝나는 해이다. 을사조약이 채결되는 해는 5로 끝나는 해로 1905년, 을미사변은 1895년이다. 병자호란(1636년)은 병으로 시작되는 해이기 때문에 6으로 끝나는 해이고, 임진왜란(1592년)은 임으로 시작되는 해이기 때문에 2로 끝나는 해이다.
지지(地支)는 12년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연도를 12로 나누면 그 해의 지를 알 수 있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중 12로 나누었을 때 딱 떨어지는 해는 신으로 끝나는 해이다. 유는 1, 술은 2, 해는 3, 자는 4, 축 등 연도를 12로 나눈 나머지를 알면 세차의 두 번째 이름을 알 수 있다.
올해 2021년은 1로 끝나는 해기 때문에 천간은 신이고, 2021을 12로 나누면 나머지가 5가 남기 때문에 지지는 축이다. 즉 2021년의 세차는 신축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의 방위를 나타내는 오방색은 10간을 두 개씩 차례로 청(갑, 을), 적(병, 정), 황(무, 기), 백(경, 신), 흑(임, 계) 색을 배정하기 때문에 올해는 신축년 하얀 소띠의 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가장 많이 혼동되었던 연도 중 하나가 바로 갑신정변과 갑오경장이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는 천간이 갑이기 때문에 4로 끝나는 해이고, 지지가 신이기 때문에 12로 나누어떨어지는 해이다. 즉, 1884년은 12로 나누어 나머지가 0인 해이다.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인 1894년은 지지가 오이기 때문에 12로 나누었을 때 나머지가 10인 해이다.
같은 방식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1592년)은 천간이 임이기 때문에 2로 끝나는 해이고, 지지가 진이기 때문에 12로 나누었을 때 8이 남는 해이다. 이런 식으로 세차를 이용하면 정확한 연도를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세차로 어떤 해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수(雨水, 2. 18)
이번 주 목요일인 2월 18일은 24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인 우수이다. 우수는 추운 겨울이 가고 처음으로 비가 오는 절기라는 뜻이다. 월요일부터 비 예보가 있는 것을 보면 24절기가 아직도 꽤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수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춘분점으로부터 330도 떨어진 지점에 올 때로 이날부터 약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된다. 우수는 매년 2월 18일이나 19일에 해당하고, 음력으로는 언제나 1월이다.
그렇다면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정해지는 24절기 우수가 언제나 음력 1월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음력의 한 달이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음력은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음력의 한 달은 합삭(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이 되어 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일로부터 다음 합삭 일까지이다. 그러니까 합삭이 되는 날이 바로 음력 1일이다. 달의 합삭에서 다음 합삭까지의 간격이 29.53일 정도이기 때문에 음력 한 달은 대체로 29일과 30일이 반복되어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29일이 달을 작은 달, 30일인 달을 큰 달이라고 한다.
그럼 이제 24절기로 넘어가서 24절기와 음력이 어떻게 대응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24절기는 다시 12개의 절기와 12개의 중기로 나누어지는데 음력에서 달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 바로 그 달에 든 중기이다. 즉, 우수가 든 달이 음력 1월이 되는 것이고 춘분이 든 달이 음력 2월이 된다. 따라서 우수는 언제나 음력 1월에 오게 되어 있다. 그것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천문학자들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달력을 만드는 일이다. 천문학자들은 달력을 만들 때 먼저 양력으로 달력을 만들고 태양의 황도 위치에 따라 달력에 24절기를 표시한다. 그리고 매달 달의 합삭 일을 계산하여 음력 날짜를 달력에 표시한다. 그런 다음 음력 각 달에 들어 있는 24절기 중 중기의 이름으로 각 음력 달을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 달력을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 바로 한국천문연구원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의 홈페이지(www.kasi.re.kr)에 들어가면 달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약 3년에 한번 꼴로 음력 달 중에 중기가 없는 달이 있게 되는 데 이런 달이 바로 무중월(중기가 없는 달)인 음력 윤달이다. 윤달은 달 이름을 앞 달과 똑같이 쓰게 된다. 올해는 5월 23일부터 6월 20일까지가 무중월인 윤4월이다. 간혹 1년에 두 번의 무중월이 있을 수 있는 데 이때는 앞 달만 윤달로 한다.
유일한 고양잇과 별자리 ‘살쾡이자리’
밤하늘 88개의 별자리 중에는 모두 네 마리의 개(큰개, 작은개, 사냥개 2마리)가 있지만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다. 살쾡이는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로 삵과 고양이가 합쳐진 이름이기 때문에 살쾡이자리를 고양이 별자리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쾡이자리는 3등성 이하의 희미한 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도시의 하늘에서는 찾기 힘들고 맑은 날 시골 하늘에서만 찾을 수 있는 별자리이다.
살쾡이자리가 위치한 곳은 쌍둥이자리와 큰곰자리 사이로 쌍둥이자리의 밝은 두 별과 북두칠성의 국자 그릇 중간 정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별자리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부분은 영어의 Y자 형태를 한 꼬리로 큰곰자리의 앞 쪽 두 발과 정삼각형의 위치에서 찾을 수 있다.
살쾡이자리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라토스(Aratos)에 의해 큰곰자리의 앞부분 정도로 언급되었던 별이었으나, 17세기 후반 폴란드의 천문학자 헤벨리우스(J. Hevelius, ~1687)가 이곳에 있는 19개의 별을 모아 살쾡이자리를 만들었다. 살쾡이자리는 살쾡이처럼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헤벨리우스가 ‘살쾡이 같은 눈을 갖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별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만든 별자리라고 전해진다. 그의 말처럼 살쾡이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아주 좋은 눈이 필요하다.
살쾡이자리는 별자리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설정되기 전까지는 큰곰자리 별들과 혼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살쾡이자리로 인해 큰곰자리가 불완전한 별자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큰곰자리의 앞다리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살쾡이자리의 별들을 이용해서 큰곰의 두 번째 앞 다리를 그리는 학자들도 많았다.
- 이태형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관장
- byeldul@nate.com
- 저작권자 2021-02-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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