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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과 지역활성화의 상관관계 과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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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균 한국물리학회 부산·울산·경남 지부장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필자의 고향인 부산의 소멸위험지수값이 0.49로 위험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2024년 1분기 부산 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부산에서는 한 분기 동안에만 무려 2,433명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었으며, 심각한 것은 이 중 대부분이 20대 중후반 인구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젊은 인구의 대규모 유출을 빗대어 “부산은 노인과 바다뿐”이라는 오명이 퍼지고 있으니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출산이라는 국가적인 당면과제와 지역에 기반을 둔 양질의 청년 일자리 부족, 수도권 인프라 과밀화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해답을 구하는 방법의 재고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한편, 최근 발표된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23‒2027)에 따르면 국가연구 개발의 패러다임이 추격형(fast follower)에서 선도형(first mover)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이러한 선진국형 연구개발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은 것이 정책결정권자들의 의도인 듯하다. 긍정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성장동력의 부재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침체를, 과학기술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하는 의지의 결과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수십 년간 기초연구를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선도형 연구를 수행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승진, 과제 등 다수의 평가 제도가 유한한 시간에 과도한 성과 도출을 요구하고 있어서 학문적 특성이나 필수 인프라 유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연구 환경이 아직도 산업혁명 시대의 산물인 수월성, 대량생산, 획일화된 공정 형태의 잣대로 기초학문(과학) 분야를 지원 및 평가하는 추격형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급한 두 가지의 문제들, 지역소멸과 선도형 연구문화 마련은 국가적 차원에서 풀어내어야 하는 큰 숙제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뚜렷한 출구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필자가 속한 대학도 지난 10여 년간 ‘지역 산업과의 연계’ 틀에서 다양한 형태의 특성화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현 정부 역시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지역대학의 혁신을 유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학과 지역 사회가 글로벌 수준의 동반성장을 이루도록 각 대학에 5년간 1,0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또한, 여러 중앙부처의 대학 재정 지원사업을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예산:~3,500억원/년)으로 통합하여, 지자체가 대학지원을 주도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지역(특히 산업)과 대학의 새로운 동반성장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지역의 기존 인프라에 기반하거나, 통폐합을 통한 대학 구조조정에 근거를 두고 있어, 신산업 창출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역소멸극복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형태의 지역대학 활성화가 지역소멸 문제해결과 선도형 연구 체계 확립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지역대학에 기반한 기초과학 활성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잠시, 선도형 연구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선도형이라는 단어에는 역사성(historicity)의 개념이 탑재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한때 어떠한 연구 주제든 간에 ‘나노(nano)’라는 접두어가 붙으면 선두형 연구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노’라는 단어는 오히려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반면, 요즘은 ‘양자(quantum)’라는 단어가 붙으면 무엇이든 선도형 연구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나노’와 ‘양자’의 개념이 선도연구에 어떻게 활용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선도형 연구 주제는 그 시대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역사성과는 상관없이 선도형 연구에서 불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양성(diversity)과 창의성(creativity)이 그 기반을 이룬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에는 집적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최고의 가치였다. 이를 위해선, 대규모 연구 집단을 한 공간에 모아 두거나, 특성화라는 관점에서 특정 지역 및 집단 중심으로 연구 인프라 등이 설치/운영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더욱 우선시되었다. 굳이 구체적인 사례나 정량적인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 이러한 패러다임만으로는 더 이상의 새로운 성장동력 혹은 선도형 연구 체계 마련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렇다면, 기존의 집적화에서 벗어난, 소규모, 분산형 연구인프라, 그리고 다양한 연구 주제를 부담없이 다룰 수 있는 환경이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 이런 연구 환경은 좋은 교통편(접근성)도 필요 없고, 산업이 밀집한 공단(집적성)일 필요도 없다. 예로, 조그만 창고에서 시작한 애플, HP, 아마존, 구글을 보면, 기존 산업군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기초과학에서 창업에 이르는 패러다임의 부산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육성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미 과밀화된 수도권보다는 지역에 위치한 대학 중심의 다품종 소량화 기초연구 활성화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남들이 하지 않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연구 주제를 발굴해서 수행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 극히 일부가 여러 가지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려, 시류에 따른 관심을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소위 퍼스트 무버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월성 중심으로 연구 주제를 평가한다고 가정하면, 이런 새로운 주제들은 결코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연구 주제들이라는 점이다. 조금은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현재 퍼스트 무버가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은 관심 밖의 생경한 연구를 제안하고 있으니, 아마도 올해 연구비 지원은 받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 중인 연구 성과물의 질은 점점 떨어질 것이고, 이어서 이듬해 연구비 지원도 받을 확률이 낮아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돌게 될 것이다.(결국, 퍼스트 무버의 가능성을 가진 이는 이름 없는 과학자로 사라질 운명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수월성과 퍼스트 무버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대신 결과론적인 퍼스트 무버가 필요하다면 수월성이 아닌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르네상스 시절과 같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 혹은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패러다임이 바뀌는 사건(사람)이 나타난다. 즉, 다양성이라는 주춧돌 위에 참신한 주제들이 조화로운 경쟁을 통해서만 선도형 연구자들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에 기반한 창의적 기초연구를 지역대학이 중점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지역이 경쟁력을 가지고 동시에 선도형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필자의 논의를 실행하기 위해선, 낙후된 지역 인프라 개선 등의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 가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지역대학 중심의 기초과학 연구가 수도권 지역의 역차별적 투자를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자는 뜻이다. 예로, 서울대학교 1인당 학생 교육비(~6천만 원/년)가 부산대학교(~2천만 원/년)와 대략 3배의 차이가 나는 현실에서, 이러한 간극을 줄이는 노력은 꼭 필요하리라 본다.

결론적으로, 지역대학 중심의 기초과학 활성화는 지역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우수한 인재를 지역으로 끌어들여,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대학의 연구 역량이 강화되고, 지역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며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기회도 얻게 된다. 지역에 맞는 기초과학 육성을 통해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이루어, “노인과 바다뿐”인 부산이 바다를 사랑하는 “퍼스트 무버”로 가득한 도시로 탈바꿈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psk@pusan.ac.kr)

 

* 이 글은 한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웹진 ‘물리학과 첨단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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