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생명과학·의학
심재율 객원기자
2020-12-03

‘뚱뚱한 비너스’의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다? 비너스 조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나와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세계에서 초창기 예술의 대표 사례 중 하나인 수수께끼 같은 ‘뚱뚱한 비너스’상은 약 3만 년 전에 조각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1908년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가 유명하다. 이 비너스는 유럽 구석기 시대를 상징하는 조각상이다.

이 비너스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왜 그렇게 뚱뚱해야 하는지 호기심을 가졌지만, 과학적인 설명은 부족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앤슈츠 메디컬 캠퍼스(Anschutz Medical Campus)의 과학자는 최근 비너스의 이면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과학적 증거를 발견했다고 비만(Obesity) 저널에 발표했다.

구석기 시대 빙하기 생존에 유리

대부분의 미술사 책에 등장하는 비만이나 임신부들에 대한 그림은 오래전부터 다산이나 미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뚱뚱해야 할까? 이 연구의 주 저자이면서 의사인 리처드 존슨(Richard Johnson) 박사에 따르면, 이 조각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기후 변화와 식생활에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 ⓒ 위키피디아

신장병과 고혈압 전문가인 존슨 교수는 뚱뚱한 비너스 조각상은 “극심한 영양실조의 시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뚱뚱한 것은 아름다움을 표시하기보다는 유럽에 사냥꾼들이 살았던 아이스 에이지 시대의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초기 현대인들은 약 4만 8000년 전 온난화 기간 동안 유럽에 진출했다. 오리냐크인(Aurignacian)으로 알려진 구석기 시대 유럽 조상들은 뼈를 날카롭게 갈아 만든 창으로 순록, 말, 매머드를 사냥했다. 여름에는 딸기류, 생선, 견과류, 식물을 먹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기후가 안정적이지 않았다.

기온이 떨어지자 빙하가 내려오면서 재난이 닥쳤다. 가장 추운 달에는 기온이 섭씨 10도에서 15도나 떨어졌다. 어떤 무리의 사냥꾼들은 죽었고, 다른 무리는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어떤 무리는 숲으로 피난했다. 사람들은 큰 사냥감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이렇게 먹기 힘들어진 절박한 시기에 뚱뚱한 비너스 조각이 나타난 것이다. 뚱뚱한 비너스는 크기가 6에서 16cm 사이이고 돌, 상아, 뿔 또는 가끔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실을 꼬아 만들거나 부적을 단 것도 있었다.

공동저자인 아랍에미리트의 샤르자 대학(American University of Sharjah)의 존 폭스(John Fox) 인류학 교수는 조각상들의 허리-엉덩이 길이와 허리-어깨 길이의 비율을 측정했다. 그랬더니 빙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이 빙하에서 더 먼 곳에 위치한 비너스 상에 비해 더욱 뚱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빙하가 발달할 때 비만 비율이 가장 높은 반면, 기후가 따뜻해지고 빙하가 후퇴할 때 감소한다는 것도 드러났다. 연구원들은 뚱뚱한 정도는 조각상들이 어려운 생활 환경에 이상적인 체형을 제시하는 기준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빙하에 가까울수록 비너스 조각  비만

유럽의 구석기 시대에는 비만이 바람직한 상태가 되었다. 춥고 배고플 때 비만인 여성이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임신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조각상들은 임신, 출산, 수유를 통해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일종의 페티시 또는 마법의 매력인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같이 뚱뚱한 비너스 조각은 200여 개가 발견됐다.  대부분은 유럽에서 나왔지만 일부는 아시아에서 발견됐다.

의사이면서 인류학을 공부한 존슨 박사는 “뚱뚱한 비너스는 젊은 여성들, 특히 빙하와 가까운 곳에 사는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신체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을 4가지 방향에서 본 모습 ⓒ위키피디아

많은 조각상들이 손을 많이 탄 것으로 보아, 어머니에서 딸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보였음을 알 수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거나 임신 초기 단계에 접어든 여성들에게 성공적인 출산에 필요한 신체지수를 알려주기 위하여 세대를 거쳐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늘어난 지방은 임신 중 아기에게 에너지를 공급할 뿐 아니라, 체온 보호에도 도움을 준다. 결국 비만을 촉진하는 것은 불안정한 기후 조건에서 세대를 이어가는데 매우 중요한 임무가 된 것이다. 존슨 박사는 “뚱뚱한 비너스는 산모와 신생아의 다산과 생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팀이 뚱뚱한 비너스를 기후변화 및 출산과 연결하는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를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은 고고학적 자료와 인류학의 행동 모델에 측정과 의학을 적용한 학제적 연구의 결실이다.

심재율 객원기자
kosinova@hanmail.net
저작권자 2020-12-03 ⓒ ScienceTimes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발행인 : 조율래 / 편집인 : 김길태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길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