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은 우리 나라에서 구국영령(救國英靈)을 기리는 추모의 날이다. 유럽에서는 73년 전인 1944년 6월 6일, ’사상 최대의 작전’으로 불리는 노르망디 침공작전이 수행됐다. 이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2차대전의 판세를 뒤집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침공작전에는 당시 부상병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중한 항생물질인 페니실린 주사액 수백만 개가 지원돼 장병들의 사기를 크게 북돋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작전이 수행되기 3년 전부터 대서양 반대편에 있는 미국 위스컨신(UW)-매디슨 대학과 다른 기관 연구원들은 페니실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 최초의 천연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은 이미 16년 전에 발견되었지만 곰팡이에서 항생제를 추출해 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들 연구원은 새로운 변종을 발견하고, 생산성 높은 돌연변이를 분리해 내는 한편 곰팡이 배양방법을 개선함으로써 치명적인 감염을 치료하기에 충분한 양의 페니실린을 연합군에 공급할 수 있었다.

“플레밍의 곰팡이 외 다른 종도 항생제 생산 가능“
당시 50명 이상의 UW-매디슨 과학자들이 정부가 만든 생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때 개발된 페니실린 곰팡이 자손들이 오늘날에도 전세계에서 페니실린 제조에 사용되고 있다.
이 연구는 1941년 영국 과학자인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노먼 히틀리(Norman Heatley)가 미국으로 건너와 페니실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정부와 대학의 연구 그룹에 참여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플로리팀은 페니실린이 동물과 인간의 세균 감염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양의 페니실린을 추출하는 데도 무척 힘이 들었다. 이때 플로리는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 있는 미국 농무성 북부지역연구소(NRRL)의 박테리아 전문가 켄 레이퍼( Ken Raper)를 파트너로 맞아들였다.
나중에 UW-매디슨 교수진에 합류한 레이퍼는 경험이 풍부한 곰팡이 생물학자였다. 레이퍼는 NRRL의 그의 연구실에서 미생물로부터 귀중한 천연화합물을 추출하기 위한 발효기술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 기술은 페니실린 생산을 증가시키는데 적합했다. 레이퍼는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와 아메바(the social amoebae dictyostelids)를 수집했던 경험에 비추어 자연에서 더 나은 페니실린 곰팡이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했던 원래의 곰팡이만이 항생제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X선 쬐고, 자외선에 노출시켜 더 나은 변종 찾아
더욱 생산적인 변종을 찾기 위한 전국적인 조사 결과 피오리아의 한 식품점에서 가장 나은 종이 발견됐다. 멜론의 일종인 칸타루프에서 자라고 있던 곰팡이로서 NRRL-1951로 명명했다. 액체 배양물의 표면에서만 자라는 플레밍의 곰팡이와는 달리 NRRL-1951는 배양물 전체에서 혼합되었을 때 잘 자랐다. 이렇게 배양물 속에서 잘 성장함으로써 곰팡이와 페니실린의 농도가 크게 높아졌다.
레이퍼는 전국의 공동연구자들에게 NRRL-1951를 보냈다. 뉴욕의 콜드 스프링 하버(Cold Spring Harbor) 연구소 연구원들은 X선을 균주에 조사해 돌연변이를 만든 후 이를 미네소타대학에 보냈다. 미네소타대 과학자들은 이 가운데서 유망한 후보를 발굴해 다시 위스컨신-매디슨으로 전달했다.
UW-매디슨의 미생물학자인 엘리자베스 맥코이(Elizabeth McCoy )는 그 중 가장 나은 새로운 돌연변이체인 X-1612를 식별해 냈다. 이어 생화학자인 윌리엄 피터슨(William Peterson)과 마빈 존슨(Marvin Johnson)이 이를 배양하고 테스트했다. 피터슨과 존슨은 더 많은 페니실린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생산에 참여한 수십 명의 과학자들이 곰팡이의 성장 조건을 잘 관리하도록 감독했다.
연구진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더 큰 발효 용기를 시험했다. 피오리아에서 우유와 옥수수 기반의 배양액을 개발하면서 배양액의 살균과 폭기 및 혼합법을 개선했다.
당시 개발된 곰팡이 종 지금도 항생제 생산에 활용돼
한편, UW-매디슨의 식물학자인 존 스타우퍼(John Stauffer)와 마이런 배커스(Myron Backus)는 맥코이의 변이 종을 받아 이를 자외선에 노출시켜 더 많은 곰팡이 변이 종을 만들었다. 마침내 연구진은 전쟁 프로그램을 위해 가장 생산적인 페니실린 균주인 Q-176을 분리해 내는 성과를 거뒀다.
페니실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로버트 버리스(Robert Burris) UW-매디슨 전 생화학과 교수는 대학 소장 구술사에서 “그 같은 돌파구를 발견한 후 한달 만에 생산량이 두 배로 증가했다”며, “수중 발효로 값싼 배지에서 배양이 가능했고, 추출과정도 완성돼 싼 가격에 청정한 물질을 얻게 됨으로써 여러 질병과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레이퍼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Q-176의 후손들은 지금도 약물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레이퍼는 구술사에서 그의 작업에 대해 “영국 과학자들이 여기에 왔을 때 페니실린 1mm 당 네 단위(units)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우리가 7월에 일을 시작하고 그해 크리스마스 때까지 40단위를 얻었으나 이 곰팡이는 원래 칸타루프 멜론에서 100단위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별 작업을 통해 100단위까지 생산량을 높였고, X선 돌연변이체를 이용해 500단위까지 그리고 여기 위스컨신에서 자외선 조사 돌연변이체로 90단위까지 생산하게 되었다”며, “이는 대단히 흥분되는 성과였다”고 덧붙였다.

전시 페니실린 대량생산은 미생물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
새로운 항생제를 찾기 위해 레이퍼 박사의 딕티오스텔리움목 컬렉션을 활용했던 UW-매디슨 세균학교수인 마친 필루토비츠(Marcin Filutowicz) 교수는 전시 중의 페니실린에 대한 연구 이야기는 전후 그의 고향인 폴란드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페니실린 생산은 산업미생물학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였다”며, “과학자들이 사회에 이익이 되고 상업적 가치도 지닌 화합물의 대사 산물을 향상시키는 유익한 유기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활용하는 패러다임의 첫 번째 사례”라고 말했다.
필로토비츠 교수는 “항생제는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UW-매디슨에서 생산된 페니실린 곰팡이종은 특허가 없었고, 전쟁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도록 사기업에 무료로 주어졌다. 개선된 기술도 널리 공유됐다. 전쟁이 끝날 무렵 페니실린 단회 투여량의 일부인 10만 단위의 비용이 20달러(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500달러)에서 3센트로 떨어졌다. 생산량도 민간인들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았다.
UW-매디슨대학의 각 과와 다른 연구기관 및 국가간 과학적 협력이 출범시킨 항생제 시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떤 연구팀은 곤충과 해양환경에서 새로운 화합물을 찾아내고 다른 팀은 감염성 미생물을 퇴치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 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과 지속적인 노력에 따라 새로운 약물들이 개발돼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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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6-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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