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게놈 시대를 맞아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유전자의 비밀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포스트 게놈(post genome)이란 인간유전자지도를 완성한 지난 2003년의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그 유전자지도를 토대로 약 3만여 개의 유전자 기능을 규명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이 같은 유전자의 기능 규명은 특히 희귀 유전자질환의 치료 신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주목을 끈다.
호주 멜버른에 있는 월터-엘리자홀협회의 연구진은 최근 디조지 증후군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디조지 증후군이란 흉선에 이상이 있거나 흉선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선천성 질병으로서, 4천명의 아기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안네 보스 박사와 팀 토마스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정상적인 심장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알려진 유전자인 ‘Tbx1’을 변형하는 스위치가 MOZ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디조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선천성 이상 심각도의 정도를 설명해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MOZ 활성 수치를 디조지 증후군이 있는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심각한 결함을 일으키는지 결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손발의 형성 이상과 발달 지연 등을 초래하며, 웃거나 울면 기도가 막혀 죽게 되는 희귀 유전자질환인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의 새로운 유전자도 발견됐다. 이 질환은 다양한 유전자의 작용을 조절하는 ‘코헤신’이라는 단백질 복합체의 기능 부전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도쿄대를 포함한 국제공동연구팀은 ‘HDAC8’이란 효소가 없을 경우 코헤신이 유전자의 작용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결과는 HDAC8 효소의 작용을 보충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뇌 크기와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 발견
심각한 외상 경험으로 생길 수 있는 인지, 감정, 행동, 심리학적 기능의 심각한 변화로 정의되는 정신의학 질환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연관된 유전자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지난 5월 유럽 연구진은 특정 돌연변이를 가진 PRKCA-A 유전자가 정서적 기억의 공고화를 촉진시켜 PTSD의 발병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어서 지난달에는 미국 연구진이 스트레스로부터 뇌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RORA’ 유전자가 PTSD와 연관된 새로운 유전자라는 사실을 규명했다. RORA는 산화 스트레스, 저산소증과 염증의 손상으로부터 뇌세포를 보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이 유전자의 변이가 PTSD 발달에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이 연구결과는 RORA 위험 변이를 가진 사람이 외상 경험 후 PTSD로 발달할 가능성이 더 높음을 시사하고, 뇌가 외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람마다 뇌의 크기가 다르고 지능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유전자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전 세계의 뇌 이미징 연구실험실과 협력관계를 통해 뇌 스캔 및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해 메타 분석을 통한 ‘신경이미징 유전학 강화 프로젝트(Enhancing Neuro Imaging Genetics through Meta-Analysis)’를 진행하는 국제공동연구팀은 전 세계 대상자들의 뇌 스캔을 통해 뇌에 유해하거나 뇌를 보호하는 유전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적 능력의 개별적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DNA는 보통 아데닌(A)과 시토신(C), 티민(T), 구아닌(G)의 네 가지 염기로 이뤄져 있는데, ‘HMGA2’ 유전자가 티민 대신에 시토신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좀 더 큰 뇌를 가지고 있으며 IQ 테스트에서도 좀 더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즉, HMGA2라고 불리는 유전자의 변이가 뇌의 크기뿐 아니라 지능에도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다.
분리된 DNA와 천연 DNA의 차이점은?
이처럼 새로운 유전자의 비밀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는 인간 유전자의 특허권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져 화제가 되고 있다.
유전자 진단키트를 생산하는 미리어드 제네틱스 사는 여성의 유방암이나 난소암 발병 위험을 알 수 있는 2개의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미국 대법원이 인간 유전자는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미리어드 제네틱스 사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은 자연의 법칙에 속하는 인간 유전자는 특허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 그러나 미리어드 제네틱스 사는 천연 DNA의 경우 자연의 법칙으로 규정할 수 있지만, 분리된 DNA는 천연 DNA에 부가가치가 더해진 것이므로 분리·정제된 DNA에 대해서는 특허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의 기업과 과학자들은 수천 개의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인정받아 왔기에 대법원의 그 같은 판결은 의외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전자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 다른 연구자들의 유전자 테스트를 가로막고,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를 억압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
이에 대해 미리어드 제네틱스 측은 특허를 보호하는 장치가 없을 경우 벤처 캐피탈이 소규모 바이오기업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될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이 법정 다툼은 지난달 중순 미국 연방특별행정 고등법원이 인간 유전자 특허를 인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리어드 제네틱스 사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인간유전자의 특허권에 반대 입장을 나타내는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 등은 인간 유전자를 한 기업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판결에 대해 다시 항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럼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기업의 특허권까지 보호하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미국도 유럽의 경우처럼 유전자에 대한 특허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되, ‘실험적 사용에 대한 예외’를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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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2-09-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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