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mălus (나쁜) + āër (공기)
말라리아(Malárĭa, 혹은 학질)는 원생동물인 열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매년 전 세계적으로 2~ 3억 명 이상의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질병이다. 감염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2주에서 때로는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며 대표 증상으로는 발열, 오한, 설사, 복통, 호흡곤란, 발작 등이 나타난다. 주로 열대지방에서 발병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매일 한 명 이상 환자가 발생할 정도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감염병이다.
지난 1990년대 중후반부터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꾸준히 감소되어왔다. 이는 1990년대 자선단체, 정부, 개인 자선가들이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보건 위협 중 하나였던 말라리아의 퇴치를 목표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기 때문이다. 당시 매년 전 세계에서 최소 100만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었으며, 그중 대다수가 어린아이들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1998년에 공식적으로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이 시작되었는데,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은행과 같은 글로벌 기관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은 협력 업체들은 피해 지역에 모기장과 실내 살충제 스프레이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주로 사용되던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에 대한 내성이 생긴 모기들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신약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더 이상 줄지 않고 있다. 발병 건수는 현재 상당히 정체되어 있는 듯 보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최근 10년 사이 말라리아 환자 수 정체 후 급격한 증가세
1998년에 시작된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 등의 노력 덕분에 인류는 2010년까지 전 세계의 말라리아 사망자 수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앞선 설명처럼 2015년부터는 그 수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말라리아 감염 환자 수는 비슷하게 유지되다 최근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0년 전 세계 말라리아 사망자 수가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14년 약 2억 3천만 건이었던 말라리아 감염 추정 건수가 2022년에 2억 4천8백만 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결과가 공개되자 옥스퍼드 대학교 열대의학 교수 니콜라스 화이트(Prof. Nicholas White)와 과학자들은 의학 저널 랜싯(Lancet)에 WHO에 보내는 공개 호소문을 발표했다. 화이트는 자신의 결과에 따르면 2022년의 수치는 2000년에 추정된 말라리아 환자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수십억 달러의 전 세계적 투자, 수년간의 예방 요법 연구, 수십억 달러의 치료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발병 건수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일까?
WHO, “진전이 정체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 세계 인구 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해석”
WHO는 화이트의 질문에 대해서 화이트의 결과 및 수치는 전 세계 인구 증가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잘못된 결과 해석이라고 답했다. 즉, 2000년 전 세계 말라리아 발생률과 사망률을 2020년까지 매년 위험에 처한 인구에 적용하면, 2000년 이후 지난 20년간의 투자를 통해서 약 1,100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17억 건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WHO는 화이트가 주장한 “말라리아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며, 진전이 정체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WHO는 이러한 정체 현상의 원인이 매우 복잡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말라리아의 위협이 가장 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말라리라 퇴치를 위한 자금이 부족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가 약에 대한 내성을 빠르게 획득하며 이를 우회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라리아 연구자이자 감비아의 런던 위생 및 열대의학대학 의학연구위원회 유닛을 맡고 있는 움베르토 달레산드로(Umberto D'Alessandro)는 말라리아 통제와 치료는 인간과 모기가 서로가 가지고 있는 ‘무기의 경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충제 스프레이, 약물 또는 신속한 테스트가 개발되는 만큼 모기나 기생충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라리아를 전파하는 많은 모기가 주요 살충제에 내성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기생충까지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에 내성을 갖게 되었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동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모기인 아노펠레스 스티븐시(Anopheles stephensi)가 출현했다. 다른 말라리아 매개 모기와 달리 스티븐시 모기는 도시에 퍼질 수 있어 좁은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은 말라리아 연구 자금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WHO에 따르면 가장 최근의 기록인 2022년 말라리아 연구 및 개발 자금이 지난 15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2007년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가 생전에 말라리아를 퇴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가능성이 극히 희박했지만 크고 작은 성공을 바탕으로 최소한 퇴치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의 시도 후 말라리아 퇴치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화이트, 말라리아 위기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 촉구
화이트는 말라리아 감염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정체된 데에 대한 이유로 전쟁, 민영화, 경기 침체와 같이 보건 시스템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과 나라의 부패 및 시스템 비효율성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2015년 이후로는 말라리아 발병 감소세 정체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심층적인 분석이 없었기에 여러 기관들이 개입한다고 해서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의견을 표했다.
반면에 2023년 WHO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세계 말라리아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말라리아 퇴치가 정체를 보이고 있는 이유로 제한된 의료 접근성, 지속적인 분쟁,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 자금 부족, 살충제 내성과 같은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백신도 말라리아 퇴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두 가지 말라리아 백신(RTS,S와 R21/Matrix M)이 WHO의 승인을 받은 바 있다. RTS,S는 이미 배포가 시작되었고 R21은 2024년 5월에 배포가 시작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백신의 기능과 효능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만 백신 접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연구자들, 우연히 말라리아 전염을 막을 수 있는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 발견
2023년 여름, 말라리아 전염 방지를 위한 ‘세런디피티(serendipity: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 이루어지는 현상)’ 결과가 사이언스에 게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제약 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운영하는 스페인의 한 연구소 과학자들은 우연한 계기로 약물 개발용 모기들이 더 이상 말라리아를 퍼뜨리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자연에서 존재하는 박테리아 종류인 ‘TC1’이 모기 내장 속 말라리아 원충 감염을 막았음을 발견했다.
자네스 로드리게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를 통해서 해당 박테리아가 모기의 원충 감염률을 최대 73%까지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위 박테리아는 한번 모기 몸속에 들어가면 평생 남는다는 사실도 발견했기에 해당 연구는 말라리아 퇴출에 단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현재 이를 실용화하기 위해 안전성 평가 실험을 진행 중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4-05-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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