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2000t에 육박한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명성답게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희소식이 될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연구진은 플라스틱을 비누, 세제 등 유용한 화학물질로 ‘업사이클링(새활용)’하는 새로운 화학반응을 개발했다. 연구결과는 8월 11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플라스틱 폐기물 변신시키는 특별한 벽난로
플라스틱과 비누는 질감이나 외관, 사용법 측면에서 서로 관련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분자 수준에서 관찰하면 유사점이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플라스틱 중 하나인 폴리에틸렌(PE)과 비누의 전구체인 지방산은 화학 구조가 유사하다. 두 재료 모두 긴 탄소 사슬을 가지고 있다. 차이점은 지방산은 사슬 끝에 추가적인 원자 그룹이 있다는 점이다.
리우 구량 버지니아공대 교수 연구팀은 이 유사성을 토대로 폐플라스틱을 비누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긴 폴리에틸렌의 탄소 사슬을 짧지만, 너무 짧지는 않게 분해하면서도 효율적인 반응을 개발하는 것이 난제였다. 리우 교수는 어느 겨울 벽난로 앞에서 갑자기 이 난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았다. 벽난로에서 나무가 연소할 때 생성되는 연기가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폴리에틸렌을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불완전 연소시켜 연기를 만들 수 있고, 그 연기를 포집한다면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연구팀은 폴리에틸렌을 가열하는 특별한 벽난로를 만들었다. 이 벽난로는 상하부의 온도가 다르게 구성됐다. 온도가 높은 하단에서는 화학반응이 활성화돼 분해 반응이 진행되고, 상단에서는 온도가 낮아 더 이상 분해가 진행되지 않는다. 반응 후에는 벽난로의 연기를 청소하는 것처럼 새로운 생성물을 모을 수 있다. 이 벽난로에 폴리에틸렌을 연소시킨 결과 짧은 사슬의 폴리에틸렌, 즉 ‘왁스’가 만들어졌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온도 구배 열분해(temperature-gradient thermolysis)’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리우 교수는 “벽난로용 땔감은 섬유소와 같은 고분자로 이뤄져 있는데, 연소는 이 고분자가 짧은 사슬로 분해되고 끝내 작은 기체 분자로 분해되어 완전한 산화가 이뤄질 때까지 이어진다”며 “우리는 폴리에틸렌을 벽난로와 유사하게 연소시켜 분해하지만, 완전히 분해되기 전에 멈춰서 짧은 사슬의 폴리에틸렌 분자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온도 구배 열분해 방식을 토대로 얻은 왁스를 염 처리를 거쳐 지방산으로 전환했다. 폴리프로필렌(PP)도 이 방식으로 지방산으로 만들 수 있었다. 두 종류의 플라스틱을 서로 분리해 재활용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두 플라스틱을 동시에 연소하는 것도 가능했다. 값비싼 촉매나 까다로운 화학반응 조건 없이도 고부가가치의 물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누는 무게당 플라스틱보다 시장 가치가 2~3배 높다
스티로폼도 유용 물질로 탈바꿈
바다 쓰레기와 범람하는 매립지는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는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 재사용 및 재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캔이나 유리병과 달리 모든 재활용 공장이 모든 유형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플라스틱 재료의 화학 및 구조가 다양하고, 유형마다 특정 재활용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까다롭고, 처리하는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도 않았다.
리우 교수 연구팀의 목표는 플라스틱 재활용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8월에는 스티로폼의 주요 구성 요소인 폴리스티렌을 업사이클링하는 화학반응을 개발하고, 그 연구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기도 했다. 폴리스티렌은 널리 사용되는 것에 비해 거의 재활용되지 않는다. 현재 사용되는 재활용법이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연구팀은 폴리스티렌을 자외선에 노출시키고, 화학 촉매를 첨가하여 디페닐메탄(DPM)이라는 물질로 전환했다. DPM은 약물이나 향료의 전구체다. 현재 재활용 폴리스티렌으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재료보다 시장 가치가 10배가량 높다.
리우 교수는 “플라스틱을 다른 유용한 재료의 생산으로 유도하여 폐기물을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며 “플라스틱 오염은 소수 국가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인 만큼 인류가 플라스틱 오염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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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8-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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