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끝나간다. 신년에 세웠던 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할 때다. ‘다이어트’에 실패한 사람이 있다면 핑계인 동시에 어쩌면 참담한 현실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연구진은 우리 몸이 ‘비만의 기억’을 간직하는 이유를 분자 수준에서 분석하고, 그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11월 18일 자에 발표했다.
지독한 비만의 추억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은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독한 마음이 필요하다. 통계에 따르면 식이 요법을 통한 체중 조절 실패율은 무려 60~90%에 달한다. 다이어트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게 되면 체중은 더욱 증가하는데, 이를 요요현상이라고 한다.
몸은 자기 체중을 기억한다. 에너지 공급량(식사량)과 소비량(활동량)이 어느 정도 변해도 일정한 체중을 유지하려 한다. 식이조절을 위해 식사량을 줄이면, 몸은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 에너지 고갈을 막는다. 이때, 어느 정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여기고 평소 식사로 돌아오면 에너지 과잉 상태로 변하고, 남아도는 에너지를 체지방 형태로 바꾼다. 즉, 살이 다시 찐다. 이처럼 신체가 체중 변화가 있을 때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만 기억’을 유지한다고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비만 기억의 분자 수준의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비만의 추억은 지방 세포에 새겨진다
페르디난도 본-메이옌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팀은 요요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연구진은 비만 생쥐와 다이어트를 통해 체중을 줄인 생쥐의 지방 세포를 비교 분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6주령의 생쥐에게 고지방 식단을 제공해 비만하게 만든 뒤, 이후 저지방 식단으로 다이어트를 시켰다. 다이어트한 생쥐는 표준 사료 식단으로 전환한 뒤 4~8주 만에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방 세포의 유전적 분석 결과, 비만할 때 생긴 유전적 변화가 체중 감량 후에도 유지됐다.
인간 세포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비만하지 않은 18명의 지방 세포, 위 축소술·우회술 등으로 체질량지수를 25% 이상 감량한 20명의 수술 전과 후의 지방 세포에서 RNA 염기 서열을 비교했다. 그 결과, 한번 비만을 경험했던 사람의 세포는 체중 감량 후에도 비만 상태에서 나타나는 일부 유전자 발현 상태가 체중 감량 후에도 유지됐다. 수술 후 2년이나 지난 시점이었지만, 지방 세포의 상태는 비만일 때와 유사했다는 것이다.
본-메이옌 교수는 “비만으로 인해 지방 세포에 새겨진 유전적 표지는 다이어트 후에도 유지되고, 표지를 가진 생쥐는 다시 고지방 식단을 섭취했을 때 더 빨리 체중을 회복한다”며 “비만은 지방 세포 핵에서 후성유전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억은 얼마나 오래 유지되나
그렇다면 비만의 기억은 평생 유지되는 걸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자와 달리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환경적 요인, 식습관 등에 의해 바뀔 수 있다. 다만,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이 변화가 유지된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지방 세포가 비만의 기억을 얼마나 오래 간직하는 지에 대해서 조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방 세포는 비교적 수명이 길고, 평균적으로 우리 몸이 기존 세포를 새로운 세포로 대체하는 데까지는 약 10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비만의 기억을 없애기는 쉽지 않다.
이번 연구는 지방 세포가 비만에 대한 후성유전적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기억을 간직하는 세포가 지방 세포가 유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향후 뇌, 혈관 그리고 기타 장기의 세포도 비만을 기억하는지 등을 규명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제1저자인 라우라 힌테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박사는 “현재의 약물로는 세포에 새겨진 후성유전적 표지를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미래에는 가능해질 수 있다”며 “처음부터 과체중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요요 현상을 극복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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