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동쪽 지평선으로 떠오르며 새로운 아침을 알리기 직전. 동쪽 하늘에는 그 어떤 천체보다 밝은 별이 뜬다. 우리말로는 ‘샛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 별은 오랜 시간 동안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인류가 행성 탐사를 시작한 뒤 가장 먼저 탐사선을 보낸 곳도 바로 이 행성, 금성이다.
금성은 태양계 행성 가운데 지구와 크기, 부피가 가장 비슷하다. 하지만 기후는 완전히 다르다. 지구의 90배가 넘는 대기압과 황산 구름, 460℃ 이상의 고온에 시달린다. 불지옥 같은 환경에 금성은 ‘악마의 쌍둥이(Evil Twin)’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최근, 금성에서 최근까지도 화산활동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제시됐다. 이번 발견으로 금성은 지구, 목성의 위성 이오와 함께 활화산이 있는 태양계 천체에 합류하게 됐다.
30여 년 전 관측자료 다시 뒤져 찾아낸 활화산
금성은 크기‧밀도뿐만 아니라 핵과 맨틀로 구성된 내부 구조까지 지구와 비슷하다. 화산활동과 같은 지질학적 메커니즘 역시 지구와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구에서는 연 평균 50여 개의 화산이 분출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금성 역시 화산활동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징후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미국 페어뱅크스알래스카대 연구진은 30여 년 전 금성 관측 데이터를 다시 살펴보다가 금성에 최근까지도 화산활동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발견하고, 그 결과를 지난달 1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1989년 5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금성 표면 지도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마젤란 탐사선을 우주로 보냈다. 마젤란은 1990년 8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금성 궤도를 돌며 표면 전체를 촬영했다.
연구진은 당시 포착된 이미지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한 뒤, 시차를 두고 표면 변화를 살폈다. 특히, 금성에서 가장 큰 화산이 위치한 ‘오짜 몬스(Ozza Mons)’와 ‘마트 몬스(Maat Mons)’ 지역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8개월에 걸친 마트 몬스 화산의 분출구 변화를 포착했다. 1991년 2월 마트 몬스 화산 분출구의 크기는 2.2㎢였으나, 8개월 뒤엔 4㎢로 커졌다. 원형이던 모양도 찌그러졌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시뮬레이션한 결과, 화산 분출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1990년대까지 금성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증거는 금성이 아직 ‘지질학적으로’ 살아 있다는 결론을 준다.
연구를 주도한 로버트 헤릭 교수는 “다가오는 금성 탐사 임무들은 30년 전에 끝난 마젤란 탐사 이후 발생한 새로운 화산활동의 증거를 포착하거나, 운이 좋으면 임무 동안 새로운 화산활동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찾아온 금성 연구 르네상스
그간 금성 탐사는 우주 개발에서 후순위였다. 불지옥과 같은 기후와 함께 지구의 90배에 이르는 기압을 가져 탐사선 착륙이 어렵기 때문이다. 궤도선으로 관찰한다고 해도 대기층이 두꺼워 표면을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지구에서는 태양과 함께 뜨고 지기 때문에 태양빛에 가려 관찰할 수 없다. 이렇게 금성 연구는 자연스레 순위가 밀렸다.
그런데 최근 금성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뜨거워지는 지구가 금성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금성도 과거에는 지구처럼 바다와 강이 흘렀지만, 금성을 뒤흔든 격변으로 바다가 증발했다. 바다가 증발하며 발생한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를 일으켰고, 금성은 현재처럼 ‘불지옥’이 됐다. 두 행성의 운명이 왜 달라졌는지를 밝혀내면, 지구의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을지도 모른다.
또한, 최근 금성이 겪고 있는 급격한 기후변화도 관심사다. 2012년 금성 적도 부근에서 흡수된 태양에너지는 45%나 급증하고, 금성 상공에서 부는 바람의 속도가 시속 100㎞ 이상 증가했다. 원인은 금성 상공에 존재하는 의문의 자외선 흡수 물질이다. 이 물질은 갑자기 늘어나 금성 대기를 요동치게 하더니, 2013년 이후 다시 줄어들었다.
지구의 기후변화는 태양에너지에 의해 일어난다. 태양에너지를 많이 받는 곳에서는 상승 기류가, 적게 받는 곳에서는 하강 기류가 만들어지면서 전 지구를 순환하는 대기 대순환이 만들어진다. 태양에너지를 얼마나 흡수하고 반사할지는 구름층의 두께 등 지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반면, 항상 두터운 구름으로 덮여 있는 금성은 ‘의문의 자외선 흡수물질’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 물질의 정체는 이제 과학자들이 알아내야 할 숙제다.
국내 첫 금성 연구 그룹 출범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각국에서는 금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인비전(EnVision)’을, NASA는 ‘다빈치(DAVINCI)+’와 ‘베리타스(Verrritas)’를 보낸다. 러시아는 1984년 종료된 베네라 계획을 잇는 ‘베네라-D’ 계획을 발표했다. 인도 역시 ‘슈크라얀(Shukrayaan) 1호’라 이름 붙인 금성 탐사선을 발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금성에 탐사선이나 궤도선을 보낼 계획은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금성에 접근하려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지난해 6월 기후 및 지구과학 연구단을 출범시키고, 국내 첫 금성 연구 그룹인 행성대기 그룹을 구성했다. ESA의 ‘비너스 익스프레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금성 탐사선 ‘아카츠키’ 팀에서 금성 대기 관련 연구를 해온 이연주 박사가 이 그룹을 이끈다.
행성대기 그룹은 크기가 수십㎝ 단위인 작은 위성인 ‘큐브샛’을 지구 궤도에 올린 뒤, 시선을 금성을 향해 고정한 뒤 관측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탐사선은 금성 가까이에 접근하여 좁은 범위를 높은 해상도로 관측한다면, 큐브샛은 금성 전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유리하다.
이연주 CI(Chief Investigator)는 “탐사선이 금성 가까이에서 관측할 때 동시에 지구에서 금성 전체를 관측한다면 금성의 변화를 좀 더 밀도 있게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금성 대기의 미확인 흡수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풀어나가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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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4-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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