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가 옮기는 지카바이러스는 태아에게 소뇌증 등 뇌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져 여러 과학자들이 이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백신과 치료약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데 이이제이(以夷制夷)랄까, 뇌에 작용하는 지카바이러스의 기능을 이용해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세인트 루이스 워싱턴대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실험의학 저널’(The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 9월 5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바이러스가 뇌의 악성종양을 타겟으로 해 이를 사멸시키는데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면역시스템 회피하는 뇌종양 줄기세포 겨냥
뇌종양 가운데서도 신경 교아세포종(Glioblastoma)은 가장 흔하면서도 종종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암이다. 대부분의 환자가 진단받은 지 2년 이내에 사망한다. 이 교아세포종의 성장과 발달 역시 정상적이고 건강한 조직과 마찬가지로, 증식하고 다른 종양 세포들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에 의해 유도된다.
교아세포종 줄기세포는 인체의 면역체계를 피할 수 있고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에도 저항성을 보이기 때문에 죽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원래의 종양을 수술로 제거한 후 새로운 종양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 종양 줄기세포를 제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인트 루이스 워싱턴대 의대 밀란 체다(Milan Chheda) 조교수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환자를 공격적으로 치료한 뒤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치료 후 몇 달이 지나면 종양이 다시 재발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연이 과연 이렇게 재발하는 세포들에 대적할 무기를 제공하지 못 하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고 말했다.
지카바이러스, 종양 성장 늦추고 쥐 수명 연장시켜
암 줄기세포를 죽이는 한 가지 방법은 종양세포를 특정 표적으로 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카바이러스는 신경 줄기세포와 간세포(幹細胞)를 우선 표적으로 삼아 태아의 뇌 발달을 방해한다. 그러나 성인 뇌에는 태아의 두뇌 발달에 필요한 활동적인 줄기세포가 적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성인의 뇌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덜 심각하다.
세인트 루이스 워싱턴의대 마이클 다이아먼드( Michael Diamond) 교수는 “우리는 지카바이러스가 신경 전구세포를 선호하는 걸로 봐서 교아세포종 줄기세포에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밀란 체다 박사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및 클리블랜드 클리닉 러너 연구소의 제레미 리치(Jeremy Rich) 박사와 함께 이번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 지카바이러스가 다른 유형의 교아세포종 세포나 혹은 정상적인 신경세포에 비해 환자 유래 교아세포종 줄기세포를 우선적으로 감염시켜 죽인 사실을 발견했다. 공격적인 신경 교아종을 가진 쥐에 마우스 적응형 지카바이러스 종을 감염시키자 이 바이러스는 종양 성장을 늦추고 수명을 현저하게 연장시켰다.
독성 허용치 통과해 사용 가능성 높아
연구팀은 이어서 자연 발생 바이러스 균주보다 독성이 덜한 돌연변이 지카바이러스 종을 시험해 봤다. 인체의 면역반응에 더 민감한 이 ‘약화된(attenuated)’ 균주는 교아세포종 줄기세포를 특정 표적화해 죽일 수 있었다. 아울러 교아세포종 세포 억제에 별 효험이 없던 화학요법제인 테모졸로마이드와 병용했을 때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레미 리치 박사는 “이같은 조직적인 활동은 다른 질병의 원인 병원체를 이용해 치명적인 암을 공격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 전문성을 가진 세 연구그룹의 창조적 협력을 잘 나타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성인이 감염에 따른 피해가 적다는 사실은 이 치료법이 독성 허용치를 통과해 환자들에게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다이아먼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경 종양학과 교아세포종 치료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지카바이러스 변종 개발을 위한 첫 번째 단계”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상시험과, 균주의 전염력 및 더 독성이 강한 형태로 변이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일반 환자 치료에 쓰일 수 있는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7-09-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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