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태명)가 20개월쯤 되니 하루에 한 번쯤은 “둘째는 낳을 거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마음의 결정을 위해 선배 엄마들에게 외동을 결정하거나 둘째를 낳기로 결심한 이유를 물었다.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첫째가 동생 낳아달라고 해서 결정했어”라는 대답도 들었다. 어린 녀석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생길 변화를 알기나 할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접했다. 첫째는 태아 시절 동생이 태어날 것을 대비해 엄마 뱃속을 동생에게 우호적인 환경으로 만들어놓는다는 것이다. 동생 맞이 엄마 뱃속 인테리어라고나 할까.
산모의 몸이 태아를 침입자로 인식하지 않는 이유
우리 몸은 외부의 침략을 막는 방어 체계인 면역이 항상 작동한다. 절반의 유전체가 아버지로부터 온 태아는 산모의 면역 체계 입장에서는 외부 침입자다. 그런데 산모의 면역 체계는 태아를 적대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인류를 포함한 포유류가 태반을 통한 출산을 해 온 기나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산모가 태아를 공격하지 않는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2012년 그 비밀이 일부 풀렸다. 미국 신시내티어린이병원 연구진은 임신 하면 체내 조절 T세포가 빠르게 증식해서 외부 물질로 인식될 수 있는 태아 조직에 대한 공격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연구 결과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조절 T세포는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면역 세포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조절 T세포가 출산 이후에도 몇 년간 지속될 정도로 산모의 몸에 장기간 머무른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첫째를 출산한 뒤, 다시 임신했을 때 이전 임신을 기억하는 조절 T세포가 빠르게 증식해 면역 체계가 태아를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단, 태아의 아버지가 동일한 경우에만 말이다.
태아는 산모의 몸에 조절 T세포 외에도 다른 흔적을 남긴다. 소수의 태아 세포는 자궁에서 빠져나와 산모 몸 전체의 다양한 조직에 자리 잡는다. 이를 ‘마이크로키메라 세포(microchimeric cell)’이라고 부른다. 마이크로키메라 세포의 존재 자체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태아 세포가 엄마 몸에 정착한 후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싱싱 웨이 미국 신시내티어린이병원 교수는 “모체와 태아를 연결하던 탯줄이 끊어지고 배꼽은 평생토록 우리의 몸에 남는다”며 “배꼽처럼 마이크로키메라 세포는 ‘임신의 기념품’ 정도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조절 T세포 활동 스위치 켜는 마이크로키메라 세포
이어 2015년 웨이 교수 연구팀은 쥐에서 마이크로키메라 세포의 수를 추적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그 연구 결과를 생명과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셀(Cell)’에 발표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 9월 21일 놀라운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첫 번째 임신을 통해 엄마 몸속에 남겨지는 마이크로키메라 세포는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미래의 형제‧자매를 위한 우호적 면역 환경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열쇠라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잔여 마이크로키메라 세포는 몸속에 남은 조절 T세포를 활성화해 새로 자리 잡은 태아를 산모의 면역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늘리기 위해 진화해 온 전략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실험을 통해 임신이 반복됨에 따라 마이크로키메라 세포의 양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했다. 두 아이의 엄마는 일생에 걸쳐 세 가지의 마이크로키메라 세포 세트를 가진다.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얻은 모체 마이크로키메라 세포와 첫째와 둘째 아이 임신 과정에서 얻은 마이크로키메라 세포다. 첫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어머니로부터 얻은 마이크로키메라 세포는 사라진다. 면역학적으로 어머니를 잊게 되는 것이다.
또한, 둘째 아이를 임신해도 새로운 태아의 마이크로키메라 세포로 대체됐다. 하지만 각 임신에서 얻은 조절 T세포의 일부는 계속 산모의 몸에 남아 다음 임신을 위해 활동했다. 혹시 태어날지 모를 새로운 생명을 위해 면역 세포들이 ‘비상 대기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진은 이전 임신을 기억하는 산모의 능력이 임신으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웨이 교수는 “산모가 면역학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기억하는지를 조사하여 임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며 “건강한 첫째를 출산할 경우 건강한 둘째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으로 이러한 전략을 모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고위험 임신에서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건강하지 못했던 임신의 경험도 면역학적으로 기억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3-11-02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