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네번째 지카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오면서 이 바이러스 병에 대한 경계가 계속되고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감염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상당수가 감기 정도로 가볍게 지나가므로 건강한 일반인에게는 증상 자체가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임신부가 감염되면 태아의 뇌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소뇌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가임 여성과 각국의 보건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의해 전파되지만, 성관계나 수혈로 감염된 사례가 있어 감염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카바이러스는 인간의 면역분자를 가로채 소뇌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샌디에고 캘리포니아의대 연구팀은 처음으로 지카 감염이 뇌세포 발달을 손상시키며, 이 기전을 저해함으로써 뇌세포 손상을 줄이고 감염에 따른 피해를 경감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단서 하나를 찾았다고 ‘셀 스템 셀’(Cell Stem Cell) 6일자에 발표했다.

“지카바이러스, 인체 면역시스템을 역이용”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임신 첫 3개월 동안의 삼차원 뇌 모델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지카바이러스가 이 기간 동안에 TLR3 분자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TLR3는 인체세포가 통상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바이러스 분자패턴 인식 수용체다. 연구팀은 이어 TLR3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줄기세포가 뇌세포로 분화되도록 이끄는 유전자 발현이 중지되고 세포 자살을 유도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개념 아래 TLR3의 기능을 방해하자 뇌세포 손상도 줄어들었다.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타리크 라나(Tariq Rana) 소아과 교수는 “모든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지카바이러스는 이 방어체계가 거꾸로 인간에게 맞서도록 교묘하게 돌려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카바이러스가 TLR3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줄기세포가 뇌의 여러 부분으로 분화, 발달하도록 지시하는 유전자를 차단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이를 막을 수 있는 TLR3 저해제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줄기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로 실험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일부 모방한 조직으로 실험동물 대신 각종 생의학 실험에 쓰인다. 라나 교수팀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는 실제 인간의 뇌 발달 초기 3개월 동안에 줄기세포가 여러 뇌조직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가노이드 세포에서의 유전자 발현 패턴과 인간 뇌 유전 정보를 비교한 결과 연구팀의 오가노이드는 임신 후 8~9주간의 태아 뇌조직과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오가노이드 삼차원 뇌 모델에 원형 지카바이러스를 주입하자 오가노이드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감염 5일 후 비교한 결과 건강한 오가노이드는 평균 22.6%가 성장한데 비해 지카에 감염된 오가노이드는 뇌 크기가 평균 16% 감소됐다.
연구팀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오가노이드에서 TLR3 유전자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TLR3는 세포의 안쪽이나 바깥 쪽에 붙어있는 단백질로 바이러스의 RNA 이중가닥을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의 RNA가 TLR3와 결합하면 면역반응이 일어나는데, TLR3는 이때 다른 여러 유전자들이 감염에 대항해 싸우도록 활성화되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뇌세포 발달에서는 TLR3의 활성화가 41개 유전자에 영향을 미쳐 오히려 뇌세포 분화가 줄어들고 세포 자살은 늘어나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TLR3, 지카 감염 및 뇌손상과 연관돼
라나 교수팀은 TLR3의 활성화가 지카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오가노이드의 위축을 초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감염된 오가노이드에 TLR3 저해제를 처치했다. 그러자 지카 감염에 따른 뇌세포 건강문제와 오가노이드의 크기 위축이 크게 완화됨으로써 TLR3가 감염 및 뇌 손상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TLR3 저해제로 치료한 오가노이드는 완전하지는 않았다. 감염되지 않은 오가노이드에 비해 세포의 죽음과 붕괴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났다.
라나 교수는 “우리는 이 삼차원 모델을 지카 바이러스가 소뇌증을 일으키는 기전을 확인하는 연구에 활용했으나 이 시스템이 측정 가능하고 재생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연구자들은 다른 감염병의 양상과 치료법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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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5-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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