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가 제시하는 여러 암 치료법들이 환자의 생존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모른다면 환자나 가족들은 과연 그런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치료 비용도 그렇거니와 치료 기간에 환자가 감수하는 고통, 그리고 무엇보다 치료 후의 생존율이 결정을 가름하는 관건이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Berkeley Lab) 연구원들은 별 도움이 안되는 암 치료를 줄일 수 있는 암 발생 초기단계의 새로운 생체표지자(biomarker)를 발견해 8월 31일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이들 연구진은 다양한 암에서 지속적으로 과잉 발현되는 14개의 유전체 통합 조절 유전자를 식별해 낸 다음, 유전자 과발현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유방암과 폐암 등 여러 주요 암에 이를 적용했을 때 점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치료 후의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정된 점수가 특정한 암 치료법에 대해 환자가 잘 반응하는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암 과잉 치료 개선해야
이번 연구의 주 연구자인 게리 카펜(Gary Karpen) 버클리 랩 시니어 과학자(생물시스템 및 엔지니어링 부문) 겸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분자 및 세포생물학 교수는 “암 치료의 역사는 과잉반응으로 꽉 차 있다”며, “과잉 치료 실수를 범하는 것은 의료 윤리 측면에서도 좋지 않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되면 차라리 치료를 안 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문 제1저자인 웨이궈 장(Weiguo Zhang) 버클리 랩 프로젝트 연구원은, 문제는 암 초기단계에서 환자가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요법에 잘 반응할지 결정할 수 있는 믿을 만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장박사는 “폐암과 같은 암의 초기단계에서도 보조적인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가 통상적으로 행해지는데 여기서 과잉 치료가 주요한 문제”라며, “폐암 초기에 있는 어떤 유형의 환자들에게는 보조적인 화학요법을 통한 5년 생존율이 평균 10% 정도밖에 안돼 이 치료에 따른 부차적인 손상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연구는 의사나 환자가 전형적인 암 치료과정이나 특별한 치료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논문 공저자인 안슈 제인(Anshu Jain) 켄터키 애쉬랜드 벨레폰테 암센터 종양학자이자 예일의대 임상강사는 “이번 연구는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며, “바이오마커 점수는 현재 한정된 임상적 수치만 제공하는 임상 및 병리학적 종양의 특성과는 별도로 예견 가능하고 암의 예후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준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찾아서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위해 카펜 교수팀과 다른 연구그룹의 선행연구에 기초해 세포분열 때 방추사가 붙는 염색체의 핵심부위인 중심립과 동원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유전자에 주목했다.
카펜 교수는 연구 결과 “이들 유전자의 과발현이 모든 암의 전형적 특징인 염색체 불안정성을 야기하는 주요인”이라고 밝혔다. 이 ‘염색체 불안정성’은 오랫 동안 암의 특성 중 하나로 인식돼 왔으나 그 원인은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인체 암에서 염색체 중심립들이 염색체 불안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10여 종류의 인체 종양 표본 수천 개를 가지고 있는 국립 생체기술정보센터(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와 브로드 연구원(the Broad Institute ) 등으로부터 공공 데이터 세트를 확보해 분석했다. 염색체 중심립과 동원체 기능을 조절하는 유전자 31개를 추려내 분석한 결과 이중 14개가 암 조직에서 지속적으로 과발현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광범위한 기록들은 DNA 돌연변이와 염색체 재정렬에 대한 정보, 특정 단백질의 유무와 수치, 환자가 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의 종양 성장 단계와 수행한 치료, 진단과 치료 후 수년 동안의 추적조사 결과 등을 담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염색체 중심립 및 동원체 유전자 발현 점수(CES)’를 환자가 특정 암 치료를 받았을 때와 받지 않았을 때의 상태와 연결지을 수 있었다.
유전체 불안정성과 암 치료
카펜 교수는 “CES와 환자의 5년 후 생존율과의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또 하나는 약간 의외이기는 하지만 더욱 효과적인 화학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이루어지면 중심립 유전자가 높게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염색체 불안정성의 정도가 높으면 암세포가 화학치료나 방사선 치료에 취약하게 된다는 가정을 했다.
장박사는 “달리 말하면 유전체 불안정성에는 한계가 있다”며, “암세포는 유전체 불안정성이 낮은 단계에서부터 중간 상위 단계까지는 번성하지만 매우 높은 단계에서는 암 치료에 의한 추가적인 DNA 손상으로 더 취약해 지는데, 이것이 바로 핵심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매우 높은 단계의 유전체 불안정성과 암 환자가 보조치료 없이 생존율이 더 향상되는 것과는 어떤 연계관계를 발견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유전체 불안정성의 한계점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제인 교수는 “앞으로 환자 집단을 대상으로 임상적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CES에 대한 연구가 계속될 것”이라며, “CES의 임상적 중요성이 확보되면 암 치료의사들은 큰 신뢰를 가지고 환자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6-09-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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