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맥박은 너무 빨리 뛰어도 안 되고, 너무 느리게 뛰어도 위험하다. 맥박이 너무 빨리 뛰는 현상을 ‘빈맥(頻脈)성 부정맥’이라 하고, 너무 느리게 뛰는 현상을 서맥(徐脈)성 부정맥이라 부르는데, 이 중 서맥성 부정맥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의료기가 바로 심박조율기(pacemaker)다.
심박조율기는 심장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감지하여 정상 수치보다 맥박이 느릴 경우에는 전기 자극을 심장에 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전기 자극을 받은 심장은 수축과 이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맥박도 다시 빨라지게 된다.
문제는 심박조율기의 크기가 제법 커서 심장에 직접 삽입하거나 장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는 배터리를 포함한 심박조율기 본체를 피부 밑에 삽입한 후 여기서 전기선을 심장까지 연결시켜 맥박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기적으로 배터리 및 조율기를 교체하기 위한 시술을 해야만 하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의 과학자들이 심장에 직접 삽입할 수 있을 만큼 작으면서도 배터리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심박조율기를 선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무선 전력 통해 심박조율기에 전기 제공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최근 개최된 ‘국제 마이크로웨이브 심포지엄(IMS)’에서 신개념의 심박조율기가 발표되었다고 보도하면서, 미 라이스대와 텍사스심장연구소(IHS)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심박조율기는 무선전력전송을 기술을 통해 전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심박조율기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각각 4cm 정도인 금속 재질의 납작한 의료기기다. 주로 수술을 통해 어깨 피부의 밑 부분에 삽입하여 사용하는데, 이때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코팅된 가느다란 전극을 혈관내로 넣어서 심장 근육에 위치시킨다.
이 심박조율기가 작동하는 데는 반드시 배터리가 필요하다. 배터리는 환자 심장의 상태나 작동 빈도수에 따라 수명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5~6년 정도면 시술을 통해 교체를 해 주어야 하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주기가 더 빨라지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공동연구진은 이 같은 심박조율기의 교체 방식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심박조율기는 배터리와 본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심장 가까이에 설치하지 못하다 보니 어깨 피부 등에 삽입하면서 정기적인 시술이 필요해졌고, 예기치 않은 부작용까지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연구진은 무선 전력전송기술을 활용하여 심박조율기에 전기를 제공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전력을 무선으로 공급할 수 있는 휴대용 배터리와 전송장치를 만들어, 맥박이 떨어지게 되면 8~10Ghz 주파수에 맞춰 전력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에 대해 연구진의 한 관계자는 “초소형 심박조율기 정도면 전력이 강하지 않아도 필요한 에너지를 무선으로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며 “물론 배터리를 항상 휴대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대신 주기적으로 수술을 해서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훨씬 더 편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분야 전문가들도 배터리를 함께 삽입할 필요가 없는 심박조율기의 등장에 흥분하고 있다. 본체만 삽입하게 된다면 현재의 심박조율기 크기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만들 수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심장 가까이에 부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 운동을 이용한 압전 효과
라이스대와 텍사스심장연구소의 공동 연구진이 무선으로 전력을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면 미 애리조나대와 일리노이대의 공동 연구진은 ‘압전 효과’를 활용한 심박조율기를 개발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압전 효과(piezoelectric effect)란 물체에 힘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가스라이터를 꼽을 수 있다. 라이터를 켜기 위해 엄지로 스프링버튼을 누르면, 라이터 내부에 들어있는 망치 모양의 부품이 탑재되어 있는 압전소자를 때리게 된다.
이때 압전소자에서 발생한 높은 전압의 전기가 라이터 내에 형성되어 있는 전기회로 내의 작은 간극에 스파크(spark)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 스파크가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가스를 점화시켜 불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 연구진이 심박조율기에 압전 효과를 적용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복잡한 장치나 발전기가 없어도 약간의 운동에너지만 확보 할 수 있으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연구진이 주목한 운동에너지는 바로 심장의 수축 운동이었다. 조사 결과 심장이 수축할 때의 운동에너지만 있으면 압전 소자를 움직여 심박조율기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했고, 이후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연구진은 우선 압전 소자를 기반으로 한 심박 조율기가 안정적으로 심장에 부착될 수 있는지를 검토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딱딱한 형태가 아닌 나노리본이라 불리는 필름 형태의 압전 소자를 별도로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소의 심장에 적용해 본 결과 나노리본 압전 소자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심박조율기에 지속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애리조나대의 관계자는 “기존의 압전 소자들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에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런 막 형태의 소자는 심장의 자연스런 수축과 이완에 맞게 움직일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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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6-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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