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180만~270만 명의 사람들이 뱀 물림 사고를 당한다. 이 중 30만 명은 사지 절단 등 영구 장애가 남고, 10만 명은 목숨을 잃는다. 뱀 물림 사고는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의료 시스템이 취약한 국가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가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202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새로운 뱀 해독제 후보물질을 설계하고, 그 연구 결과를 1월 1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자연에서 발견한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단백질 설계
인간의 힘으로는 10년 이상 소요되던 단백질 구조 예측이 이젠 수 분에서 수 시간 만에 가능하다. AI의 발전 덕분이다. 베이커 교수는 2021년 수 분 내로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는 ‘로제타폴드(RF)’를 내놓은 뒤, 2022년에는 단백질 예측과 설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RF디퓨전’을 공개했다.
새로운 뱀 해독제 후보물질 개발에도 이 RF디퓨전이 활용됐다. 베이커 교수팀은 티머시 젠킨스 덴마크공대 교수팀과 함께 다수의 뱀독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3FTx(3 Finger Toxin)’이라는 물질을 타깃하는 단백질 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3FTx는 독소의 중심부에서 아미노산 사슬 세 가닥이 손가락처럼 뻗어 나오는 형태의 단백질 구조다. 인체에 들어오면 신경, 심장, 근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독성을 나타낸다.
기존 뱀독 치료는 동물에 소량의 뱀독을 주입해 만들어지는 항체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렇기에 대량 생산이 어렵고, 냉장 보관이 필요하다는 것도 한계였다. 특히, 3FTx 독소는 면역 반응이 적게 나타나거나 면역을 회피해 항체 생성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RF디퓨전을 활용해 3FTx 단백질에 정확히 결합해, 독성을 중화하는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했다.
치사량 독소 주입한 생쥐, 80~100% 생존
이후 연구진은 새로 합성한 뱀독 치료 후보물질의 효능을 동물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쥐에게 치사량의 독소를 주입하고, 15~30분 뒤에 치료 후보물질을 주입했다. 독소의 종류에 따라 생존율은 80~100%에 달했다.
또한 새로운 치료 후보물질은 전통적인 항체 기반 치료제보다 장점이 여럿 있다. 우선, 미생물을 사용해 제조할 수 있기에 면역 회피 문제를 줄이고,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크기가 작은 것도 장점이다. 조직에 더 잘 침투할 수 있어 현재 사용되는 약물보다 독소를 더 빨리 중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전통적인 치료제를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치료법이 승인될 때까지 기존 치료법의 효과를 개선하는 보충제나 강화제 정도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 연구자인 티모시 패트릭 젠킨스 덴마크공대 교수는 “뱀 종에 따라 독의 종류도 다르기 때문에 효과적 치료를 위해서는 세계 각지에서 맞춤형 치료제 개발이 필요하다”며 “뱀독 치료를 넘어 오늘날 치료법이 없는 다른 많은 질병 치료 과정에서 새로운 저렴한 의약품을 생산하는 등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커 교수는 “AI 기반 단백질 설계는 해독 물질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 실험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 자원이 제한적인 환경에서 약물 발견을 간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자원을 줄임으로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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