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 증가를 예방할 수 있는 유전자 3개와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자 14개를 확인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 결과는 비만 및 다이어트, 그리고 DNA의 복잡한 교차점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어 현대인의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비만은 심혈관계 질환,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신경 퇴행성 질환 및 특정 암을 포함한 심각한 동반성 질환의 주요 위험 요인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 같은 비만 동반성 질환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40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의 88%가 비만 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세계비만연맹(WOF)이 지난 3월 발표한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250만 명 중 220만 명이 비만 인구 비율이 50%가 넘는 국가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비만 비율이 50% 이상인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사망률이 무려 10배 높았던 것. 하지만 비만 비율이 40% 미만인 국가에서는 사망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예를 들면 비만 비율이 18.3%인 베트남에서는 코로나19로 인구 10만 명당 0.04명이 사망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사망률을 보인 반면 비만 비율이 68%인 미국에서는 10만 명당 152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건강검진자 중 39%가 비만 판정을 받았다.
비만 발생의 상당 부분이 유전적 요인
지난 40년간 전 세계인의 비만 발병률이 특히 높아진 것은 과당 섭취 증가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또한, 점점 더 많이 앉아 있는 생활 방식도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똑같은 환경에서도 모든 사람이 비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비만 발생의 상당 부분이 유전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유전학자들은 전체유전체 상관분석연구(GWAS)를 통해 비만과 관련된 유전자 수백 가지를 밝혀냈다. GWAS는 통제된 환경에서 사육되는 동물 모델과는 달리 일상 환경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비만 관련 유전적 변이를 찾으므로 이러한 유전자 표적을 식별하기 위한 가장 유망한 접근법 중 하나이다.
여기서 찾아낸 유전자들은 정상 체중을 지닌 사람보다 비만인 사람에게 더 많이 퍼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유전자가 체중 증가를 직접적으로 촉진하거나 예방함으로써 인과적 역할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인구 유전체학의 힘을 빌려 비만을 치료하는 데 주요한 장벽이 되어 왔다.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에일린 오루크(Eyleen O'Rourke) 박사팀은 그 같은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을 이용해 비만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 293개를 조사했다. 어떤 유전자가 실제로 비만을 유발하거나 예방하는지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서다.
흙 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선충류인 예쁜꼬마선충은 세포의 분화과정을 밝히는 실험모델로 사용되어 유명해진 선형동물이다. 그러나 이 선충은 인간과 유전자 70% 이상을 공유하며, 사람과 마찬가지로 과도한 양의 설탕을 섭취하면 비만이 된다.
비만 예방 유전자 차단하면 더 오래 살아
연구진은 이 동물의 비만 모델을 개발한 다음 일부 개체에게는 규칙적인 식단을 제공하고 다른 개체에게는 고과당 식단을 제공했다. 그 결과 머신러닝 기술과 결합된 비만 모델은 비만을 유발하는 유전자 14개와 예쁜꼬마선충에게 차단했을 때 비만을 예방하는 유전자 3개를 찾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비만이 되는 것을 막는 유전자 3개의 작용을 차단할 경우 예쁜꼬마선충이 더 오래 살고 신경운동기능도 더 좋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바로 약물 개발자들이 비만 방지 의약품에서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유형의 이점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제네틱스(PLOS Genetics)’에 발표됐다.
물론 이 연구 결과가 효율적인 비만 치료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번에 찾아낸 유전자의 효능에 대해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고 밝혔다.
실험용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실제로 유전자 중 하나의 효과를 차단했을 때 체중 증가를 방지하고 인슐린 민감성을 개선해 혈당 수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 결과는 선택된 유전자가 인간의 비만과 관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도 그 같은 효과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여준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에일린 오루크 박사는 “비만으로 인한 의료 시스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항비만 요법이 시급하다”며 “이번 연구로 인해 효능이 좋고 부작용이 적은 항비만 약물의 개발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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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10-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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