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하던 까까(태명)의 울음소리에서 희미하게 엄마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울음에 섞여 희미하게 들리더니 점차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엄마라고 말한다. (물론 까까의 경우 아빠를 먼저 말하긴 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는 원하는 것을 지시하며 ‘이거’를 내뱉기 시작했다. 아이가 내뱉는 첫 단어의 경이로움은 단숨에 잠자리에서 오늘 하루가 얼마나 새로웠으며, 행복했는지 대화를 도란도란 나누는 모습을 꿈꾸게 한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말 배운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동안 우리는 태교라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수많은 말을 건넨다. 태아 시절에 이어 아기가 옹알이나 울음으로만 대답하는 6달 정도까지는 일방적인 대화만 이어진다. 하지만 이 대화가 헛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청각이 완성되는 약 30주 차의 태아 시절부터 아이가 말을 배우기 때문이다.
미국 퍼시픽 루터란대학교 연구진은 갓 태어난 신생아가 모국어를 구분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2013년 국제학술지 ‘소아과기록(Acta Paediatrica)’에 보고된 이 실험은 미국과 스웨덴에서 태어난 지 3일 이내의 신생아 8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헤드폰을 이용해 아기들에게 모국어 모음 17개와 외국어 모음 17개를 들려줬다. 뚜렷한 모음 소리가 자궁의 시끄러운 배경 소음을 뚫고 아기에게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언어에 대한 흥미를 공갈젖꼭지(쪽쪽이)를 빠는 행위로 평가했다. 모국어와 외국어를 들었을 때 쪽쪽이를 빠는 횟수 차이를 비교했다. 미국과 스웨덴 아기들 모두 모국어보다 낯선 외국어 모음을 들었을 때 쪽쪽이를 더 많이 빨았다. 모국어가 들려올 땐 빠는 행위를 줄이고, 더 들으려 했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패트리샤 쿨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교수는 “기존에는 신생아는 ‘백지상태’로 태어나 학습한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임신 마지막 10주 동안에는 엄마로부터 언어의 기본 소리를 배우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연구”라며 “태아기 동안 모음을 배운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에도 상당히 정교하게 뇌를 사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태아의 뇌는 모국어에 최적화된다
이 같은 태아의 행동 차이가 단순한 흥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자궁 속에서 자주 들은 언어와 태아의 뇌가 동기화되어 특정 언어를 습득하도록 준비한다. 2023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실린 연구에서 이탈리아 파도바대학교 연구팀은 태어나기 전 언어 경험이 아기 뇌의 기능적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파리의 산부인과에서 프랑스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3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태어난 지 5일 이내 신생아들은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특별한 모자를 쓰고 검사를 진행했다. 모자에는 청각 및 언어 인식과 관련된 뇌 영역의 뇌파를 비침습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전극이 10개 부착되어 있다.
연구진은 신생아들이 자는 동안 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을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버전으로 들려줬다. 실험 결과,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들었을 때만 뇌 활동이 크게 증가했다. 프랑스어와 운율이 비슷한 스페인어에는 약하게 반응했지만, 영어에는 전혀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신생아가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 연구가 국제 입양이나 청각 장애 등 태아기 언어 노출의 기회를 놓친 아이들이 언어 발달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태아기 언어 노출은 언어 발달을 도와줄 수는 있어도 발달 결과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쥐디트 제르밴 파도바대 교수는 “생후 1일, 6개월, 2년 된 아기들의 출생 후 경험이 신경 진동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뇌 활동 패턴이 달라진다”며 “다양한 생애 단계에서 패턴 변화를 연구하는 것은 단어 학습과 같은 중요한 언어 발달 이정표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뱃속 태아에게 영어로 말한다면?
모국어가 두 개인 경우엔 어떨까. 전 세계 인구의 43%인 3.3억 명이 이중언어를 사용한다. 신생아들이 태아 시절 반복적으로 들었던 언어를 기억하고, 뇌가 동기화된다면 이들은 ‘모태 이중언어자’가 될까.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연구진은 지난 5월 22일 국제학술지 ‘인간 신경과학 최전선(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에 산모의 다중언어 사용 여부에 따른 신생아의 언어 민감도를 측정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실험은 카탈루냐에서 태어난 신생아 13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카탈루냐는 인구의 12%가량이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를 모두 사용한다. 실험에 참여한 산모 중 41%는 단일 언어(스페인어)만 구사했고, 59%는 이중 혹은 다중 언어를 사용했다.
연구진은 뇌 전도 검사를 통해 신생아들의 뇌 활동을 분석했다. 단일 언어 산모의 아기는 이중 혹은 다중 언어 산모의 아기에 비해 해당 언어의 모음을 들을 때만 전기 생리학적 뇌 반응인 ‘주파수 추종 반응(FFR, Frequency-Following Response)’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FFR은 청각 학습, 언어 경험, 음악 훈련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지표다. 즉, 뚜렷한 FFR은 뇌가 해당 언어를 더 효과적으로 학습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이중 혹은 다중 언어 산모의 아기는 여러 언어의 모음에서 FFR 반응이 높게 나타났지만, 어떤 언어에서도 최대 반응을 생성하지는 않았다.
조르디 코스타 파이델라 바르셀로나대 교수는 “이 연구가 다중 언어를 사용하는 부모에게 어떤 권장 사항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언어 습득에 있어 민감한 시기는 출생 후에도 오래 지속되므로 태아기의 경험은 출생 후 경험에 의해 가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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