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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예슬 리포터
2024-03-19

3D 프린터로 뇌에 문신처럼 전자회로 입혔다 생각만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칩인류’ 시대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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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신경 신호를 통해 생각만으로 기계를 작동할 수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은 1900년대 말에는 인간의 상상력 속 기술이었고, 최근에 들어서는 곧 현실이 될 기술로 여겨진다. ⓒEasy-Peasy.AI

뇌와 컴퓨터를 연결한 ‘전뇌’는 공상과학(SF) 영화의 단골 주제다. 다른 기술들이 그렇듯 영화나 소설에나 등장하던 인간의 상상은 자주 현실이 된다. 뇌에 ‘칩’을 심어 뇌의 신호를 읽고 이를 외부 기기와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역사상 최초로 칩을 인간 뇌에 이식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인간 뇌 최초 칩 이식에 성공하다)

BCI는 뇌파를 통해 외부 기계나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 도입되면 자유롭고 정확한 의사 표현을 도울 수 있어 개발이 활발하다. 현재 우리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간접적’으로 살핀다. 반면, BCI는 뇌의 ‘내부자’인 칩을 이용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훨씬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 영화 <매트릭스>가 1999년에 개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을 상상하는 인간의 창의력에 대한 놀라움을 갖게 된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뇌와 기계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가시권에 들어선 건 최근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BCI 기술은 뇌 질환 말기 환자들의 치료 및 진단을 위한 최후의 수단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 뇌에 소자를 이식하는 수술이 간단하지도 않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다고 해도 감염이나 면역 거부 반응 등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처럼 뇌에 칩을 심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가 될 시기가 아직까지는 멀었다는 의미다.

 

‘칩인류’ 시대 초읽기, 뇌에 전자회로 그린다

최근 ‘칩인류’ 시대를 앞당길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 연구단은 뇌 조직처럼 부드러운 인공 신경 전극을 쥐의 뇌에 이식하고, 3D 프린터로 전자회로를 두개골 표면에 인쇄해 뇌파(신경 신호)를 장기간 송수신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2월 2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 뇌의 신호를 감지하기 위한 기존 기술은 딱딱한 전극을 뇌에 삽입해야 하고, 이들이 상호작용하기 위해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감염 위험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Flickr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감지하는 삽입형 신경 전극과 감지된 신호를 외부 기기로 송수신하는 전자회로는 BCI의 핵심이다. 기존 기술은 딱딱한 금속과 반도체 소재로 이뤄진 전극과 전자회로를 사용해 이식 시 이질감이 크고, 부드러운 뇌 조직에 염증과 감염을 유발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뇌에 발생한 손상이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방해해 장기간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연구진은 고형의 금속 대신 뇌 조직과 유사한 액체금속을 이용해 인공 신경 전극을 제작했다. 제작된 전극은 지름이 머리카락의 10분의 1 수준으로 얇고, 젤리처럼 말랑해 뇌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재의 생체 적합성 역시 검증했다.

▲ 젤리처럼 부드러운 신경 전극과 두개골 표면을 따라 얇게 형성되는 전자회로 모식도(왼쪽). 오른쪽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두개골 곡면을 따라 문신처럼 얇게 형성되기 때문에 이식 후 외형적 변화가 없다. ⓒIBS

이어 연구진은 3D 프린터로 두개골 곡면에 전자회로를 얇게 인쇄한 뒤 뇌에 이식했다. 문신처럼 얇아 회로를 그려낸 후 두피를 봉합해도 머리에 튀어나오는 부분 없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기존 인터페이스의 이물감과 불편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3D 프린팅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식한 각 전극의 배열과 위치에 맞는 전자회로를 쉽게 디자인하고 형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연구진은 제작한 소자를 쥐의 뇌에 이식하고, 쥐의 두개골 모양에 맞는 맞춤형 전자회로를 그려냈다. 이후 8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진 동물실험에서 체내 신경 신호를 안정적으로 검출했다. 딱딱한 고체 형태인 기존 인터페이스로는 신경 신호를 1개월 이상 측정하기 어려웠다. BCI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대폭 늘린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진이 BCI에 무선 송수신 기능을 구현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두꺼운 케이블로 연결했던 것과 달리 유선 회로가 필요 없어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신경 전극을 이식할 수 있어 다양한 뇌 영역에서의 신호를 동시에 측정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서두에서 BCI 기술의 칩이 뇌의 ‘내부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 개의 신경 전극을 이식하는 경우 내부자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즉, 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뉴럴링크는 ‘텔레파시’라는 작은 칩을 이간 뇌에 이식했다. ⓒFlickr

연구를 이끈 박장웅 교수는 “뇌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33주 이상 신경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며 "이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뇌전증 등 다양한 뇌질환 환자에게 광범위하게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연구진이 개발한 기술이 실제로 응용되기까지는 생체 내에서 사용 가능한 배터리를 접목하고, 장기적인 안정성을 검증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만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던 기술의 사용자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긴 시간에 걸쳐 많은 연구가 축적되면 인류가 상상해 온 ‘칩인류’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4-03-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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