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에는 링링, 타파, 미탁 등 3개의 태풍이 지나치면서 많은 피해를 남겼다. 올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은 7개인데, 이렇게 많은 태풍은 60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엔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휩쓸어 큰 인명 피해를 냈다.
인구 40만 명의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는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안으로 초토화됐으며,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는 규모 7.1의 지진이 강타했다. 지난해 100년 만에 최악의 홍수로 피해를 입었던 인도 케랄라주는 올여름에도 큰 홍수로 물난리를 겪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기후 변화로 인해 앞으로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자연재해를 보다 잘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이 주목을 끌고 있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같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7년 9월에 발생한 5등급 허리케인 이르마는 미국 동부 해안을 지나치며 9개 주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당시 미국 국토안보부 같은 주요 기관들은 허리케인으로 인한 대량 정전을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
머신러닝을 이용해 허리케인 및 기타 악천후로 인한 정전을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스티븐 퀄링 교수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허리케인이 발생했을 때 정전으로 인한 전력 손실을 10%의 오차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비결은 각 기관에서 수집하는 다양한 데이터에 있다. 이 시스템은 전력회사들의 전력 현황, 기상청의 예측 풍속, 나무가 쓰러질 위험이 높은 지역, 정전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의 수분 및 토양 유형 등의 모든 정보를 이용한다.
정전 예측해 복구 시간 단축 가능
폭풍이 몰아치기 전 대비 사항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폭풍이 지나간 후 복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복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관련 연구진은 허리케인뿐만 아니라 뇌우 및 눈보라가 몰아칠 때의 모델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 브라질에서는 약 7만 40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해 특히 아마존 열대우림에 큰 피해를 입혔다. 지난해 발생한 산불이 총 4만이었으니,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산불이 발생한 셈이다.
이 같은 열대우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콤푸타 이미징 비즈니스 솔루션’이란 기업은 브라질에 화재 감지 장치를 설치했다. 광학카메라, 열카메라, 분광계 등으로 구성된 이 장치는 AI 기술을 결합해 더욱 정확하게 화재 발생을 예측할 수 있다. AI가 먼지 구름, 곤충 무리, 연기 기둥 등의 화재 초기 징후를 탐지하기 때문이다.
인텔에서는 AI 기술을 이용한 삼림 벌채 분석 프로그램으로 아마존 같은 지구의 열대우림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측정하고 있다. 위성사진을 이용해 공장의 위치, 발전소 유형, 삼림 벌채 정도 등을 파악하는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 도시화 및 동물 이동 패턴 등의 데이터도 활용해 지구 표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 기후변화를 예측‧분석하게 될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5월 미국 워싱턴에서는 몇 개월간에 걸쳐 슬로우 슬립이 진행됐다. 슬로우 슬립(slow slip)이란 지각판 경계면에서 한쪽 판이 다른 쪽 판의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지듯 파고드는 현상을 말한다. 수천 번의 작은 진동이 발생했으며 밴쿠버 섬의 남쪽 끝이 태평양 쪽으로 1㎝ 정도 떠밀려 갔을 정도였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강력한 도구
그런데 미국의 지구물리학자 폴 존슨 연구팀은 최근에 이 같은 슬로우 슬립 현상에 대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시험 중이다. 러닝머신을 활용하는 이 알고리즘을 잘만 활용하면 대규모 지진 발생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진 예측은 과학자들에게도 아직 금기 사항이다.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음에도 지진을 예측하지 못한 혐의로 지난 2012년 유죄 판결을 받은 6명의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이들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현대 과학으로도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을 살린 배경이다.
하지만 지진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한 폴 존슨은 지진 또한 물리적인 과정이므로 죽어가는 별의 붕괴나 바람의 이동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폴 존슨 연구팀이 개발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음향 방출의 특징만으로 지진 발생 시간을 예측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슬로우 슬립 현상과 대규모 지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구글에서는 딥러닝을 이용해 지진 발생 후 여진 발생 위치 예측 모델을 개발 중이다. 이 모델의 예측 정확도는 아직 6%에 불과하지만, AI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 예측 성공률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전문가들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기술로 AI를 꼽고 있다. 특히 머신러닝과 딥러닝은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고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9-10-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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