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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권예슬 리포터
2024-09-24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듯, 특별한 주파수를 찾는 과학자들 국내 연구진, 세계 최고 민감도의 액시온 탐색 실험 본격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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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 라디오에서 원하는 방송을 찾으려면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이보다 5,000만 배가량 넓은 주파수 영역에서 특별한 신호를 찾는다. 바로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암흑물질의 신호다. ©GettyImages

라디오 방송 즐겨찾기가 없던 시절. 원하는 라디오 채널을 찾아 듣기 위해서는 다이얼을 세심하게 돌려야만 했다. FM 라디오의 주파수 범위는 87.5~108MHz. 과학자들은 이보다 5,000만 배가량 넓은 주파수 영역을 샅샅이 뒤진다. 과학자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물질, 암흑물질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우주 유령

밤하늘을 무수히 메운 별들과 생명, 물질 등 우리가 아는 우주는 다 합쳐도 전체 우주의 4.9%에 불과하다. 우주의 26.8%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있지만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암흑물질로 추정된다. 암흑물질은 우주 초기 은하 형성 과정에 필수적이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여러 암흑물질 후보를 제안했다.

그중 액시온(Axion)은 유력 암흑물질 후보로 꼽힌다. 액시온은 아주 작은 질량을 가지며, 주변을 진동하며 떠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된다고 적은 이유는 인류가 이제껏 아직 액시온을 관찰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잡히지 않는 액시온을 잡기 위해 과학자들은 강력한 자석을 쓴다. 액시온이 자기장과 만나면 질량에 상응하는 주파수를 갖는 광자(빛)로 변환된다. 이때 주파수의 세기는 아주 미약한데, 공진기를 이용해 증폭하고 검출하면 해당 영역의 액시온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하는 여러 정황이 있지만,  아직 실험으로 발견되진 않았다. ©Flickr

문제는 액시온의 질량 즉, 변환된 주파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예측된 방대한 주파수 영역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조금씩 바꿔가면서 탐색해야 한다. 이론이 예측하는 액시온의 주파수 영역대는 FM 라디오 주파수 영역보다 5,000만 배가량 넓다. 이에 액시온 연구자들은 목표로 하는 각 영역 맞춤형 장비를 개발해 일부분씩 액시온의 흔적을 샅샅이 찾는다.

 

대통일 이론, 그리고 액시온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전기를 띤 핵과 전자를 결합해 원자를 구성하는 힘), 강력(핵 속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힘), 약력(핵의 붕괴와 융합에 관여하는 힘) 등 총 네 가지의 힘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물리학의 정수인 표준모형은 이중 중력을 제외한 세 가지 힘과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표준모형은 과학자들에 의해 실험적으로도 검증됐다. 하지만 표준모형이 설명할 수 있는 물질은 우주 전체에서 고작 5%에 불과하다. 우주의 26.8%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암흑물질의 존재는 표준모형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표준모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여러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이론이 ‘대통일 이론(GUT, Grand Unified Theory)’이다. 하지만 대통일 이론은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지구에서 입자를 가장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킬 수 있는 장치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LHC) 조차 대통일이론을 검증하기에는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 현대 물리학의 정수인 표준모형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 네 가지의 힘,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현재까지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CERN

대통일 이론에서 기술하는 암흑물질을 발견한다면, 대통일 이론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셈이다. 대통일 이론을 기반으로 예측한 암흑물질을 ‘DFSZ 액시온’이라 부른다. DFSZ 액시온은 김진의 경희대 석좌교수가 제안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액시온(표준 KSVZ 액시온) 보다 기존 물질과의 상호작용이 적다. 더 탐색이 어렵다는 의미다.

액시온은 강한 자기장과 만나면 빛(광자)으로 변하는데, 이를 단서로 1989년부터 전 세계에서 액시온 탐색 실험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DFSZ 액시온 탐색의 경우 실험의 난이도 때문에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이끄는 ‘ADMX(Axion Dark Matter eXperiment)’ 실험이 유일했다.

 

독자 연구 개발 장비로 세계 최고 감도의 액시온 탐색 실험 시작

지난해 국내 연구진이 실험 매개 변수들을 최첨단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세계 두 번째로 DFSZ 액시온 탐색 실험을 착수했다. 액시온 검출 확률은 자기장이 클수록 높아진다. 연구진은 지구자기장의 24만 배에 이르는 12T(테슬라)의 자석을 설치했다. ADMX는 8T의 자석을 이용한다. 또한, 신호 검출을 방해하는 배경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대온도 0도에 가까운 초저온 환경을 마련했다.

▲ DFSZ 액시온 탐색을 처음으로 시작한 미국 워싱턴대 ADMX 실험 설비. ©ADMX Collaboration

여기에 양자 기술을 접목하여 탐색 속도를 대폭 높였다. 작년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1.1GHz(기가헤르츠) 주변의 주파수 대역에는 액시온이 없음을 확인했다. ADMX 설비로는 60일 동안 분석할 대역을 우리 연구진은 독자 개발 장비로 단 보름 만에 분석해낸 결과였다.

이어 지난 8월 12일 연구진은 추가 연구 결과를 내놨다. 1.025~1.185GHz 영역에도 액시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한 결과다. 지난해에는 좁은 범위를 빠른 시간에 고감도로 탐색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더 넓은 영역을 탐색하여 독자 개발 장비가 액시온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방대한 영역을 모두 탐구할 훌륭한 탐색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X(Physical Review X)’에 실렸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4-09-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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