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는 26기의 원자력발전소(원전)가 있다. 원전의 목적은 단연 전력 생산에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쓰임도 있다. 바로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원자로에서는 중성미자와 고에너지 광자가 방출된다. 이 두 물질은 물리학자들의 숙원 과제인 ‘암흑물질’ 발견의 단서가 된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에서는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여러 입자물리학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암흑물질 후보인 넷째 중성미자 찾는 네오스(NEOS) 실험
암흑물질은 우주의 26.8%를 추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질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5배나 많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우주의 유령, ‘암흑물질’을 찾아서) 지금까지 암흑물질 연구는 윔프(WIMP)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윔프 발견을 향한 오랜 연구에서 실험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이에 다른 후보들이 다시 각광받는다. 그중 하나가 ‘비활성 중성미자’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가운데 가장 가벼운 입자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중성미자는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의 세 종류다. 그런데 이 세 입자 외에 ‘비활성 중성미자’라 이름 붙은 네 번째 중성미자가 있다는 가설이 제시됐다. 비활성 중성미자는 약한 상호작용조차 하지 않고, 기존 중성미자보다 무거운 질량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빛 원전 5호기에서는 이 넷째 중성미자를 찾는 ‘단거리 중성미자 진동 실험(NEOS, 네오스)’이 진행되고 있다. 원자로 안에서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튀어나오는 입자의 에너지를 단거리에서 측정한 다음, 그 스펙트럼과 진동 정도를 분석해 비활성 중성미자가 섞였는지를 알아내는 실험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 실험 연구단 중심의 국내 공동 연구진은 원자로 중심으로부터 23.7m 떨어진 곳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했다. 원전에 이 정도로 근접하게 검출기를 설치해 연구를 진행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약 10개월간 네오스 페이즈1(NEOS PHASE-1)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검출 확률이 높을 것으로 여겨지던 영역에서 비활성 중성미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는 2017년 물리학 분야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게재됐다. 현재는 더 넓은 영역을 관찰하기 위해 네오스 페이즈2 실험을 2018년 9월 착수해 데이터 수집을 마친 상태다.
가벼운 암흑물질 찾는 네온(NEON) 실험
또 다른 암흑물질 후보는 가벼운 암흑물질(Light Dark Matter)이 있다. 가벼운 암흑물질은 질량이 윔프보다 훨씬 작은 암흑물질로, 암흑 광자(Dark Photon)와 같은 매개 입자를 통해 일반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고에너지 광자는 암흑 광자로 변환되고, 이 암흑 광자가 다시 가벼운 암흑물질을 생성할 가능성이 있다. IBS 지하 실험 연구단이 이끄는 연구진은 이에 착안, 세계 최초로 원자로라는 특수한 실험 환경을 활용해 가벼운 질량 영역에서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실험을 개척하고, 그 연구 결과를 지난 1월 14일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한빛 원전 6호기에서 약 23.7m 떨어진 지점에 NEON(네온) 검출기를 2020년 설치했다. 이번 연구에는 2022년 4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담겼다. 실험 결과, 1~10keV(킬로전자볼트)의 에너지 범위에서 미세한 신호를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감도로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향후 연구팀은 데이터 수집량을 두 배 이상 늘리고, 더욱 정교한 분석을 도입해 본격적인 가벼운 암흑물질 탐구에 나설 계획이다.
실험을 이끈 이현수 부연구단장은 “가벼운 암흑물질 연구는 암흑물질의 질량, 상호작용 강도, 우주 초기의 물리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며 “네온 실험은 원자로를 암흑물질 생성 원천으로 활용하여 매우 가벼운 암흑물질을 탐색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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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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