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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권예슬 리포터
2024-01-25

‘이 분자’가 사람과 개의 시각 차이 결정한다 미니 망막, 망막 오가노이드가 알려주는 시각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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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형형색색의 심미적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비결이 밝혀졌다. 적색 원추세포를 형성하는 데 핵심인 분자를 규명한 덕분이다. ⓒGettyImages

사람은 색깔을 구분하는 원추세포가 세 개의 광수용체로 구성돼 있다. 반면 개는 두 개의 광수용체만 있어 빨간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 색맹이다. 광수용체의 밀도에 따라 사람마다 색감을 다르게 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왜 개 등 일부 동물을 볼 수 없는 색을 볼 수 있는지, 사람마다 색각(color vision)이 다른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망막을 모사한 세포 덩어리, 망막 오가노이드의 개발로 이 의문이 차례차례 풀리고 있다.

 

줄기세포로 미니 망막 제조

로버스 존스턴 미국 존스홉킨스대 생물학과 교수팀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를 망막 오가노이드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오가노이드는 일종의 ‘미니 장기’로 인체 장기와 유사한 구조, 세포 구성, 기능을 지닌 세포의 덩어리를 말한다.

당시 연구진은 망막 형성에 필요한 영양소 등을 공급하며 줄기세포를 2주간 배양해 20~60개의 작은 세포 덩어리로 성장시켰다. 이후 9개월 동안 키워 빛에 반응하는 인공 망막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니 망막은 반구 모양으로 빛에 반응하는 광수용체를 지니고 있어 원추세포의 기능을 수행했다.

▲ 청색 원추세포는 청록색 녹색 및 적색 원추세포는 녹색으로 표시한 망막 오가노이드. ⓒSarah Hadyniak/Johns Hopkins University
▲ 청색 원추세포는 청록색 녹색 및 적색 원추세포는 녹색으로 표시한 망막 오가노이드. ⓒSarah Hadyniak/Johns Hopkins University

연구진은 이 연구에서 오가노이드가 망막을 형성하면서 원추세포를 형성하는 과정도 관찰했다. 원추세포는 기존 정설처럼 푸른색을 감지하는 청색 원추세포가 먼저 생기고, 뒤이어 적색 및 녹색 원추세포가 나타났다. 추가 연구를 통해 연구진은 원추세포의 형성 순서를 결정하는 것이 갑상선 호르몬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갑상선 호르몬 수용체를 제거하자 청색만 감지하는 망막이 만들어졌다. 망막 발달 초기에 갑상선 호르몬을 더 많이 첨가한 경우, 적색과 녹색만 볼 수 있는 망막이 만들어졌다. 엄마에게서 갑상선 호르몬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미숙아에게서 시력 장애가 생기는 이유가 규명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분자

이로부터 6년이 흘러 연구진은 망막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또 다른 놀라운 성과를 냈다. 지난 11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연구진은 개나 고양이와 같은 일부 동물과 달리 사람이 여러 색을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분자를 발견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세포가 우연히 녹색 또는 적색을 감지하는 ‘동전 던지기 메커니즘’을 통해 적색 원추세포가 형성된다고 여겨왔다. 실제로 녹색 원추세포와 적색 원추세포는 빛을 감지하여 뇌에 어떤 색이 보이는지 알려주는 ‘옵신’이라는 단백질을 제외하면 매우 유사하다. 유전적 일치도는 96%에 달한다.

▲ 인간 망막의 일부분. 점선은 청록색으로 표시된 녹색 원추세포와 분홍색으로 표시된 적색 원추세포를 보여준다. ⓒSarah Hadyniak/Johns Hopkins University

연구진은 미묘한 유전적 차이까지 규명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기술 덕분에 ‘미니 망막’에서 200일 동안 원추세포의 비율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기존 정설과 달리 적색 원추세포가 ‘우연히’ 혹은 ‘갑자기’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레티노산’이라는 분자에 의해 형성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망막 발달 초기 단계에서 높은 수준의 레티노산에 노출되면 녹색 원추세포의 비율이 늘어난다. 반면, 낮은 수준의 레티노산 노출은 망막의 유전적 지시를 변경해 후기 발달 과정에서 적색 원추세포를 생성하도록 한다. 연구진은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번 연구의 의미는 망막 발달 초기에 레티노산이라는 분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라며 “원추 세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수행한 사라 하디니악 박사과정생은 “오가노이드에서 녹색과 적색 원추세포의 비율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연구진은 레티노산이 원추세포 형성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진은 700명의 성인 망막을 조사한 결과 사람마다 녹색과 적색 원추세포의 비율이 다르다는 것도 확인했다. 시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사람마다 비율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이유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를 주도한 존스턴 교수는 “만약 원추세포가 사람의 팔 길이를 결정한다면, 비율 차이로 인해 ‘놀랍도록 다른’ 팔 길이가 나타날 것”이라며 “망막 오가노이드 덕분에 시각이란 매우 인간적인 특성을 처음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개나 고양이와 달리 인간의 시각을 인간답게 만드는 비밀이 일부 풀렸지만, 근본적 이해까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GettyImages

후속 연구에서 연구진은 원추세포가 다른 세포 및 신경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갈 계획이다. 이를 규명하면 망막 중심 부분의 빛 감지 세포 손실을 일으키는 황반변성과 같은 질병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4-01-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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