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매년 한 해 동안 과학계를 빛낸 10대 인물(Nature’s 10)을 선정해 발표한다. 지난 9일 발표한 2024년 네이처 10대 인물을 소개한다.
에게하르트 페이크: 시간의 아버지
세계 최초의 원자핵 시계를 개발하는 데 기여한 에케하르트 페이크 독일 국립계측연구소 박사가 10대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의 1초는 원자시계가 정한다. 세슘-133 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초다. 페이크 박사는 2001년 현재의 원자시계보다 더 정밀한 핵시계의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콜로라도볼더대 등 공동연구진은 지난 9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핵시계 개발을 위한 핵심 기술을 모두 완성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핵은 원자보다 크기가 작아 소형화에 유리하고, 전자기장 등 외부 방해에 안정적이다. 정밀도는 아직 상용 원자시계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연구진은 2~3년 내 원자시계를 초월하는 정밀도를 가진 핵시계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핵시계는 이론적으로 기존 원자시계보다 오차를 10만 배가량 줄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세계 최초 원자핵 시계 등장)
케이틀린 카라스: 연구자들을 위한 목소리
전 세계적으로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가 줄며 신진 연구자들은 재정적‧정신적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케이틀린 카라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원은 신진 연구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Support Our Science(SOS)’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로 올해의 10대 인물로 선정됐다. 카라스 연구원은 2023년 11월 프로젝트의 대표로 선임됐고, 결국 캐나다 전역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원의 20년 만의 가장 큰 급여 인상이라는 성과를 냈다. SOS 캠페인은 연구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학생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목적에서 2022년 시작됐다. 캠페인에 참여한 신진 연구자들은 2023년 5월 전국적 파업을 시행하는가 하면, 정부 예산에서 장학금 증가가 이뤄지지 않자 46개 기관 약 1만 명의 연구원이 일을 멈추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 과학계 10대 혁신: 신진 연구자들의 반란)
리 춘라이: 달 뒷면에서 온 첫 번째 암석
올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뒷면의 암석 표본이 지구로 도착했다. 지난 5월 3일 발사된 중국의 창어 6호는 달 뒷면의 토양 1935kg을 채취해 지난 6월 25일 지구로 돌아왔다. 리 춘라이 중국 국가항천국 연구원은 이 임무에서 착륙선이 달에 착륙할 곳을 결정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고, 지구로 도착한 표본을 최초로 분석한 연구자다. 달의 뒷면은 지구에서 볼 수 없어 아직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 많다. 뒷면에서 채취된 최초의 표본은 달의 초기 진화, 앞면과 뒷면의 비대칭 구조 등 비밀을 풀어줄 단서로 기대를 모은다. 더 나아가 달은 행성 진화의 초석으로, 달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면 화성, 금성, 수성 등 다른 행성의 과거도 해독할 수 있다. 표본을 해석한 첫 연구 결과는 지난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현재 표본은 중국 전역의 연구팀에 분배되어 추가 분석이 시행되고 있다. 중국 연구자들에게 우선권을 주기 위해 해외 연구자들이 접근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나 아발키나: 과학 출판계 사기 폭로
과학 출판계의 사기를 폭로한 아발키나 독일 베를린 자유대 연구원도 올해의 10대 인물로 꼽혔다. 아발키나 연구원은 한때는 피해자였다.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 금융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하던 때 아발키나 연구원은 자신의 논문 두 편이 표절됐다는 것을 알아채며 과학 출판계의 사기를 처음 경험했다. 이후 13년 동안 과학 출판의 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대표적 성과로 저자의 출판 수수료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사기 웹사이트인 ‘하이재킹 저널’을 추적했다. 하이재킹 저널은 SCOPUS와 같은 연구 데이터베이스에 색인되어 과학자들의 명성을 ‘세탁’했다. 지난해 12월 SCOPUS의 소유주인 엘스비어는 아바키나의 문제 제기를 인정하고, 모든 하이재킹 저널의 링크를 삭제하려는 노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바키나 연구원은 올해 6월 여전히 하이재킹 저널이 SCOPUS 데이터베이스에 침투하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후지 쉬: 자가면역질환 치료 효율 확대
후지 쉬 중국 칭화대 의대 교수는 건강한 사람의 면역세포를 환자에 주입해 자가면역질환 치료하는 데 성공한 공로로 올해의 10대 인물로 뽑혔다. 쉬 교수팀은 유전자가위 기술로 편집한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T세포 치료제를 환자의 몸에 주입했다. 지난해 독일 연구팀이 수혜자(자가면역질환 치료 환자)에게서 유래된 세포를 유전자가위로 규정해 재주입하는 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끈 적 있지만, 수혜자가 아닌 기증자의 세포로 치료에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적인 기증자로부터 채취한 세포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비용을 줄여 치료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쉬 교수는 지난 9월 세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첫 치료 결과를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근육 약화 환자가 치료 2주 후 팔을 올리고 머리를 빗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회복했다. 다른 두 환자다 증상이 며칠 만에 사라졌다. 6개월이 지난 현재 세 명의 수혜자가 모두 완치됐다.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는 한계가 있지만, 쉬 교수팀은 20명 환자를 대상으로 후속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웬디 프리드먼: 우주 팽창 속도 계산
“우주는 얼마나 빨리 팽창할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과학계의 난제다. 웬디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4월 ‘허블 상수’로 알려진 우주의 팽창 속도를 측정한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1메가파섹(약 320만 광년) 떨어진 은하들이 초속 67㎞로 멀어진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프리드먼 교수팀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 관측을 통해 이 은하들이 초속 72~74㎞의 속도로 멀어진다는 새로운 허블 상수를 얻었다. 허블 상수는 우주의 나이와 반비례한다. 즉, 허블 상수가 커진 만큼 우주는 기존 알려진 것보다 더 젊다는 의미가 된다.
무함마드 유누스: 국가 건설자
방글라데시 임시 정부의 지도자이자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도 10대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15년간 방글라데시의 총리로 집권했던 셰이크 하시나 전(前) 총리가 지난 8월 퇴진한 뒤 유누스는 과도정부 수장으로 앉았다. 80대인 유누스는 방글라데시의 빈민 구제 운동가다.
플라시드 음발라: 바이러스 사냥꾼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재확산을 미리 경고한 플라시드 음발라 콩고민주공화국 국립생의학연구소 박사도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2022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젊은 성인을 중심으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확산됐고, 선진국은 확산을 막기 위해 백신 등을 지원했다. 바이러스의 유전체를 분석하던 음발라 박사 연구팀은 2023년 재확산을 시작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이전과는 다른 형태임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그 후, 이전에 감염이 보고되지 않았던 6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음발라 박사는 원숭이두창 사례가 급증하는 것을 조기에 발견하고, 보건 당국에 억제 정책을 고안할 것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 사냥꾼’이란 별명을 얻었다. 음발라 박사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감염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자, 이를 다시 무시하는 ‘과학적 건망증’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WHO, “M두창(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다시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
코델리아 베어: 기후 운동 변호사
2003년 유럽의 역사적 폭염으로 인해 7만 명이 사망했다. 스위스의 변호사인 코델리아 베어는 해당 기간 노년 여성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율로 사망했으며, 기후변화의 영향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베어는 그린피스와 협력해 ‘스위스 노년 여성 기후보호협회’를 결성하고 2016년 정부를 상대로 첫 소송을 제기했다. 2,500명의 여성을 대리해 목소리를 낸 것이다. 기후변화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노년 여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내용이다. 8년간의 법적 싸움 끝에 베어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스위스가 지구 온난화를 제한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2015년 파리 기후 협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레미 램: AI 기상 예측
날씨 예측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을 이끈 레미 램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이 올해의 10대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구글 딥마인드는 그래프캐스트(GraphCast)라는 AI 모델을 선보였다. 기존 날씨 예보는 공기, 열, 수증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물리학 기반으로 지구 대기를 시뮬레이션한다. 하지만 AI 모델은 과거 대기 상태에 대한 대분석 데이터를 머신러닝으로 학습해 중기 예보를 수행한다. 1분 만에 10일간의 일기 예보를 정확하게 생성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으며, 올해 허리케인 ‘베릴’ 등을 정확히 예측하며 화제를 모았다. AI 기상 예보 모델을 개발하는 건 딥마인드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화웨이, 엔비디아 등도 AI 모델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정확도 측면에서 현재는 딥마인드의 그래프캐스트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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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12-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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