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 가깝게, 승승장구 도서전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이 큰 흥행을 거두며 폐막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대한출판문화협회는 5일간 약 15만 명의 유료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이 중에는 n차 관람객도 다수 있다고 발표했다.
도서전의 성공으로 책 생태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확실히 도서전의 외형이 성장했고, 이것이 출판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출판사의 저작권 거래 및 굿즈 시장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책’을 매개로 독자를 포함한 소비자들과의 소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각에서는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도서전을 일종의 ‘팝업 스토어’로 여겨, 특별한 경험과 인증 놀이에 치우친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에 엄숙했던 도서전이 친근한 놀이의 장이 된 것은 독서문화에 긍정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성인 6명은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아…
도서전의 뜨거운 열기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매년 하향 추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4월에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 독서율은 43%, 종합 독서량은 3.9권에 그쳤다. 즉, 성인 10명 가운데 6명 정도는 일 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결과는 직전 조사보다 4.5%p 감소한 것으로, 1994년에 독서 실태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실제로 최근 6년 사이에 성인 독서율은 6~7%씩 떨어져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에 80%에 육박했던 독서율이 반 토막 난 현상을 분명한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독서를 못하는 혹은 안 하는 이유는 많다. 우리나라 성인이 꼽은 독서 장애 요인으로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높았고, ‘책 이외 매체(스마트폰·TV·영화·게임)를 이용해서’가 23.4%,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가 11.3%로 나타났다. 한편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른 ‘독서’ 인식 변화를 조사한 결과 성인 중 일부는 ‘종이신문 읽기’를 독서로 인식했다. 이외에도 성인의 경우 ‘인터넷 검색 정보 읽기(77.0%),’, ‘문자정보 읽기(76.5%)’, ‘소셜 미디어 글 읽기(42.0%)’ 등을 읽기 관련 주요 활동으로 꼽았다.
‘바쁘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마저도 어딘가, 또 성인과는 달리 초·중·고등학생의 종합 독서율은 95.8%로 매우 높으니 다행인가도 싶다. 하지만 청소년이 교육과정에서 독서를 권고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로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독서하는 사회’, ‘독서습관을 유지하는 의지’가 형성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세대가 이어지면 읽고 쓰는 힘, 공감 능력, 감성 지능, 논리적 사고력 등이 낮은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숏폼’에 빠진 사람들, 책은 길어서 읽기 힘들다
최근 숏폼 콘텐츠 중독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증세는 ‘팝콘 브레인’으로 뇌가 빠르고 강한 디지털 자극에 익숙해져서 이러한 자극이 아니면 무감각해지는 현상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우리 뇌는 자극적인 영상을 볼 때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을 분비하는데, 이러한 시청 습관에 빠지면 조금이라도 긴 영상이나 긴 글을 보기 어려워한다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독서습관을 더욱 권장한다.
문제는 독서에도 숏폼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1일 1페이지’를 표방하는 장르, TV나 유튜브의 독서 예능 등은 독서의 숏폼화를 부추긴다. 물론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는 책은 독서습관을 형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짧은 독서에 길들여지면, 긴 서사의 흐름이나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을 이해하는 독서로 넘어가기 어렵다. 또한, ‘책 읽어 주기’ 콘셉트를 내세워 일타 강사가 책을 요약해 주는 프로그램은 결국 수동적 집중력이 발휘되는 미디어 소비에 그치기 쉽다.
임소혜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숏폼과 같은 축약된 영상매체에는 정보가 단편적이고 축약돼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사고와 통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과학적 이유
책을 읽어야 똑똑해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서로 다른 두 개의 뇌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가 지난해 미국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에 발표됐다. 미국 휴스턴의대, 텍사스 신경재생 기술연구소,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대학, 프랑스 파리사클레대학, 콜레주 드 프랑스 연구진들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읽기와 관련된 뇌 영역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지능지수가 보통 이상인 대상자 36명을 대상으로 일반 문장, 재버워키 문장, 단어만 나열된 문자 등 세 가지 형태의 글을 읽도록 한 뒤 뇌 활동을 관찰했다. 재버워키(Jabberwocky)는 신조어, 합성어가 포함되었거나 말장난으로 가득한 ‘아무 말 대잔치’ 문장을 뜻한다.
그 결과 문장을 읽는 동안 서로 다른 뇌신경 회로의 연결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복잡한 문장을 읽고, 복잡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할 때는 전두엽에서 측두엽으로 보내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다. 반면에 문장 구조와 문맥을 파악하고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하여 빠르게 이해하려 할 때는 측두엽에서 전두엽으로 보내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됐다. 연구진은 독서가 이해력 및 언어능력에 영향을 미쳐 뇌 기능을 높이는 이유는 이 두 영역의 여러 뇌신경 회로가 짧은 시간 동안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우리 두뇌는 수많은 배경지식을 활성화시키는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학습한 내용을 조직화하고 뇌에 저장한다. 전문가들은 소위 ‘똑똑하다’는 표현은 뇌신경 회로가 풍부하게 연결되어 적극적으로 활성화될 때를 일컫는다면서, 이것은 독서로 훈련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독서는 시각적 텍스트를 의미로 전환, 복잡한 위계 구조와 상징을 해석하는 고도의 정보처리 과정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방해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지만, 독서를 해야 하는 과학적 이유도 충분하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도서전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했다면, 이제는 책에만 집중하여 읽을 차례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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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7-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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