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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현정 리포터
2025-03-31

‘독을 품은 사랑’, 파란줄문어 수컷의 ‘독’한 짝짓기 파란줄문어 교미 후 암컷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치명적인 독 주입해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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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줄문어는 작고 화려한 생김새와는 달리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2월, 호주 퀸즐랜드 프레이저 아일랜드 인근 해변에서 한 관광객이 무심코 들어 올린 조개껍데기 속에 숨어 있던 파란줄문어에게 물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해자는 전신 마비 증세를 보여 헬리콥터로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다. 의료진의 빠른 대처로 생명은 건졌지만, 한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이처럼 파란줄문어는 지름이 10cm도 되지 않지만, 신경 마비성 독소인 테트로도톡신(TTX)을 가진 해양 생물이다. ‘복어 독’으로도 유명한 테트로도톡신은 단 1~2mg만으로도 체내 나트륨 통로를 차단해 호흡 마비와 심장정지를 유발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해양 생물이 가진 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전문가들은 파란줄문어에게 물리는 것만으로도 수 분 내로 치명적인 상황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이 치명적인 독이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에 대한 포식 방어뿐만 아니라 동일 종과의 짝짓기 과정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뇌과학연구소, 환경과학부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수컷 파란줄문어가 짝짓기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암컷에게 독을 주입하여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해 Current Biology 이달 호에 발표했다. 

짝짓기에 독을 사용하는 그들의 ‘위험한 사랑’, 그 이유는 무엇일까? 

파란줄문어는 작고 화려한 생김새와는 달리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wikimediacommons

파란줄문어는 작고 화려한 생김새와는 달리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wikimediacommons

 

생존과 번식 사이에서 진화한 ‘독’의 역할

이번 연구는 고위험 신경 독인 테트로도톡신을 가진 파란줄문어 수컷이 이 독을 어떻게 번식 전략에 사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설계됐다. 

파란줄문어는 성적 이형성이 큰 종 중 하나다. 암컷의 평균 체중은 16.7g인 반면, 수컷은 10.3g 정도에 불과하다. 짝짓기 과정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생식 갈등은 크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대부분 크기가 작은 수컷이 물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암컷이 수컷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잡아먹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팀은 수컷 파란줄문어가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짝짓기 중 암컷을 잠시 마비시켜 공격이나 저항을 줄이려는 전략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고 이를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실험은 총 6쌍의 파란줄문어를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들의 짝짓기 전후의 행동학적 변화와 생리 반응을 고해상도 영상 분석 및 MRI 기반 조직 계량을 통해 추적했다. 

실험을 통해 밝혀진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수컷 파란줄문어의 ‘후방 침샘(Posterior Salivary Gland, PSG)’이 암컷에 비해 평균 5배 이상 크게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체중 대비 PSG의 비율을 나타내는 PSI 지수 또한 수컷에서 유의미하게 높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는 수컷이 독 분비를 짝짓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생리적 진화의 흔적이라고 해석했다. 논문 제1저자인 정웬숭 박사는(Wen-Sung Chung)는 “우리는 독이 이 종에서 단지 방어 기작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수컷이 번식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암컷의 다리 길이는 대체로 동일하며, 각 다리에는 약 90개의 빨판이 분포한다. 반면 수컷의 오른쪽 세 번째 다리는 짧으며, 이 다리에는 약 40개의 빨판만 존재하고 나머지 다리에는 각각 약 70개의 빨판이 있다. ⒸCurrent Biology

암컷의 다리 길이는 대체로 동일하며, 각 다리에는 약 90개의 빨판이 분포한다. 반면 수컷의 오른쪽 세 번째 다리는 짧으며, 이 다리에는 약 40개의 빨판만 존재하고 나머지 다리에는 각각 약 70개의 빨판이 있다. ⒸCurrent Biology


포식당하지 않는 방법은 상대를 기절시키기?

연구팀은 파란줄문어의 짝짓기 과정이 일관되게 공격성과 신경 억제 반응을 동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암컷의 몸통을 감싸고 등 뒤에 올라타는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이는 정확한 해부학적 목표 부위에 독을 주입하기 위한 준비 동작으로 수컷은 자신의 입을 이용해 암컷의 대동맥이 지나는 두부 후면에 교합하여 독을 주입한다. 

실제로 수컷이 교합한 후 암컷은 약 8분 내에 호흡 운동이 완전히 정지되고, 체색이 창백해지며 동공 반응이 사라졌다. 이는 테트로도톡신 중독의 전형적인 신경계 마비 증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짝짓기 과정은 평균 약 59분간 지속되었는데, 이후 암컷이 의식을 회복하면서 수컷을 밀쳐내며 종료되었다. 실험군 중 한 사례에서는 수컷이 대동맥을 비껴간 위치를 물어서 암컷이 35분만에 깨어나 짝짓기가 조기 종료되었다. 독의 정확한 전달이 짝짓기 성공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후 일부 개체는 교합 부위에 직경 5~8㎜ 크기의 부종과 외상 흔적이 남아 그 상처가 3일 이상 지속되었다. 연구팀은 이것은 독의 주입이 단순한 접촉이 아닌 실제 생리적 침습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퀸즐랜드대학교 뇌과학연구소 정웬숭 박사는 “수컷은 구조적으로 단축된 팔과 작은 체구를 극복하는 대신, 생리적 수단으로 독을 진화시킨 것”이라며, 이러한 짝짓기 전략이 성적 갈등을 조절하기 위한 독특한 생물학적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사례임을 강조했다.

(G) 짝짓기가 끝난 후 암컷 머리 뒤쪽에 부풀어 오른 부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H) 이 부위에는 약 3일 후 피부 손상이 관찰되었으며, 이는 수컷의 물림(교합)에 의한 상처로 추정된다. ⒸCurrent Biology

(G) 짝짓기가 끝난 후 암컷 머리 뒤쪽에 부풀어 오른 부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H) 이 부위에는 약 3일 후 피부 손상이 관찰되었으며, 이는 수컷의 물림(교합)에 의한 상처로 추정된다. ⒸCurrent Biology


‘독’에 쏘인 암컷은 왜 죽지 않을까?

한편, 흥미롭게도 독에 노출된 암컷들은 모두 생존했으며 3~29일 이내에 산란했다. 이는 파란줄문어의 암컷이 테트로도톡신에 대해 생리학적 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박사는 “암컷이 완전히 마비되었다가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종에서 독성과 생식 전략 간의 절묘한 균형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파란줄문어가 테트로도톡신 내성 유전형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나트륨 채널 구조의 아미노산 치환에 기인한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생리적 내성은 동족 간 사고사, 특히 자가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진화한 특성이며, 수컷의 짝짓기 전략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전 연구에 따르면 유사종인 큰 파란고리문어는 신경세포의 나트륨 채널에 아미노산 치환이 일어나 있다. 나트륨 채널은 신경 자극이 전달되는 필수적인 단백질 구조이며, 테트로도톡신은 이 채널에 달라붙어 신경 기능을 마비시킨다. 하지만 큰 파란고리문어 종은 세 가지 아미노산 치환으로 테트로도톡신 결합 친화도가 낮아지며, 자가중독을 방지하는 주요 내성 매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이로써 ‘독’이라는 생리학적 무기가 방어나 포식에 국한되지 않고 생식 성공을 위한 갈등 조절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흥미롭게도 이와 유사한 전략은 일부 전갈에서도 관찰되며, 수컷이 교미 중 반복적으로 암컷을 찌르며 공격성을 억제하는 행동이 보고된 바 있다.

연구진은 향후 짝짓기 후 암컷 체내의 테트로도톡신 잔류량 분석과 유전자 발현 수준에 대한 정량적 연구를 통해 독의 생화학적 및 유전적 메커니즘을 더욱 정밀하게 규명할 계획이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3-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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