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에만 해도 인류는 금성이 지구의 열대 기후를 가진 행성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금성은 크기와 질량이 지구와 비슷하고, 태양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도 유사해서 지구의 ‘쌍둥이 행성’으로 불린다. 게다가, 지구와 같은 암석형 행성이다.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던 196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마리너2’ 탐사선이 금성을 근접 통과하는 과정에서 금성 대기가 뜨거울 수 있다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후 구소련(러시아)의 베네라 탐사선 등 잇따른 탐사를 거듭한 끝에 금성이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불지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금성의 평균 온도는 467℃에 이르고, 대기 구성 성분도 다르다. 쌍둥이 행성의 운명은 어떻게 이토록 달라졌을까. 과학자들은 이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있다.
2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기자실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과 과학기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이연주 IBS 행성대기 그룹 CI(그룹장‧Chief Investigator)는 “금성이 지구와 달리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금성 탐사 연구의 흐름이 끊겼다”며 “하지만 금성 연구는 우리가 발견한, 또 앞으로 발견할 외계행성이 금성처럼 척박한 행성인지,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인지 구분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고 말했다.
금성이 겪고 있는 급격한 기후변화의 원인
‘금성 탐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서 이연주 CI는 과학자들이 금성에 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를 소개했다. 우선 과학자들이 풀고자 하는 숙제는 금성 대기의 기후변화다. 금성 구름의 주성분인 이산화황은 주로 70㎞ 고도에 분포한다. 그런데, 이 이산화황의 양이 최근 급격히 변하고 있다. 1980~1990년대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는데, 2000년대 이후 그 양이 급증했다 그러다 2010년대 이후 급락했다.
금성 대기가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화산 폭발이 거론된다. 화산이 폭발하면 고농도의 이산화황이 배출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금성에서 폭발형 화산이 관측된 적이 없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활화산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미국 연구진이 금성에서 최근 화산활동이 일어난 증거를 찾았다고 보고한 뒤 활화산의 존재가 밝혀졌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지구의 ‘악마의 쌍둥이’ 금성에 활화산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70㎞ 고도의 대기까지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화산은 아니다. 화산 폭발만을 대기 변화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자외선 잡아먹는 미지의 물질은 무엇일까
또 다른 궁금증은 금성에 존재하는 ‘미확인 흡수체’의 정체다. 금성을 자외선으로 촬영하면 행성 절반 가량이 어둡게 찍힌다. 대기의 주성분인 이산화황은 자외선을 흡수하지 않아, 자외선 촬영 시 밝게 빛나야 한다. 황산이 아닌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성분이 금성 표면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미확인 흡수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염화철이나 황이 섞인 화합물 등 여러 물질이 미확인 흡수체의 후보로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미확인 흡수체의 정체 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금성의 기후변화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연주 CI는 금성 구름 상층 대기가 흡수하는 전체 태양 에너지량 중 절반이 미확인 흡수체에 의해 흡수된다는 사실을 규명한 바 있다. 최근 미확인 흡수체의 양도 이산화황 가스의 양처럼 급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감소했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갑자기 증가했다. 즉, 미확인 흡수체의 양이 변하면 금성의 태양에너지 흡수율이 변하고, 이는 금성의 기후에 직결된다.
게다가, 지구 초강력 태풍의 2배 속도인 금성의 강풍도 미확인 흡수체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금성의 자전 주기는 243일이지만, 대기가 금성을 회전하는 데는 고작 4~5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금성 바람은 초속 100m 수준으로 분다. 초순환(슈퍼 로테이션) 바람의 속도 역시 최근 변하고 있는데, 이는 금성의 밝기 변화와 연관됐다는 증거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금성 탐사에 주목하는 이유
금성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나타나자, 금성 탐사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엔비전(EnVision)’을, NASA는 ‘다빈치(DAVINCI)+)’와 ‘베리타스(Veritas)’ 탐사선을 금성에 보낸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러시아도 1980년대 이후 끊어졌던 금성 탐사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금성 탐사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심(深)우주 탐사의 발전과도 연관된다. 항공우주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화성보다 먼 우주까지 관측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50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을 발견했고, 이중 지구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암석형 행성도 있다. 어쩌면 그곳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석형 행성에 크기와 질량이 비슷하다는 단서만 가지고서는 발견한 외계행성이 금성과 같은 불지옥일지 지구와 같은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일지 파악하기 어렵다. 금성 연구는 지금 발견한 또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등 최첨단 망원경으로 발견할 외계행성이 ‘금성’일지 ‘지구’일지 구분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다.
우리나라 역시 저예산으로 금성 탐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연주 CI가 이끄는 IBS 행성대기 그룹은 초소형 큐브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금성 전체를 장기간 관측하는 ‘금성 장기 프로젝트(CLOVE)’를 추진하고 있다. 행성대기 그룹은 2026년 초소형 위성을 저궤도에 올리고, 이후 3년마다 추가로 위성을 보내 장기간 금성을 관측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2년 6월 출범한 이후 현재는 국내 관련 기업과 위성 설계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다른 탐사와 달리 큐브위성을 이용하면 약 3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연주 CI는 “거대 탐사선이 금성 가까이에 접근하여 좁은 범위를 높은 해상도로 관측할 때, 큐브위성은 금성 전체를 관찰하며 금성 전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임무 사이의 공백을 메꿀 보완자료를 제공할 것”이라며 “현재는 국내 관련 기업과 위성 설계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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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6-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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