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볼 수 있는 ‘인공 뇌’가 제작됐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연구진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신경조직을 제작하고, 뇌의 신호 전달 과정을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2월 2일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에 게재됐다.
인간 뇌를 모방하기 위한 시도
인간 뇌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연구가 활발하다. 오가노이드는 3D 프린터나 줄기세포를 이용해 만드는 장기 유사체로 ‘유사 장기’로도 불린다. 뇌 오가노이드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뤘다. 202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는 인간의 줄기세포로 만든 뇌 오가노이드를 갓 태어난 쥐의 뇌에 이식해 배양한 연구도 나왔다. 당시 오가노이드가 쥐의 신경회로와 통합되며 뇌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확인됐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배양한 오가노이드가 실제 장기를 그대로 모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신경회로, 혈관 등 복잡한 연결을 가진 실제 장기처럼 오가노이드를 재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천 장 위스콘신-매디슨대 교수는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방식으로는 고유한 형태와 위치를 재현하여 오가노이드를 제작하기 어렵다”며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하면 세포의 유형과 배치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3D 프린팅을 이용한 제작은 세포를 배치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우선, 프린팅 과정이나 바이오잉크의 구성 요소가 세포의 생존 및 분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또한 세포를 정확한 위치에 배치했다고 해도 각 세포 간의 기능적 연결성을 형성하는 것도 큰 도전과제였다.
인간 대뇌 피질 층 구조 모방해 수평으로 인쇄
연구진은 기존 3D 프린팅 기술을 수정해 한계를 극복했다. 우선, 수직으로 재료를 쌓아 올리던 기존 3D 방식을 수평으로 재료를 덧붙이는 방법으로 바꿨다. 인간의 뇌처럼 여러 층을 가로지르며 연결을 형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세포의 생존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바이오잉크를 제작했다. 줄기세포에서 성장한 뉴런을 바이오잉크에 넣어 프린트한 조직은 서로 견고하게 붙어있으면서도 각 뉴런이 성장하고 교류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인간 만능줄기세포(hPSCs)를 이용해 다양한 신경 전구체를 제작한 후, 이들 세포를 3D 프린팅 기술로 정밀하게 배치했다. 기존 제작 기술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정밀도로 뇌세포를 정확한 위치에 배치할 수 있었다. 프린트된 신경 전구체는 뉴런 및 별아교세포 등으로 분화됐다.
연구진은 프린트된 신경조직에서 뉴런 간의 전기적 신호 전달과 같은 기능적 연결성을 확인했다. 시간이 흐르며 신경조직에서 별아교세포가 성장하면서 복잡한 가지를 형성했으며, 뉴런이 방출한 글루타메이트를 별아교세포가 흡수하기도 했다. 뉴런과 별아교세포 간의 상호 연결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대뇌 피질 뉴런을 자극했을 때 대뇌 피질 층에서 멀리 떨어진 뉴런에서도 반응이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질병 발생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플랫폼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질병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도 3D 프린터로 만든 뇌의 질병 모델링 응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알렉산더 병 유래 별아교세포로 뇌 조직을 3D 프린팅했는데, 대조군에 비해 시냅스 밀도가 현저히 감소되는 것을 확인했다. 인간 뇌에서 관찰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알렉산더병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 질환으로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장기적으로는 손상된 뇌 조직을 대체할 수 있는 이식 가능한 뇌를 만드는 데 이번 기술이 사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뇌졸중, 신경 퇴행성 질환, 외상 후 뇌 손상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 방법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다만, 실제 뇌의 3차원적인 구조와 네트워크를 탐구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연구진은 혈관이 없는 조직에서 산소의 확산 한계를 고려하여 오가노이드의 각 층의 두께를 50㎛로 제작했다. 이는 실제 뇌 조직에 비해 매우 얇은 두께로 뇌의 복잡성을 모방하지는 못한다.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만든 뇌가 이식이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이식 후 장기적 생존 및 기능 그리고 면역 거부 반응 등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아직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지만 뇌의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모방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하여, 뇌과학과 재생의학 연구에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4-03-2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