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중추신경계는 뇌와 등에 있는 척수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척수는 사지로 가는 신경 섬유가 모여있기 때문에 이곳이 손상되면 뇌와 신체 사이에 신경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운동 능력이나 감각 등이 마비된다.
문제는 다른 많은 신체 조직과 달리 척수는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손상 정도가 크면 척수는 더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서 신체 일부에 마비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척수 손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외부 충격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같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 척수가 손상되는데, 일단 손상을 입은 환자는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거나 누워서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척수 손상에 대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예전에는 전기로 신경을 자극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치료나 줄기세포 배양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고 있지만, 눈에 보일만 한 성과는 아직 거두지 못한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첨단 의학으로 무장한 미국의 과학자들이 척수가 마비된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은 신경 재생을 촉진하는 신물질을 통해 척수가 마비된 쥐를 다시 걷도록 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펩타이드 기반의 나노섬유가 신경 재생을 촉진
신경 재생을 촉진하는 신물질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미 노스웨스턴대의 ‘새뮤얼 스텁(Samuel Stupp)’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다. 이들 연구진은 척수 손상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된 생쥐에게 고분자 물질을 주입하여 4주 만에 다시 걷도록 하면서 의료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스텁 교수와 연구진이 개발한 고분자 물질은 펩타이드 기반의 나노섬유로서, 체내에서 세포가 제자리에 위치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물질을 모방했다. 세포가 제자리에 위치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성분을 세포외기질이라고 하는데, 세포를 지탱해 주는 역할 외에도 신경 재생을 촉진하는 신호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이 공개한 펩타이드 기반의 나노섬유는 다양한 물성을 자랑한다. 제조하는 과정에서는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만,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젤리 같은 겔 형태로 변한다. 연구진은 이 겔 상태의 나노섬유가 신경세포에서 가지처럼 뻗은 축삭(axon)의 재생을 돕는다고 밝혔다.
축삭은 신경세포인 뉴런의 세포체에서 길게 뻗어 나온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척수와 뇌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외에도 축삭은 신경을 재생시키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흉터도 감소시켰으며, 혈관도 더 많이 생성시켜서 손상된 부위에 더 많은 영양분이 공급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축삭에 문제가 생기면 감각을 상실하거나 마비가 올 수 있고, 반대로 축삭 부위가 활성화되면 신체와 뇌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게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생각이다.
이 같은 사실을 기반으로 연구진은 우선 척수 손상으로 걸을 수 없는 생쥐 76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생쥐 50%에게는 나노섬유를 주입했고, 나머지 50%에는 식염수를 투여했다. 그 결과, 척수 손상 부위에 나노섬유가 자리를 잡은 생쥐는 4주 후 다시 걸을 수 있었지만, 식염수는 어떤 효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축삭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나노섬유의 효과가 더욱 명확해진다. 식염수를 투여한 대조군에서는 손상된 부위에서 축삭의 재성장이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반면에 나노섬유를 주입한 쥐들에게서는 축삭의 성장이 대조군보다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0배 정도 더 컸다.
나노섬유 속 분자들의 요란한 움직임이 척수 재생의 비결
그렇다면 나노섬유가 마비된 척수를 재생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이같은 궁금증에 대해 스텁 교수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힙합처럼 몸을 요란하게 흔드는 춤같은 움직임이 비결”이라고 밝혔다.
스텁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나노섬유에는 대략 10만여 개의 분자가 존재하는데, 나노섬유를 척수에 주입하면 10만여 개의 분자들이 일시에 춤을 추듯 진동하면서 신경세포와 결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신경세포 사이에 신호가 오가면서 재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노섬유가 체내에 주입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연구진은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나노섬유가 분해되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주는 영양분이 되고,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아예 체내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텁 교수는 “척수 같은 중추신경계는 한번 손상되면 현재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라고 설명하며 “따라서 전 세계 의료계는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척수가 마비됐을 때 이를 회복시키는 치료법을 찾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노섬유를 활용한 치료법은 척수마비 외에도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이나 파킨슨병, 또는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질병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의료계는 기대하고 있다.
스터프 교수는 “일단 나노섬유를 활용하여 척수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급한 상황”이라고 전하며 “바로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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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11-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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