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에 더위를 피해 집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곧 모기들의 공격에 직면한다. 수많은 모기들이 흡혈귀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곤란을 겪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모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마 드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기에 대해 ‘인간을 귀찮게 하고, 몹쓸 전염병을 옮기는 백해무익한 곤충’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말라리아모기는 매년 2억4천700만 명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키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말라리아 뿐만이 아니다. 모기는 활열, 뎅기열, 일본뇌염, 리프트밸리열, 치쿤구니아 바이러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등을 전염시킨다. 일부 과학자들은 모기를 아예 지구상에서 멸종시켜버리자고 주장하며, 실제로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해충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종을 말살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구촌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키면서 인간에게 큰 해를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네이처지는 ‘모기를 아예 지구상에서 멸종시켜버리는 것이 어떨까요?’란 기사를 실었다.
세계 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와 생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질의응답형 기사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기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인간을 괴롭히는 모기는 10여종에 불과미국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에 소재하는 월터리드육군연구소에서 말라리아모기를 연구하고 있는 지타와디 머피 연구원은 모기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현재는 약 3천5백 종(種)으로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이 모기들은 지구상 6대륙의 모든 인간 서식지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인간을 깨물거나 괴롭히는 모기는 10여 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지구 생태계에 도움을 주고 있는 모기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 모기를 멸종시킨다면, 모기를 먹이로 삼았던 먹이사슬의 포식자는 먹이를 잃게 돼 큰 혼란에 빠질 것이고, 모기를 꽃가루 매개자(Pollinator)로 삼았던 식물들 역시 생식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과학자들이 수행하고 있는 ‘모기 없는 세상’에 대한 연구가 ‘상상력 훈련’ 관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며, 과학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일부 대중여론에 편승한 모기 연구에 불만을 표명했다.
그러나 일리노이 주립대 스티븐 줄리아노 박사의 의견은 지타와디 머피 연구원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곤충생태학자인 그는 모기와 인간의 관계를 “어차피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모기가 없어지면 인간의 삶은 전과 다름이 없거나, 오히려 더 편해진다는 것.
의료곤충학자인 브라질 산타카리나 연방대학의 카를로스 브리솔라 마르콘데스 박사도 “모기가 없으면 인류에게 보다 더 안전한 세상이 올 것”이라며 “특히 아노펠레스(Anopheles) 모기를 멸종시키는 것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모기 멸종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북극 툰드라 지역의 생태계 파괴다. 모기 멸종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만일 모기가 사라진다면 “북극 툰드라 지역 생태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극의 동토대는 Aedes impiger, Aedes nigripes와 같은 모기들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라는 것. 봄이 돼 눈이 녹을 때쯤이면 모기의 유충들이 알을 깨고 나와 불과 3~4주 만에 성충으로 성장한다.
캐나다 북부와 러시아에서는 모기가 창궐하는 짧은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 일부 지역에서는 엄청난 모기 군락이 형성돼 마치 구름이 자욱하게 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많은 철새들 모기 없어도 배고프지 않아
노스캐롤라이나주 환경자원부 브루스 해리슨 박사는 “북극의 모기가 사라질 경우 새의 먹이가 사라질 것이므로, 툰드라 지역에 둥지를 트는 철새의 개체 수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미국 농무부에서 의료곤충학 및 도시곤충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대니얼 스트릭만 박사는 그런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며,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미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에서 일하는 캐티 커티 박사(야생생물학)도 “우리는 자욱한 모기 떼에 놀라 북극에 서식하는 모기의 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철새들의 위장을 검사해 보면 모기 시체는 그다지 많이 발견되지 않으며, 새들은 모기보다 다른 날벌레들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뜻밖의 생태계 변화를 걱정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모기는 순록 한 마리당 하루 평균 200ml의 피를 빨아먹는데, 이 때문에 순록은 모기를 피하기 위해 바람을 거슬러 이동한다는 것. 만일 수천 마리에 달하는 순록 떼의 이동경로가 바뀌면 순록 떼가 지나가는 지역의 토양과 식생, 그리고 늑대 등의 육식동물 분포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보고 있다.
모기의 천적으로 유명한 모스키토 피시(Gambusia affinis)와 같은 물고기들 역시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모스키토 피시는 모기를 제거하기 위해 논과 수영장 등에 방류되기도 하는 모기 킬러인데, 모기가 없어지면 당연히 이 물고기도 멸종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모스키토 피시 뿐만이 아니다. 모기를 먹이로 삼는 곤충들, 특히 거미, 도룡뇽, 도마뱀, 개구리 등도 주요 식량공급원을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모기 멸종 반대자들은 지난 6월 발표된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모기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프랑스 카라프그 지역에서 모기약을 대량 살포해 모기를 소탕했다. 그리고 흰털 밭제비(house martins)의 거동을 추적한 결과 모기 소탕 전 둥지당 3개의 알을 낳았는데, 모기 소탕 후에는 2개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모기 멸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모기를 먹는 새들 대부분이 먹이를 다른 곤충으로바꿀 것이며, 이후에는 또 다른 ‘포스트 모기’가 나타나 모기의 빈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네이처지, 보존론보다 박멸론에 더 큰 비중미 질병통제예방본부에 재직 중인 의료곤충학자 재닛 맥앨리스터 씨는 “박쥐의 주식은 이끼이며, 박쥐의 위장관에서 발견되는 모기의 양은 2% 미만”이라며, “모기가 없어진다고 해도 대부분의 식충동물은 굶어죽지 않을 것”이며, “모기 멸종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근거는 그리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모기 보존론자들은 모기 유충의 역할을 강조한다. “모기 유충은 전 세계 수중생태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하천이 범람하는 평원에서부터 일시적인 물웅덩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 속에서 우글거리고 있기 때문에 모기가 사라질 경우 수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기 유충이 여과 포식자(filter feeders)로써 썪은 나뭇잎, 유기물 찌꺼기, 미생물 등을 먹어치우는데, 모기가 없어진다면 어느 누가 모기 유충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모기 박멸론자인 줄리아노 박사는 “모기 유충이 아니더라도 많은 미생물이 유기분해를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기 보존론자들은 “모기 중에서 사람의 피를 빠는 것은 일부 암컷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모기들은 식물의 즙을 빨아 먹으면서 꽃가루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며 “모기가 없어지면 수천 종의 식물들이 번식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모기 박멸론자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작물 중에서 모기에 의해 수분(受粉)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네이처지는 이 같은 논란 속에 모기 멸종이 전반적으로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설사 모기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대체종이 출현해 모기의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보인다고 보았다. 또한 북극 등 일부 지역의 경우 모기 멸종이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키겠지만 지리적 범위는 제한될 것이라고 보았다.
네이처지는 “모기를 멸종시킴으로써 초래할 수 있는 유일한 생태계의 변화는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인구증가가 두려워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는 모기를 살려둘 수는 없다”는 스트릭만 박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모기 보존론보다 모기 멸종론에 손을 들어주었다.
- 이강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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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08-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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