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량이 거의 없으며 보통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기본입자인 뉴트리노(중성미자·그리스 문자 ν로 표시)의 파동과 부딪힌 보통 물질의 원자핵이 통째로 아주 살짝 밀려 나가는 현상이 처음으로 관측됐다.
'결맞음 탄성 뉴트리노 핵 산란'(Coherent Elastic Neutrino Nucleus Scattering·CEνNS)이라고 불리는 이런 현상은 1974년에 이론적 가능성이 제시됐으나 관측이 매우 어려워 43년만에 관측이 이뤄졌다.
이번 연구가 과학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뉴트리노 연구가 현재 우주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주 질량의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천문학적으로 직접 관측되지 않고 있는 '암흑물질'(dark matter)의 성질을 규명하고 현재 지구 등 행성의 구성 물질을 만들어낸 초신성 폭발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관측 작업에는 매우 정밀한 측정이 필요하다. 가벼운 탁구공이 무거운 투포환과 부딪혔을 때 투포환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듀크대, 시카고대,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과학기술원(KAIST), 러시아 쿠르차토프 연구소, 이론실험물리학연구소, 캐나다 로렌시안대 등 4개국 19개 기관 80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 '코히어런트 콜래버레이션'(COHERENT Collaboration)은 사상 최초의 CEνNS 관측 결과를 4일(한국시간)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뉴트리노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질량이 거의 없는 매우 작은 입자다. 광속과 구별이 어려운 초고속으로 움직이면서도 보통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아 '유령 입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트리노는 원자핵이 붕괴하거나 핵끼리 융합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며, 핵융합이 일어나는 태양의 중심부에서도 발생한다. 태양에서 나온 뉴트리노는 지구에서도 손톱 크기 면적에 초당 수천억 개 정도가 지나갈 정도로 많지만, '유령 입자'라는 별명처럼 연구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연구진은 외부 영향이 차단된 정밀 실험을 위해 다년간의 고안을 거쳐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파쇄(破碎) 중성자 소스'(Spallation Neutron Source·SNS)'라는 시설을 이용해 뉴트리노 빔을 발생시키고, 이 빔을 검출기에 쏘아 실험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선이나 가속기에서 발생한 다른 입자들이 실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콘크리트로 지은 지하실에서 검출 실험을 했다. 태양·지표면·대기 등으로부터도 뉴트리노가 오지만, 실험에 사용된 뉴트리노 발생 장치에서 나오는 뉴트리노 빔에 비하면 상호작용 빈도가 매우 낮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지하에 설치된 검출기는 소듐(Na)이 소량 섞인 세슘아이오딘화결정(CsI crystal)에 포함된 세슘이나 아이오딘의 원자핵이 뉴트리노의 파동과 결맞음 반응을 해 아주 살짝 밀려나는 탄성 에너지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금까지 뉴트리노 검출 실험에 수t에서 수천t에 이르는 거대 검출기가 이용된 것과 달리, 검출기가 엄청나게 소형화된 점도 관심을 끈다. 이번 실험에 쓰인 검출기는 14.5kg짜리에 불과하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유종희 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그룹리더(KAIST 물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제시됐던 중성미자의 결맞음 상호작용을 최초로 입증한 연구 결과이며, 암흑물질 검출 실험의 중대한 방해요소 중 하나인 중성미자의 중요한 특성을 이해한 것"이라고 실험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 "초신성 폭발의 원리를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적 기초 자료가 될 것이며, 앞으로 중성미자 응용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연합뉴스 제공
- 저작권자 2017-08-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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