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보다 빠른 계산기의 등장’
1946년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무게 30t(톤)의 거대한 기계를 공개하는 날이었다. 정체불명의 기계에 전원을 넣자 진공관이 깜박거리며 순식간에 9만 7,378의 5,000승을 계산했다.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에니악(ENIAC)’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에니악의 탄생 순간만큼 주목받는 연구가 있다. 자연이 생명체에 부여한 DNA라는 정보처리장치를 이용하는 ‘DNA 컴퓨터’의 본격적 시작을 알린 연구가 최근 나왔다.
DNA로 연산하는 범용 컴퓨터
1994년 1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는 기념비적 논문이 실렸다. 레너드 애들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의 연구다. 애들먼 교수는 ‘해밀토니안 경로’ 문제를 풀었다. 주어진 그래프의 모든 정점을 한 번씩만 방문하는 경로가 존재하는지를 묻는 문제다. 이 연구에서 애들먼 교수는 7개의 정점을 가진 해밀토니안 경로를 찾아냈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이 문제의 해답을 찾은 것에 왜 ‘기념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이 문제를 풀어낸 도구가 바로 DNA였기 때문이다. 애들먼 교수는 7개의 정점을 DNA로 설정하고, 시험관 안에서 DNA 분자들을 반응시켜 경로를 찾았다. DNA를 연산에 활용한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이후 과학자들은 DNA를 활용해 범용 컴퓨터를 설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 등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다. 일반 컴퓨터가 숫자 0과 1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면, DNA 컴퓨터는 네 가지 염기를 연산기호로 활용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DNA 연산 기술들은 ‘컴퓨터’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데이터 저장, 삭제, 검색, 연산 등 컴퓨터의 기능 중 일부 작업만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DNA 컴퓨터 회로와 기판
애들먼 교수의 첫 논문이 나온 지 딱 30년이 흐른 지금, 지난 8월 2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는 일반 컴퓨터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DNA 컴퓨터 개발 성과가 게재됐다. 최초의 DNA 컴퓨터가 등장했다는 의미에서 일각에서는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의 등장에 비유하는 평가도 나왔다.
연구진은 ‘덴드리콜로이드(Dendricolloid)’라 이름 붙인 나노 구조체를 만들고, 사이사이 DNA를 심는 방식으로 DNA 저장 및 연산 체계를 만들었다. 덴드리콜로이드를 활용해 DNA가 망가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동시에 데이터 복사, 삭제 등의 작업이 이뤄지도록 구현했다.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정보를 삭제하고 다시 쓰듯, DNA의 특정 부분을 지우고 같은 표면에 다시 쓰는 것도 가능하다. 일반 컴퓨터로 치자면 DNA가 회로, 덴드리콜로이드가 회로의 기판 역할을 한다. 아주 초기 형태의 DNA 저장 및 컴퓨팅 구현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를 이끈 알버트 큉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는 “지우개 크기의 DNA 저장 장치에 노트북 1000대에 저장된 데이터를 모두 담을 수 있다”며 “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DNA 컴퓨터로 간단한 스도쿠와 체스 문제를 푸는 데도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강산이 3번도 변할 긴 시간 동안 과학자들이 DNA 컴퓨터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DNA 컴퓨터의 놀라운 저장 능력 덕분이다. DNA 1g에는 약 2억 GB(기가바이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 수㎏의 DNA면 인류가 가진 모든 디지털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또한, 몇만 년 전 고대인의 DNA를 추출 및 분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존성도 좋다.
빠른 계산도 장점이다. 2진수가 아닌 4진수를 활용하는 동시에 순차 계산을 수행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병렬적 계산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부피에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정보 저장을 위한 공간 차지도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큉 교수는 “데이터 저장과 처리 작업이 별도 부분에서 수행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모든 장치 구성 요소가 호환되기 때문에 정보 저장을 위한 공간 차지가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라고 덧붙였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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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10-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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