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말 애플이 2024년까지 자율주행 전기자동차를 만들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애플은 이에 대해 공식 답변을 내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만한 여력이 있는 회사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가 스마트폰에 이어 자동차 분야까지 진입하려 하고 있다.
현재는 융합의 시대며 그 배경에는 디지털 기술이 있고 애플은 디지털 융합의 강자 중 하나다. 융합은 우리 일상생활에 이미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스마트폰은 가장 대표적인 융합 사례이며, 무형의 서비스로는 IPTV를 들 수 있다.
전기 모터가 아닌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반의 자동차를 보더라도 이제는 자동차에 약간의 컴퓨터 기능이 있는 시대를 넘어 고성능 컴퓨터에 바퀴가 달린 시대로 벌써 진입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이미 보편화된 엔진 전자 제어와 위성 항법을 포함하여, 어느 정도의 자율 또는 안전 판단 주행 기능, 360도 전방위 카메라, 입체로 보이는 계기판 등 디지털 기술이 아니었으면 실현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최신형 자동차에 속속 들어오고 있다.
21세기의 기술 융합에 디지털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디지털과 무관하게 기술 융합이 이미 진행되어 온 사례들도 많다. 수상 비행기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수상 비행기는 물론 날아올라 멀리 가기 위한 비행기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물 위에서는 경우에 따라 배로 쓸 수 있다. 이것을 조금 더 특화한 것이 지면효과 항공기 또는 위그선 즉, WIG(wing in ground-effect) 항공기다.

위그선은 이름 그대로 수면 또는 지면 위를 날개 길이보다 약간 낮은 고도를 떠서 날아간다. 고정익 특유의 지면 효과를 얻어 효율을 최대로 올리기 위해서다. 항공공학과 조선공학이 절묘하게 융합되는 사례다.
최근 들어 멀티콥터로 대표되는 UAM(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모빌리티)이 워낙 주목을 받는 바람에 위그선은 언론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난 듯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 대한 꾸준한 연구개발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양 국가이기도 하므로 해상 운송 분야에서 위그선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UAM이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위그선은 소위 대양을 넘나드는 규모로 물류 사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배라는 융합 관점을 육상에 적용하면 나는 차가 된다. 하늘을 나는 차는 자동차에 날개가 달린 모양으로 연구가 진행되다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지금의 UAM 방향으로 관심이 많이 바뀌게 됐지만 원래의 비행 자동차에 대한 연구개발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UAM은 아무래도 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반면, 비행 자동차는 기존 도로 주행에도 관심을 두는 것에서 차이가 난다. 평소에는 도로를 달리다가 필요할 때 날아오를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항공 기술이 접목될 수 있는 이러한 융합형 분야에서 공통으로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자율 운행이다. 달리든, 날든, 뜨든, 주변 상황을 감지하여 현 상태를 인식하고 안전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자율 운행의 핵심은 똑같다.여기서 말하는 자율 운행은 반드시 무인 조종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유인 조종 상황이더라도 안전에 관한 자율 판단 기능이 붙여짐으로써 안전성은 그만큼 더 올라갈 수 있다.
비행 자동차가 활성화된 어느 가까운 미래의 한 장면을 상상해보자. 연료 또는 전기 가격을 생각하면 나는 것보다는 달리는 것이 더 싸다. 도로를 달리다 보니 정체가 심하다. 이대로 가면 약속 시간에 늦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이제는 날기로 결심하고 비행 모드로 바꾼다. 그런데 정체가 시작되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터. 이미 도로 여러 지점에서 비행 자동차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행 자동차의 자율 통제 없이 오로지 운전자의 '솜씨'에만 안전을 맡긴다면 사고 가능성은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미터가 아닌 센티미터 단위의 정밀한 위치 감지, 정해진 구간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신뢰성 높은 제어, 자연 생태계의 군집 주행 현상이 응용된 충돌 방지 기능, 추진 관련 기능 고장이 일어났을 때 최소 거리 안에서 안전하게 지상 또는 수면으로 착륙시킬 수 있는 고장 안전 고려 설계 등 이제는 과거 어느 특정 기술 또는 전공 분야로 딱히 분류할 수 없는 요소들이 융합적으로 어우러져야만 마침내 믿고 탈 수 있는 자율 운행 시대가 올 수 있다.
화석 연료가 여러모로 미움을 받는 시대가 되었지만, 저장 에너지 밀도에서만큼은 아직은 선두 주자에 속한다. 비록 형태는 화석 연료지만 이를 태워서 에너지를 얻고, 배기가스로 나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후 여기에 신재생 에너지를 투입하여 화석 연료 성분을 다시 합성해낼 수 있다면 이 역시 상당히 친환경적 에너지 순환이라 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융합 기술에 속한다.
융합이라는 관점을 넓히면 할 수 있는 분야 역시 더 넓어지는 것이다. 물론 실현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향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멋진 시도 아닐지 기대해 본다.
- 김상돈 칼럼니스트
- nicedawn@gmail.com
- 저작권자 2021-01-18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