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링 제품을 구경하다 보면 ‘곱슬머리용 샴푸’와 같은 식으로 머리카락 유형에 따른 제품이 구분돼 있다. 하지만 곱슬, 직모 등 구분으로는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 애매할 때가 있다. 내 머리카락이 단순한 분류 중 어디에 속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서다. 특히 돼지꼬리처럼 심하게 말린 곱슬머리를 가진 흑인들은 선택이 더 어렵다. 이제 이런 고민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스펠만대 연구진은 머리카락의 물리적 특성을 기반으로 정량적으로 머리카락의 유형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단면 모양이 결정하는 곱슬
머리카락은 머리가 햇빛에 의해 과열되는 것을 막아준다. 곧게 뻗은 직모에서 웨이브가 있는 반곱슬, 돼지꼬리처럼 돌돌 말린 곱슬머리까지 기능은 같아도 모양은 다양하다.
털이 곱슬거리는 정도는 털 단면의 모양과 관련이 있다. 단면이 동그랄수록 털은 곧게 자라며, 계란형일수록 털은 더 곱슬거린다. 대게 동양인의 머리털은 단면이 원형이므로 곧게 뻗은 머리칼인 직모이고, 서양인의 머리털 단면은 타원형으로 길쭉해서 동양인보다 웨이브가 심한 곱슬모다. 흑인의 머리털은 타원인 정도가 더 심해서 납작하거나, 심한 경우 리본 모양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곱슬모가 된다.
과도한 자외선, 염색약 등 화학약품의 사용, 드라이기로 인한 열 손상, 수영장의 약품 등 외인성 손상은 모발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든다. 털은 죽은 세포로 이뤄져 있어 스스로 재생하지 못한다. 즉, 한번 손상된 털은 영구히 그 상태를 유지한다. 컨디셔너나 트리트먼트 등 헤어스타일링 제품들은 털을 회복시키지는 못하지만, 더 이상 손상되는 것을 막아준다.
내 머리카락의 상태를 아는 새로운 기준
헤어스타일링 제품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내 머리카락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미셀 게인즈 미국 스펠만대 교수 연구팀은 지난 3월 26일 열린 미국화학회(ACS) 봄 학술대회에서 머리카락의 상태를 정량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내놨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게인즈 교수는 본인이 경험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돼지 꼬리처럼 돌돌 말린 ‘킨키 헤어’를 지닌 기네스 교수는 미용실에서 화학제품을 이용한 시술을 통해 머리를 펴왔지만, 임신하면서 시술을 중단했다. 이후, 시중에 나온 다양한 제품들 중 코일 헤어를 관리하기 적합한 제품을 골라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지인의 후기, 유튜브 추천 등은 제각각이어서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인즈 교수는 “사용자의 제품 선택을 돕기 위해 머리카락의 유형을 분류한 이전의 연구들은 백인의 반곱슬, 동양인의 직모 등 상대적으로 곱슬거림이 적은 머리카락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고, 악성 곱슬인 ‘아프라카인의 모발’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며 “곱슬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기존 연구로는 이 미묘한 ‘뉘앙스’를 구분하기 부족했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제자들과 함께 내 머리카락의 뉘앙스를 연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모발의 곱슬모를 웨이브(wavy), 컬리(curly), 킨키(kinky) 헤어로 다시 한번 분류하고, 곱슬 정도에 영향을 주는 머리카락의 물성을 찾았다. 각 머리카락 샘플을 수집하여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꼬임이 풀리고, 끊어지는 순간까지 관찰하며 머리카락의 힘, 응력 등 매개변수를 측정했다.
머리카락이 꼬임이 풀리고 곧게 펴지는 데 필요한 힘을 통해 곱슬 정도를 구분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신축 비율(stretch ratio)’라 불렀다. 직모의 경우 꼬임이 없어 신축 비율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웨이브 헤어의 경우 0.8, 컬리 헤어의 경우 1.1, 킨키 헤어의 경우 1.4의 힘이 필요했다. 신축 비율을 지표로 사용하면 곱슬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어, 연구진은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자현미경(SEM)을 이용해 머리카락의 기하학적 특성을 측정하여 또 다른 분류 지표도 제시했다. 웨이브, 컬, 코일 등 머리카락의 등고선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3㎝ 길이의 머리카락 샘플을 관찰했을 때 직모는 등고선이 1개 미만, 컬리 헤어는 2개, 킨키나 코일 헤어는 3개 이상이었다. 이를 지표로 이용하면 미용실에서도 간단하게 머리카락의 유형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추가 연구를 통해 ‘큐티클’로 알려진 모발 섬유의 표면을 보호하는 층이 모발 유형별로 다르다는 것도 알아냈다. 큐티클은 널빤지와 같은 평평한 셀이 겹쳐진 구조다. 그러나 외인적 손상이 발생하면 큐티클이 들어 올려진 상태로 변하며, 모발 섬유 내부의 피질이 노출된다. 즉 구멍이 송송 뚫린 다공성 머리카락이 되고, 수분 흡수가 많아진다.
게인즈 교수는 “직모는 곱슬머리보다 큐티클의 크기가 크고, 간격도 넓다”며 “직모일수록 수분을 많이 함유하게 된다는 것으로, 곱슬머리가 직모나 반곱슬보다 머리카락이 더 빨리 마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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